직류 vs 교류, 전류 전쟁의 짧은 역사

전류 전쟁 이후 130년, 다시 바뀌고 있는 세상

우리가 쓰는 전기 전압은 220V다. 미국에선 120V를 쓴다. 토머스 에디슨이 전기 공급 시스템을 만들던 시절 제안한 100V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파수는 60Hz다. 니콜라 테슬라가 발명한 교류 유도 전동기의 구동 주파수다. 전기 사업 주도권을 놓고 직류를 주장하던 에디슨과 교류를 택하자던 테슬라가 한판 경쟁을 하던 것이 1880년대 후반이니, 우린 백 년 넘게 그들이 만든 기준 안에서 사는 셈이다.

최근 그 세상이 바뀌고 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 변화, IT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때문이다. 세계가 하나의 컴퓨터처럼 변해가는 세상, 모든 기업이 기술 기업이 되는 세상,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교류에 졌던 직류 송배전 시스템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떻게 쓸지 몰랐던 전기

18세기 중반까지 인류는 전기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마찰전기를 만들어도 전기를 담아둘 그릇이 없었던 탓이다. ‘라이덴병’을 발명해 이 문제를 해결하자, 엉뚱하게 전기가 만드는 자기를 이용해 사람을 치료한다는 ‘매스머니즘’ 같은 유사 의학이나 전기로 만든 불꽃을 보여주는 ‘전기 마술쇼’가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전기는 그저 ‘신비로운 힘’이었다.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 사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산업 혁명이 진행됐다. 증기 기관이 발명 되고 경제 발전이 빨라지면서 새로운 기술이 많이 개발됐다. 기술이 돈이 되면서 더 나은 기술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전기라는 신기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사람들이 전자석, 모터, 건강에 좋은 전기 벨트 같은, 때로는 쓸모 있고 때로는 전혀 의미 없는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다.

1826년, 앙페르의 회로 법칙을 시작으로 수많은 전자기학 관련 발견이 이어졌다. 1834년, 자코비가 쓸만한 전기 모터를 만들었다. 1844년, 모스 전보기를 사용한 첫 번째 상업 전보선이 개통됐다. 1876년, 알렉산더 그레헴 벨이 전화기 특허를 등록했다. 1879년, 벨이 만든 전화기를 모방하기 위해 전보 회사에 고용됐던 토머스 에디슨이, 그 연구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구를 발명했다.

남의 발명품을 베끼고 개량하는데 능숙했던 에디슨이지만, 상업용 전구는 그가 처음 만들었기에 베낄 것이 없었다. 전구를 팔기 위해 그는 아예 전구 소켓부터 시작해 스위치, 퓨즈, 전선 등 거의 모든 것, 그러니까 전기를 만들고 전송하고 측정하고 전구를 쓰게 해 줄 전력망 자체를 새로 설계해야 했다. 인류는 이제야 전기를 어떻게 쓰면 좋은지 확실히 알았다.



전기 시스템과 전류 전쟁

전기 모터가 발명되자 고층건물이 세워졌다. 엘리베이터를 달 수 있게 됐으니까. 전차를 위해 발전소를 지었던 전차 회사는 퇴근 시간 이후 남는 전기로 돈을 벌기 위해 놀이공원을 만들었다. 증기 기관을 쓰던 공장은 그 엔진을 버렸다. 대신 공장 안에 발전소를 짓고 전기로 기계를 돌리기 시작했다. 에디슨이 세운 ‘에디슨제네럴일렉트릭’ 및 전기 시설 회사들은 이 과정에서 큰돈을 벌었다.

문제는 있었다. 에디슨이 만든 시스템은 멀리까지 전기를 공급할 수 없는 직류를 이용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전구를 팔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었고, 공장과 교통 시스템 등의 수요가 늘어나자 더 많은 발전소를 지으면 된다고 말하며 발전 설비를 팔았다. 당시 중앙 발전소가 3600여 개였는데, 사설 발전소는 5만 개가 넘었다.

