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불투명하다. 우리 눈앞에는 역사의 결과물만 나타날 뿐 사건을 빚어내는 설계도도 역사의 동력도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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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만나게 될 때 인간의 마음은 세 가지 증상을 겪는다. 이 세 가지 증상을 나는 삼중의 불투명성이라 부른다.
1. 이해의 망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꿰고 있다고 저마다 생각하지만, 세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
2. 사후 왜곡. 우리는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야 관련 사건을 돌아보게 된다.
3. 사실 및 정보에 대한 과대평가와 권위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겪는 장애로 인한 것들. 특히 그들이 ‘범주’를 만들어 낼 때, 즉 ‘플라톤적 사고를 펼칠 때’ 일어난다.
… 앞에서 나는 17년을 끈 전쟁 이야기를 했는데, 내 주변의 어른들은 입만 열면 이 전쟁이 ‘불과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1960년대에 쿠바에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자 “며칠 있으면 돌아가겠지”하며 … 마이애미로 피난 왔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1978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터졌을 때 파리와 런던으로 피난 온 이란인들은 ‘짧은 휴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역사는 기어가지 않는다. 사회도 기어가지 않는다. 역사와 사회는 비약한다. 파열구에서 파열구로 이동한다. 다만 그 사이에 작은 진동을 일으킬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예견 가능하도록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세계를 믿고 싶어한다.
– 블랙스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p52~57 일부 인용
어쩌면 우리는, 지금 코로나 19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시기는, 우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겪는, 변화의 시기다. 모두 바뀌지는 않겠지만, 어떤 것은 바뀐다. 바뀌지 않은 것에도 상처는 남는다. 돌아갈 일상은 알고 보면 없다. 우리 모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게 될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버티자. 그저,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