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12 발표 이벤트가 끝났습니다. 제가 올해 유일하게 기대하던 이벤트였죠. 보는데, 졸립니다. 애플 이벤트가 재미없던 적은 있어도 졸린 적은 없었는데, 이젠 졸립니다. 차라리 신형 아이패드 에어 발표 때가 훨씬 더 재미있었어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 그래서 이걸 가지고 뭐하라고?에 대한 답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선 차라리 앞에 나온 홈팟 미니 발표가 더 재미있었네요. 둘, 5G 5G 자꾸 얘기하는 데, 우리는 5G가 어떤 거짓말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통사가 5G를 대하는 태도에 절망했던 건, 2020년 2/4 분기 실적 발표가 있었을 때였을 겁니다. 기자들과 질의 응답을 하는데, 돌려서 말하긴 하지만 ‘더이상 추가 투자하지 않겠다’라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더군요.
5G 이용자의 데이터 이용량은 LTE 이용자보다 평균 10G 정도 많습니다. 그런 가입자가 쭉쭉 늘어난데다, 코로나19로 인해 데이터 소비량이 많아지니,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LTE 까지 끊어지는 경우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투자는 안하겠다? 초고속 5G는 B2B 용이다?
…. 에라, 꿈과 희망을 보여줘서 가입을 시켰으면 책임을 지란 말이다.
아무튼, 애플에서도 이번 이벤트에서 5G를 무척 강조했습니다. 초고속(28Ghz) 5G를 보급하고 있는 버라이즌 CEO가 나와서, 미국에 5G 전국망을 깔겠다고도 선언했죠. 현재 미국 5G 커버리지 상황은 꽤 절망적(?)입니다만- 그래도 이런 선언이라도 했습니다-만, 훗, 그게 우리랑은 아무 상관 없는 것 아시죠? (절망했다).
… 뭐, 한국에 판매되는 아이폰12에는 갤럭시와 마찬가지로, mmWave 지원이 빠지기도 하고요.
자, 거기에 더해, 그렇게 예쁘다고 칭찬 받던 디자인마저, 너무 많이 유출된 탓인지,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음, 뭐라고 해야 하나요. 아이폰11과 대놓고 비교하면 더 예뻐지긴 했는데, 일단 전면에서 보면 똑같거든요. 노치도 그대로고.
그나마 아이폰 12 미니는 선방했습니다. 아마 이번엔 이게 메인 스트림일거에요. 가격이 낮아지진 못했지만, 성능도 보통 아이폰12와 똑같고(배터리는 더 적습니다), 무엇보다 무게가 132g… 아이폰SE 2세대보다 가볍습니다. 이런 게 진작 나왔어야죠.
다른 기능은, 그닥 큰 변화가 없습니다. 아이폰12 프로 카메라가 더 좋아졌는데, 그게 그리 중요한 지는 모르겠고- 아이폰12 CPU도 더 좋아졌는데, 그게 더 좋아져서 뭐가 달라지는 지는 말 못합니다.
정말 놀란 게, 애플마저 5G의 빠른 속도로 뭘 할 수 있는지, 더 빨라진 CPU로 뭘 할 수 있는지 제대로 말을 못했어요. 진짜로. 이렇게 내부 구성원만 잔뜩 나온 아이폰 이벤트가 있었나? 하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리그 오브 레전드가 출시된다고 하지만, 그게 5G가 없다고, 더 빠른 CPU가 없다고 쓰지 못할 게임일리도 없고-
결국 이번엔 디자인 변화를 제외하면, 사실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사실 각오는 했습니다. 애플이야 원래 같은 폼팩터 오래 우려먹는 회사고, 진짜 폴더블 폰이라도 내놓을 게 아니면, 더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각진 형태로 외부 디자인이 바뀐 건 생각보다 눈에 안차요. 전면 후면이 전과 달라진 게 없어서. 앞으로도 노치를 없앤다면 그게 가장 큰 변화가 될 거에요.
맥 세이프-도 있긴 하지만, 음, 솔직히 이건 변함없는 애플 액세서리 장사용. 충전기와 이어폰도 빼고 안 주는 마당에, 맥 세이프 충전기는 57,000원, 맥 세이프 실리콘 케이스도 57,000원. 가죽 카드 지갑은 75,000 원.
물론 애플 액세서리는 정품 사라 권하지 않습니다. 예뻐보여도, 내구성이 형편없는 제품이 많아서. 뭐, 아이폰12 사신다는 분들도 액세서리는 다들 알리(…)를 기다리고 있는 판국이니. 원래 이런 건 소모품이라서, 비싼 걸 살 이유가 적습니다.
아무튼 라인업이 변경되고 가격이 조정됐기 때문에, 현재 판매되는 아이폰 종류가 굉장히 늘어났습니다. 인기는 아이폰 12 미니와 아이폰 12 프로 맥스에 집중되겠지만요(카메라 관심 + 로파일 저장 쓰려면 용량도 많아야 합니다.). 어쨌거나, 한국에선 예전에 팔리던 만큼은 팔릴 겁니다. 국내 가격도 조금은 내려갔고요.
이걸로 5G 가입자 모으려고 이통사도 용을 쓰겠지요. 다만, 5G 됐다고 해서 뭐 더 좋아질 거란 기대는 버리시는 게 좋습니다. 현재 5G 이용자들 가운데 그걸 느끼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중국을 빼면, 5G 이기 때문에 더 팔리는 일도 없을 겁니다.
올 한 해는 그냥, 쉬어가는 해로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