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랜선 라이프, 코로나 시대의뉴 노멀

언택트(Untact)라는 단어는 원래 없었습니다. ‘트렌드 코리아 2018’이란 책에서 비대면 소비 트렌드를 소개하며,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에 부정을 나타내는 UN을 붙여 만든 단어죠.

이렇게 처음에는, 무인 키오스크나 비대면 계좌 개설, 챗봇처럼 실제 사람을 만나는 일을 피하는 기술을 ‘언택트 기술’이라 불렀습니다. ‘불편한 소통’ 대신 ‘편한 단절’을 권하는 기술이라고 해도 좋겠죠.

이에 따라 언택트 마케팅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직원에게 뭔가를 권유받는 압력을 싫어하는 이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침묵 택시’나 ‘말없이 손님을 맞는 서비스’처럼, 요청이 없으면 손님을 내버려 두는 마케팅입니다.

 

 

이런 태도는 라이프스타일로도 이어집니다. 혼자 밥을 먹는 대신, 음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립니다. 얼굴을 보고 나누는 대화나 전화 통화가 힘들어 메신저를 통한 대화를 더 좋아합니다.

 

미국에서는 청소년들 사이에, 싫은 사람이 생기면 ‘You’re cancelled’라고 말하며, 없는 사람 취급하는 문화도 생겼다고 합니다. 전화 주문도 싫어서 배달앱 주문을 선호한다죠.

이런 행위는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사실 단순합니다. 언택트를 소개한 책에서 내세운 소확행, 가심비, 워라밸, 케렌시아 같은 키워드는 결국 하나로 모이거든요. 살기 힘든 세상에서, 자기중심의 삶을 추구하게 된 개인이라는.

다시 말해 언택트 기술은, 개인에게 가혹한 짐을 지우는 세상에 맞서 싸우기 위한 개개인의 생존 기술입니다. 더불어, 갈등을 회피하고 쉬운 길을 찾으려는 개인의 우회 전략이기도 합니다. 무인 키오스크처럼, 가게 입장에서는 종업원을 고용해 맡기던 일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기 위한 좋은 핑계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2020년 코로나 19 대유행과 더불어, 언택트 기술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이기 시작합니다. ‘비대면’이란 뜻은 같은데,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쓰이면서, 공공 안전을 지키는 기술이 된 겁니다. ‘집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면서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시대’를 지탱하는 기술로.

 

▲ 문화적 변화는 예상했는데, 솔직히 이런 의미로 바뀔 줄 몰랐습니다.

 

언택트 기술로 실현하는 랜선 라이프

사회적 거리두기는 단순히 사람과 만날 때 거리를 두는 것뿐만 아니라, 휴교, 재택근무, 모임 취소 등 광범위하게 사회생활을 제약하는 요소가 포함됩니다. 일종의 자발적인 격리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격리가 강제되는 해외에서는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예 외출을 금지하는 예도 많습니다.

지금 다시 언택트라는 말이 활발하게 쓰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재택근무, 원격 교육, 온라인 쇼핑 및 동영상 시청 등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기술이 쓰이는데, 이걸 뭉뚱그려 지칭할 단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집 안에 갇혀 인터넷만 하며 사는 삶을 농담 삼아 부르는 말이 ‘랜선 라이프’고, 이 ‘랜선 라이프’를 지켜주는 수단을 통틀어 언택트 기술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기술이 쓰일까요?

두드러지게 존재감을 드러낸 기술은 ‘화상 통화’입니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 이후 비즈니스 여행에 불안감이 커지면서, 이를 대신할 화상회의 솔루션이 많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세계화에 따른 원거리 협업, 바뀐 고용 환경, 더 빨라진 인터넷 인프라, 스마트 기기 확산과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는 SW가 많아지면서,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까지 웹 화상회의 솔루션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만날 수 없다면, 그다음으로 나은 대안이 가상 면대면(face to face) 환경을 만들어주는 화상회의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주목받은 언택트 기술이 기존 언택트 기술과 가장 크게 차이 나는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존에는 ‘얼굴 보기 싫어서’ 언택트 기술을 썼다면, 이젠 ‘얼굴을 보고 싶어서’ 언택트 기술을 씁니다. 단절이 아니라 이어짐을 위해서.

갑작스럽게 끊긴 현실 사회의 만남을 대신하기 위해 쓰는 기술인 만큼,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며 온라인 회의를 하기 위해 사용한다던가, 대학 강의나 초중교 수업을 대신한다거나, 친구들과 술 한잔하거나 가상 파티를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 줌은 구명보트였다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터져 나오다

가상 면대면 만남을 위해 쓰는 서비스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많이 이름 들어보셨을 ZOOM, 구글 미트, MS 팀즈 같은 서비스를 비롯해 대학 강의에는 웹엑스(WebEX), 중국에서는 딩톡이나 텐센트 미팅, 가상 파티에는 ‘하우스 파티’ 같은 앱이 많이 쓰입니다. 이 밖에도 각 기업에서 준비한 개별적인 앱이나, 라인 웍스, 구르미, 알서포트 같은 국산 서비스도 많습니다.

