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걸까요?
제3제국(나치 독일)과 괴벨스가 너무 성공적인 사례를 남기는 바람에, 당연히 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만 많은 게 아니라, 각국 정부를 비롯해 정당, 회사, 종교 단체, 운동가 등 영화를 이용해서 뭔가를 이뤄보려는 사람은 정말 한둘이 아닙니다.
사실 저도 그렇긴 합니다. 아니면 이런 - '기술 사회에 영향을 끼친 영화 베스트 3’ 같은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여기에는 조심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930년대~40년대는 영화의 황금기였으며, TV가 없던 시절 영화의 위상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1948년 영국에서 극장을 찾은 사람이 16억 5천만 명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당시 서구인들의 핵심 오락 수단 중에 하나가 영화였으니, 그 영향력도 크고 거기에 온갖 사상을 담으려는 흐름이 있었던 게 당연합니다.
반면 지금은 어떨까요? 영화는 수많은 오락거리 중 하나일 뿐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영화 어벤저스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죠.
세상이 바뀌진 않는데, 어떤 것을 보는 시선, 새로운 아이디어에는 영향을 끼칩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알게 되니 꿈과 호기심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꿈을 꿨는데 그 꿈을 잊지 못해 간직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려나요.
실제 증거도 있습니다. 책 ‘Operation Hollywood: How the Pentagon Shapes and Censors the Movies’에 따르면, 영화 탑건(1986)이 인기를 끈 다음 미 해군 입대 지원자는 500% 늘었다고 합니다.
영화 사이드웨이(2004)의 인기는 미 캘리포니아 와인 관광 붐을 일으켰습니다. 영화 죠스(1975)가 히트하자 바닷가에 놀러 가는 사람들이 줄고, 상어는 사람을 잡아먹는 어류라는 이미지가 항상 따라붙게 됐으며, 상어 사냥이 인기를 끌면서 상어 개체수가 감소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많이들 보셨을 ‘슈퍼 사이즈 미(2004)’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건강을 신경 쓰도록 방향을 바꿨고, 보신 분이 없을 듯한 애니메이션 ‘밤비(1942)’는 당시 유행하던 사슴 사냥 스포츠의 확산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전 미 부통령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2006)’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다큐멘터리 중 하나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탄소를 줄이기 위한 자발적 실천에 동참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영화는 결코 힘이 작지 않습니다. 항상 크지 않을 뿐이죠.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지는 못해도, 구조나 문화, 행동을 바꿀만한 아이디어, 또는 어떤 그림은 그려줍니다.
자- 그럼, 실제 우리 사회의 문화에 영향을 끼친 SF 영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1977)
첫 번째 영화는 바로 스타워즈입니다. 가장 먼저 개봉됐지만, 나중에 에피소드 4(...)가 된 영화입니다. 붙잡힌 공주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이 힘을 키워 구하러 갔다가, 적 기지를 박살내고 돌아오는 이야기죠.
SF 영화 중에 영향력만 놓고 보면, 단연 1등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외로 한 번도 안 보신 분이 많지만, 스타워즈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누구나 알아볼 정도입니다.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광선 검이요? 여기서 나왔습니다. 적 병사인 스톰 트루퍼나 로봇인 R2D2 같은 캐릭터들은 척 보면 아실 겁니다. 다스베이더와, 그의 명대사 ‘내가 니 아빠다’도 유명하죠. 사실 한국에선 다스베이더가 다른 캐릭터 다 씹어먹고 다닙니다만.
하지만 다스베이더와 광선검이 전부가 아닙니다. 먼저 스타워즈는, ‘연작’이란 개념, 다시 말해 영화의 속편을 대중화시켰습니다. 80년대 주요 인기작인 빽 투 더 퓨쳐, 람보, 죠스, 레이더스 같은 작품 속편/연작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확립한 영화가 바로 스타워즈입니다.
이런 구조가 발전해, 나중엔 아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같은 별도의 ‘세계관’을 가진 연작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영화 외에 책과 만화를 함께 출판하면서, 이야기를 확장한 첫 번째 영화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스타워즈 소설인 ‘스타워즈: 루크 스카이 워커의 모험’은 무려 영화 이전에 나왔습니다.