적은 조용히 찾아왔다. 1887년, 에디슨에게 실망해 회사를 나온 니콜라 테슬라가 새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회사를 차렸다. 그가 선보인 교류 전기 시스템은 더 싸고 편리하게 멀리까지 전기를 공급했다. 에디슨이 그에 맞서 전류 전쟁이라 이름 붙은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지만 졌다.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가 마지막 승부처였다. 테슬라(의 특허를 무상 양도받은 웨스팅하우스)가 승리했다. 전쟁은 1896년 나이아가라 수력 발전소까지 이어졌지만, 이미 세상은 교류 시스템을 받아들였다.




모두가 쓰는 전기

교류 시스템이 정착되기 시작한 1894년, 찰스 파슨스가 만든 새로운 엔진, 증기 터번을 단 배를 만들었다. 예전 증기 기관보다 훨씬 강력해서, 증기 터번을 이용하면 중앙 발전소는 더 싸고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새뮤얼 인설은 에디슨의 재정 담당이었다가 다른 작은 발전 회사 회장으로 옮긴 사람이다. 그는 이런 변화가 전기 산업을 바꾸리라 생각했다.

증기 터빈을 설치한 더 큰 발전소를 만들고, 다른 발전소를 인수해 지역 독점 발전 회사로 키웠다. 사설 발전소를 가지고 있던 이들을 설득해 자체 시설을 포기하고 그가 파는 전기를 쓰도록 했다. 가격은 당시 평균 요금 1/10만 받았다. 발전소를 세울 필요 없이 싸게 전기를 쓰게 됐다. 조명, 공장, 전차에나 쓰이던 전기가 조금 지나자 모든 사람이 쓰는 에너지가 됐다.

그로부터 백여 년이 지났다. 컴퓨터, 인터넷과 함께 전기 사용량은 폭증해 더는 예전 시스템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직류를 사용하는 기기는 늘어가는데 전력은 여전히 교류라서 그로 인해 낭비되는 에너지도 만만찮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오염물질을 많이 내뿜는 기존 발전 시스템은 미움받는 신세가 됐다. 보기 나쁘다고 전선도 땅에 묻어야 한다. 생활 의존도가 높은데도 가끔 전기가 끊어지면 복구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다시 직류가 떠오르다

상황이 바뀌니 다시 직류 송배전이 떠오르고 있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바뀐 상황에 걸맞은 장점이 있는 탓이다. 21세기 고압 직류 송배전은 전력손실이 적고, 교류 송배전과는 다르게 땅이나 바다에 묻어도 아주 멀리 보낼 수 있다. 현재 연구되고 있는 방안을 보면 국가 단위로 전기를 보내는 일도 가능하다. 발전소와 도시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지금, 꽤 유리한 장점이다.

풍력을 제외한 신재생 에너지는 대부분 직류 발전이라 변환기 없이 바로 송전할 수 있다. 컴퓨터나 전기 가전들은 모두 직류를 사용하기에 직류 송배전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제품은 어댑터가 따로 필요 없다. 대기 전력으로 낭비하는 에너지도 줄어든다. 직류 특성상 사고가 났을 때 대처도 쉽다. 같은 굵기를 가진 전선에 교류보다 많은 전력을 보낸다. 지하 매설 시 전자파 문제가 없다는 장점은 덤이다.

교류 송배전 시스템을 당장 바꿀 필요는 없다. 아직 직류 송배전 시스템은 비싸다. 시장을 글로벌 기업들이 과독점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전기 자동차도 교류 모터를 사용한다. 배터리가 직류인 만큼 처음에는 직류 모터를 썼지만, 교류 모터가 싸고 효율도 아직 별 차이 없기 때문이다.

기술이 뛰어나지만 비싼 직류와 한계가 있지만 저렴한 교류.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타이밍이 된 걸까? 그렇지 않다. 시스템이 없었을 때야 전쟁을 벌였지만, 이미 깔린 다음이다. 철길과 도로가 공존하는 것처럼, 직류와 교류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송배전 시스템을 만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 기술을 가지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이 만든 세상에 얹혀살 수밖에 없다. 그게 싫다면, 지금부터라도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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