단순히 화상회의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위한 도구를 함께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메일이나 문서작성도구, 캘린더, 회의록, 주소록 등을 공유하는 서비스가 붙어 있는 거죠. 물론 트렐로나 잔디, 슬랙 같은 독자적인 인터넷 기반 협업 도구 사용량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꼭 이런 툴을 쓰지 않아도, 베트남 등에선 페이스북 라이브 등으로 강의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온라인 도구가 현실 만남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화상회의 도구는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데엔 쓸모 있지만, 수익 사업을 하기엔 어렵습니다. 공연이나 강의를 통해 생계를 이어갔던 뮤지션, 강사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입니다. 유튜브 같은 라이브 동영상 중계 서비스에 눈을 돌려도,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제한적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 방송으로 유명한 스트리밍 서비스 트위치에선 ‘2020 방구석 콘서트(Stream Aid 2020)’을 개최했습니다. 30팀이 넘는 유명 아티스트들이 참가한 이 공연에선, 게임 생중계와 실시간 공연을 교차로 방송했습니다. 이 방송 과정에서 총 276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고 합니다(트위치에선 생방송 도중 후원을 받을 수 있어서, 많은 인디 예술가들이 길거리/클럽 공연을 대신하는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배틀 로열 게임으로 유명한 포트나이트는, 게임 안에서 래퍼 트래비스 스콧의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지난 4월 24일 열린 이 콘서트에는, 무려 1,230만 명이 접속해서 공연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건 나중에 메타버스 얘기가 나오며 다시 유명해지게 됩니다.

 

 

일본 클라우드 키친사에선 ‘이에쯔나 키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요리 강습 및 판매, 가상 미팅을 겸한 서비스입니다. 먼저 재료를 집에 배달한 다음, 정해진 시간에 화상회의 서비스를 통해서 모입니다. 다 모였으면 영상을 통해 실제 유명 레스토랑 요리사/강사의 지도를 받으면서 함께 요리를 만들고, 다 만든 요리를 함께 보면서 먹는 서비스입니다. 커피, 과자, 와인, 초밥 등 13개 채널을 통해 다양한 유명 요리점의 요리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뉴 노멀로 남게 될 언택트 기술

이밖에도 코로나 19로 인한 시민과 자영업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미 있던 서비스를 발 빠르게 개편해서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 많은 서비스에선 교육이나 게임, 영상 콘텐츠를 정해진 기간 무료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우버나 리프트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는 차량 배달 서비스로 변경해서 운영합니다.
  • 인스타그램에선 음식이나 물건을 바로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는 버튼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 구글맵에선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매장을 바로 보여줍니다.
  • 교회에선 온라인 예배를 시작했으며, 영국 성공회에선 온라인 예배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을 위해 무료 전화 예배 서비스도 시작했습니다.

… 언제나 그렇듯,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어렵지만 끈질기게 이어집니다.

 

 

코로나 19가 지나간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랜선 라이프는 결코 현실 세계의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외로움이 근대에 들어와 발명된 개념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다만 평범했던 우리 삶에 스마트폰이 들어왔던 것처럼, ‘랜선 라이프’ 또는 ‘언택트 기술’이 고정된 선택지가 될 겁니다.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다고 해야 하나요. 처음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한번 받아들인 습관은 쉽게 지워지지 않거든요. 재택근무나 원격 교육이 좋아서 그걸 계속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고요. 온라인 이벤트 역시 오프라인 이벤트와 같은 격을 갖게 될 겁니다.

언택트 기술을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은 벌써 시작됐습니다. 먼저 5G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통해 인터넷 인프라를 강화할 예정입니다. 배달 로봇, 소독 로봇, 물류 자동화 로봇 등 다양한 서비스 로봇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원격 의료에 대해서도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화상회의 시스템을 쓰기 쉽게 업그레이드하는 작업도 속도가 붙을 전망입니다.

무엇보다 주요 IT 기업들은, 이번 코로나 19로 인한 변화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이전과는 좀 다른 세상을 만들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의 우선순위를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세상에서, 앞으론 우린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미래는 예측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이 바로, 깊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 2020년 5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1년이 다 지나가는 요즘, 실제론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하며 읽으시면 따질 부분이(…) 많이 있을 겁니다. 씹는 재미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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