영화와 함께 영화 굿즈, 파생 상품을 함께 파는 비즈니스 모델도 확립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장난감과 피규어를 쏟아내며, 스타워즈란 세계관 속에서 아이들이 놀도록 장려했죠. 실제로 스타워즈 영화 시리즈는 영화 티켓 판매보다 온갖 라이선스 제품 판매에서 더 많은 수익을 얻습니다.
콘텐츠가 성공하기 위해선 팬이 중요하다는 걸 가장 먼저 알린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개봉 전에 SF 팬 모임에 슬라이드 사진을 보내 홍보했다고 하죠. 당시엔 이런 홍보 활동이 없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우주 미사일 방어 계획 이름을 ‘스타워즈’라고 붙이면서 소련을 순식간에 악의 제국으로 만드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기술로 따지면 ‘홀로그램’을 널리 알렸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 필드로서 ‘포스’라는 개념을 사람들이 인지하게 만든 영화이기도 합니다. 시각 효과가 얼마나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지를 증명하기도 했죠.
무엇보다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스타트랙이 우주 과학자들을 길러냈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우주 이야기를 만드는 영화 제작자를 길러냈다면, 스타워즈는 SF 판타지를 사랑하는 엄청난 팬을 만들었으니까요.
지금이야 어떤 세계관을 가진, 그래서 파생 상품과 이야기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흔하지만, 그 시작이 스타워즈였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뭐랄까, 콘텐츠 비즈니스 표준 모델을 성공적으로 개척했다고 봐도 좋은 영화입니다.
더하기 - 스타쉽 트루퍼스
역사상 최고의 SF 영화를 꼽는다면 여러 편이 생각나지만, 어떤 리스트에서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스타워즈’가 빠지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영향력 중심으로 중요한 영화를 살펴본 연구에서, 상위 20개 영화에 포함된 영화는 딱 저 두 편과 전에 소개한 ‘메트로폴리스’ 뿐입니다. 음, 프랑켄슈타인도 포함하긴 해야겠군요.
다만 영화가 아닌 다른 쪽에서, 우리에게 지금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소설 ‘스타쉽 트루퍼스’입니다. 아시다시피 ‘스타 크래프트’가 이 소설에서 영향을 받았죠. ‘기동전사 건담’ 같은 로봇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 구요.
밀리터리 SF라는 장르를 만든 소설이자, 강화 외골격(엑소 슈트)이란 아이디어를 정립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래 군인이 외골격 장갑을 입고 싸운다거나, 곤충을 닮은 외계인과 싸우는 이야기라고 하면, 대부분 이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스타워즈가 자기 세계를 부풀리며 성장했다면, 스타십 트루퍼스는 자기 아이디어에 영향받은 작품이 수십 년간 태어날 뿌리가 되어줬죠.
블레이드 러너(1982)
두 번째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입니다. 가까운 미래에(영화 속 배경 연도가 2019년입니다.) 수사관이 인조인간 잡으러 돌아다니는 영화죠.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걸작 SF 영화지만, 스타워즈와는 달리 영화 개봉 당시에는 별 재미를 못 봤습니다. 제작비 2천8백만 달러를 들여서 전 세계 기준, 4천 백만 달러밖에 벌지 못했으니까요(보통 제작비 두 배를 벌어야 본전이라고 봅니다.).
이야기 자체가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거리가 먼, 우울한 영화인 데다, 1982년 6월 당시 경쟁작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였던 탓입니다. 비평가들의 평가도 나빴습니다. 시각적 묘사에만 신경 쓴 폭력적인 영화라고 했죠.
솔직히 관객들이 안온 이유도 알 것 같은데요. 해리슨 포드가 주연이라기에 신나는 액션 영화일 줄 알고 왔다가(해리슨 포드는 스타워즈의 한 솔로, 인디애나 존스의 주인공입니다!), 와서 보니 이 무슨 우울한 SF 누아르야… 평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반전은 1989년에 일어납니다. 우연히 70mm 필름(흔히 말하는 아이맥스 규격)에 인쇄된 시사회 버전(감독판)을 발견한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는, 이 판본을 1990년에 열린 70mm 필름 페스티벌에 제공하게 됩니다.
