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버스, 확장 현실 시대가 찾아온다 – XR/MR 기술 현황과 전망

오래전부터 인간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꿈을 꿨다. 중국의 온갖 기이한 이야기를 담은 요재지이, 인간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북유럽 신화, 그 밖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런 ‘할 수 없는/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을 담고 있다. 그 욕망이 이제 이뤄지려고 한다, 컴퓨터의 힘을 빌려서. 현실과 가상현실의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을 나타내는 기술, 융합 현실 덕분이다.

2020년 8월 21일, 엘지유플러스에서는 엔리얼과 손잡고 엔리얼 라이트(U+리얼글래스) AR 글래스를 출시했다. 100인치 (느낌) 화면으로 영화를 볼 수 있고, 가벼우며, 스마트폰에 연결해야 하긴 하지만 출고가 70만 원으로 (이쪽 계열에서는) 상당히 저렴하다. 그에 앞서 지난 6월, 일본 도코모에서는 매직 리프와 손잡고 매직 리프 1을 출시했다. 가격은 조금 고가인 249,000엔(세금 제외)이지만, 스마트폰이 필요 없다.

이런 안경을 쓰면, 현실과 컴퓨터 그래픽이 뒤섞인, 마치 현실에 CG를 입힌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기술이 만들어 내는 세계를 혼합 현실(Mixed Reality, MR) 또는 확장 현실(eXtended Reality, XR)이라 부른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과 현실과 완전히 단절된 ‘가상현실’ 사이에 있는 모든 시각 이미지를 부르는 이름이다.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포켓 몬스터처럼 현실의 이미지에 컴퓨터 그래픽을 덧붙이는 방식도 있고, 헬멧이나 자동차 전면 유리에 필요한 정보를 표시하는 방식도 있다. 컴퓨터 게임 화면을 통해 익숙해진, 바로 그런 형태가 융합 현실이 표현되는 방식 중 하나인 증강 현실이다.

 

 

최근 개발되는 확장 현실 기술은 단순히 현실 환경에 컴퓨터 그래픽이나 정보를 덧 입히는 것을 넘어, 상호작용 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록 개발이 중단되긴 했지만, 인텔 VR 헤드셋 ‘프로젝트 알로이’는 가상의 드럼을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MS 홀로 렌즈는 가상의 제품을 만들고, 회의하고, 가상 생명체와 노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상호작용성’의 차이를 증강 현실과 융합 현실을 가르는 차이점이라 말하기도 한다. 증강 현실은 우리가 보는 현실 이미지에 컴퓨터 그래픽을 얹은 것이고, 융합 현실은 그렇게 단순히 CG가 그려진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쓸 수 있는 환경이라고.

확장/융합 현실이란 개념이 그동안 쓰이지 않다가, MS와 인텔이 자신의 제품을 설명하기 위해 들고 나온 개념인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념에 너무 얽매이지는 말자. 다른 이가 보기에는 컴퓨터 그래픽이 들어간 모든 것은 그냥 ‘가상현실’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현실과 가상이 구분되지 않는 ‘기술적 생활 세계’에서 이미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적 생활 세계를 기반으로 컴퓨터가 진화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첫 번째, 지금 세대의 컴퓨터는 가상현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지각 능력을 대신하려고 한다.

두 번째,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으로 옮겨가려고 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가상 물리 시스템은 새로운 시대의 핵심 인프라가 되어줄 것이다. 확장/융합 현실은 그런 진화를 그대로 드러내 줄 기술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보는 일 없이, 디스플레이는 눈 앞에 저절로 펼쳐지고,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가 있게 된다. 마치 전기나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처럼.

응용되는 형식은 다양하다. 다른 언어로 된 공연을 보고 있을 때, 실시간으로 지금 말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 말풍선 형태로 자막이 뜬다면 어떨까? ‘텔레파시 워커’사에서 개발 중인 웨어러블 안경을 이용하면 실시간 언어 번역이나 게임, 도보 내비게이션이 가능해진다. 심장 사진을 터치하면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기술이나, 홀로그램으로 대화 중인 상대와 손을 맞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기계에게도 적용된다. ‘타보’는 태블릿 화면을 인식해 화면에 위에 놓으면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이는 교육용 작은 로봇이다. 미디어의 관심은 HMD 형태의 기기에 쏠리고 있지만, 헤드셋이 필요 없는 형태의 융합 현실 기술도 이미 여럿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계도 명확하다. 인텔 프로젝트 알로이는 중단됐다. 구글 글래스는 사실상 실패한 다음, B2B 판매를 모색하고 있다. MS의 홀로 렌즈는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이 쓰기엔 비싸고 팔지도 않는다. 엔리얼 라이트와 매직 리프는 가까스로 출시됐지만, 아직 이걸 써먹을 콘텐츠가 적다.

간단히 말해 기술적으로 입력-처리-출력의 세 단계 모두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몇 년 전 영국 디지캐피털에선 2020년까지 AR 시장이 12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2019년 IDC가 낸 보고서를 보면 2019년 AR/VR 시장을 합쳐서 105억 달러에 불과하고, 2020년에도 188억 달러 정도가 될 거라 말했다.

예측과 상관없이, 융합 현실 기술이 현실에 반드시 오기는 온다. 다만 혼자서 오지 않고, 가상현실 기술,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5G 등과 세트로 온다. 실시간 실내 매핑, 3D 렌더링, 컴퓨터 비전 등 아직 부족한 융합 현실 기술의 모자란 조각들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언제일까? 아마 올해부터, 2022년 사이가 될 듯하다.

물론 그전에, 제대로 쓰일 곳과 콘텐츠/서비스를 찾아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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