여기서 큰 인기를 끌자 감독판 공식 출시로 이어졌고, 90년대 ‘코드명 J(1995)’, “해커스(1995)’, ‘공각기동대(1995)’,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 ‘론머 맨(1996)’ 같은 사이버 펑크 영화 붐을 이끌어 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1984)’에서 시작하고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1992)’로 확장된 사이버 펑크 장르는,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사실상 성격이 규정됐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영화의 세계관을 믿게 만들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서 만든 이미지. 초고층 빌딩과 초거대 전광판 위를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세계. 동양 문화가 지배하는 서양 도시.
비 오는 길거리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대표되는, 환락과 폭력, 가난함이 뒤범벅된 우울한 디스토피아. 블레이드 러너는 기술로 인해 변하고 망가진 우울한 미래상을 눈앞에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논쟁 거리를 던져줬죠.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입니다. 실제 인간과 인공 기억을 주입받은 인조인간(레플리칸트)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인간이 무엇인지, 아니 그런 구별이 의미가 있는지-하는 질문을. 철학 분야에선 아주 오래된 주제이긴 합니다만.
더하기. 공각기동대 극장판(1995)
서양에 블레이드 러너가 있다면, 동양에는 아키라(1988)와 공각기동대가 있습니다. 물론 공각 기동대가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을 크게 받은 그런 작품이긴 합니다만.
이 애니메이션은 블레이드 러너가 던진 질문을 받아서, 그걸 네트워크로 확장합니다. 아예 몸을 기계로 바꿔 끼울 수 있게 된 시대에, 네트워크에서 스스로 형성된 유사 인격이 범죄를 저지르는 시대에, 인간이 말하는 ‘정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죠.
더불어 블레이드 러너에 들어간 구 시대 홍콩의 이미지를 끌어안아서, 배경을 홍콩, 그중에서도 초빈민 성채 구룡성채로 잡았습니다. 사이버 펑크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빈민가의 이미지는 사실 이 애니메이션과 구룡성채에서 나왔습니다.
거대 건물로 가득 찬 빈민가가 있다? 십중팔구는 구룡성채가 모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빈민가 건물 위로 비행기가 날아간다? 100% 구룡성채를 모델로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더하기.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2012)
사이버펑크는 기술로 인해 바뀔 미래, 많은 기업이 보여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미래가 아니라, 기업이 지배하고 인간 세계를 식민화하는 그런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미래를 그리지만 사실 현재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죠. ‘이런 세계가 되기를 정말 원하냐?’고 묻는 겁니다.
반면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은, 본작은 SF 액션 로맨스 영화지만, ‘인용’으로 인해 다른 생명을 얻은 케이스입니다. 원작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쓰인 세손가락 경례를, 태국과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가져다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트릭스(1999)
마지막 영화는 누구나 알고 있을 매트릭스(1999)입니다. 꿈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꿈꾸게 만든 기계들에게 복수하는 영화죠.
총알을 피할 때 시간이 초슬로우로 흘러가는 ‘불렛 타임’이나 한 장면을 360도 돌려보는 효과를 처음 선보였고, ‘빨간 약 먹을래 파란 약 먹을래?’ 같은 명대사(?)로 잘 알려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저 미래는 거대 자본주의가 지배한다- 인간은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다 고통받는다- 기계와 인간이 한 몸이 된 세상에서 내가 누군지 모르게 된다-라는 전형적인 설정을 뛰어넘어, 그냥 이 세계가 다 ‘아 시발 꿈’-이라고 했죠.
이 영화가 상영된 이후, 얼마나 많이 ‘매트릭스에서 깨어나야 한다네, 친구’ 같은 말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영화 속 가상 세계가, 현실에선 누군가에게 의해 만들어진 생각- 같은 의미로 돌려 쓰인 거죠.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일종의 꿈(시뮬레이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대중에게 단단히 심어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뭔가 근대 철학에서 거쳤던 질문을 사이버 펑크 영화들이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느낌이긴 합니다만.
이런 생각이 이어지면서, 뭐랄까, 가상현실에 대한 트렌드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VR 개발자들이 영향을 받았죠. 영화판에선 2010년 인셉션, 2018년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몰입형 가상현실 영화가 이어졌습니다. 대중문화에선 ‘이세계’류 콘텐츠들이 판치게 됩니다(?).
물론 진짜 영향력은, 그린 스크린 앞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CG로 떡칠된(...) 영화를 대중화시켰다는 점에 있겠지만요. 시나리오에 디지털 게임 요소를 통합해 성공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더하기. 트루먼 쇼(1998)
트루먼쇼가 SF 영화야?라고 말하실 분들 계실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거대한 가짜 생활공간에 갇혀, 사는 걸 모두 중계하며 살아가는 트루먼의 탈출기죠. 장르는 SF가 맞습니다. 걸작으로 불리진 않기에 베스트 3에는 속하지 못했지만, 명작은 되는 영화입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꼭 보라고 권하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알고 보면 당시 유행하던 리얼리티쇼와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 같은 드라마에서 아이디어를 따왔지만, 그가 그런 삶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현실의 SNS 인플루언서의 삶과 다르지 않거든요.
누가 그러더군요. 트루먼은 자신이 갇힌 씨헤븐(Seahaven)을 탈출하려고 했지만, 트루먼이 탈출한 뒤엔 그곳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 서서 있었을 거라고요.
물론 21세기의 인플루언서는 트루먼처럼 가상공간에 갇혀 살 필요가 없습니다. 공간에 카메라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자기 자신을 따라다니니까요. 그냥 세상이 거대한 세트장이 된 거죠.
트루먼 쇼가 이런 흐름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콘텐츠 제작자들이, 트루먼 쇼를 통해 24시간 지켜보는 사생활이 인기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거든요.
실제로 트루먼 쇼 이후 빅 브라더(Big Brother), 서바이버(Survivor), 리얼 월드(Real World) 같은 리얼리티 쇼가 태어나고, 큰 인기를 끌면서, 리얼리티 쇼는 완전히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게 됩니다.
어느 정도일까요? 놀라지 마세요. 2015년 기준, 미국에서만 750개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 방송됐다고 합니다(재방 포함, 신작은 350개 정도).
우리도 다르지 않아서 ‘짝’. ‘슈퍼맨이 돌아왔다’, ‘미운 우리 새끼’ 같은 관찰형 리얼리티 쇼가 핵심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죠.
따지면 슈퍼스타K나 프로듀스 101도 일종의 변형 리얼리티 쇼입니다. 참가자들 숙소에 가두고(?) 24시간 카메라가 돌아가니까요. 지금은 이런 유튜브 영상도 꽤 많고요. 브이로그란 것도 구성을 보면 사실상 셀프 리얼리티 쇼입니다.
... 트루먼 쇼는 경고를 했지만, 대중은 열광을 했다고 해야 하나요.
매트릭스가 CG로 우리 삶은 거대한 가상현실일지도 몰라-하고 말했고, 트루먼쇼는 세트장으로 우리 삶이 거대한 가상현실일지도 몰라-하고 말했더니, 가짜 현실이라도 좋으니 나도 주인공 할래!라고 대답한 거죠.
본의 아니게, 트루먼 쇼는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들었는 지도 모르지만, 어쩌겠습니까. 만든 사람 마음과 다르게, 콘텐츠는 늘 다르게 받아들여지는걸요.
SF 영화는 미래 기술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떤 SF 영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 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면, 태도가 결정되죠. 그래서 나온 결론은,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마냥 나쁜 것도 아닙니다.
... 우린 이미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든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식 투자를 하기 위해 얻는 정보-라는 것들 가운데, 뭐가 진짜고 뭐가 작전인지 알기 어려웠던 적, 없으신 가요? 우리가 당연히 그럴 거다 믿는 ‘상식’이, 정말 맞는 걸까요?
우리 삶은 항상 상상보다 덜 극적이고, 더 소모적입니다. SNS와 웹은 광고로 뒤덮인 지 오래됐죠. 그걸 알면서도, 인스타그래머블한 핫 플레이스를 찾아 나서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겁니다. 좋아요를 하나라도 더 받고 싶다는, 게임의 덫에 걸려든 거죠.
알고 있다고 그걸 빠져나갈 수 있나요? 그게 쉽겠습니까. 거기에 우리 욕망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고, 때론 내가 그걸 이용하고 싶은데, 안되죠. 어느 순간 우리는, 진짜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이걸 이용해서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이야기에 열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습니다. 이런 걸 종합하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면 대중의 불안을 포착해, 그걸 어떻게 멋지게 만드는 가가 중요하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이 나옵니다만.
그래도 SF 영화를 보는 이유는, 더럽혀진 미래를 부정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요.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는 대부분, 시스템과 타협할 것이냐 싸울 것이냐, 그런 이야기이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