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사람들을 만나면 농담삼아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너에겐 비서가 필요하겠다”라고요. 그렇지만 생각해 보세요. 농담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내 자질구레한 일들을 다 처리해준다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 모두가 바라고 있는 그런 일이 아닌가요? 맞아요. 바쁜 사람이든 아니든, 비서는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실제로 유명인들이 자신의 일상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비결도, 바로 도와주는 사람들의 존재에 있습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거든요. 우리는 한정된 시간, 한정된 에너지를 가진 채 살아가고,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보다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소중한 일을 먼저해야 하는데, 소중한 일만 했다가는 일상이 망가져 버립니다. 그러니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한 거죠.
… 하지만 우리에겐 비서가 없죠. ㅜ_ㅜ
비서가 없어도, 스스로 삶을 조직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라이프 에너지를 보다 가치있게 쓸 수 있는 방법. 그게 뭐냐구요? 바로 필터-입니다. “The Organized Mind: Thinking Straight in the Age of Information Overload”를 쓴 다니엘 레비탄이 수많은 VIP 인사들을 만나보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예에? 그럼 필터는 또 뭐냐구요?
정보 과부하 시대의 필터, 기록하기
필터는 말 그대로 필터입니다. 거르는 역할을 하는 존재죠. 뭐를 거를까요? 당연히 정보입니다. 우리는 정보 과부하 시대에 살아가고 있으며, 필요한 것과 필요없는 것을 쉽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많으면 모르겠는데 필요없는 쓰레기 정보, 우리를 속이려는 가짜 정보들이 뒤섞여 있어서 혼란을 부추깁니다.
간단히 말해, 블로그에 엄청 좋은 맛집으로 소개되어서 믿고 찾아갔더니 정말 구린 맛집이더라… 하는 상황, 많이들 겪어보셨죠? 그런 겁니다. 어떤 것을 걸러내고 정돈하는 시스템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가장 먼저할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몇 가지 범주에 따라 분류하는 일.
GTD 라는 일하는 방법을 창시한 데이비드 알렌은 그 범주를 이렇게 나눴습니다.
- 당장 해야 할 일
- 남에게 맡겨야 할 일(위임)
- 나중에 할 일
- 버릴 일
예를 들어 냉장고에 달걀이 떨어졌습니다. 그럼 나중에 슈퍼에 가서 달걀을 사오자-라고 수첩, 또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넣습니다. 다음 달에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여행을 가려면 비행기표 예매, 호텔 예약, 여행 일정 짜기, 준비물 준비-등의 일들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비행기표 예매와 호텔 예약은 같이 갈 친구에게 맡겨야 할 일로 넘기고(위임),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고(당장 해야할 일), 예비 일정을 짜둔 다음(당장 해야할 일), 친구와 만나서 최종적으로 일정을 정하기로 합니다(나중에 할 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을 4가지로 나누는 것?
아닙니다. 바로 모든 할 일을 기록하는 겁니다. 수첩이든, 스마트폰이든 말이죠.
응?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좋은 맛집을 찾는 것’등의 일에 어떻게 적용되냐구요? 그러니까- 이런 거랍니다.
- 내일 저녁 데이트가 있어요.
-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맛집 목록을 작성(나중에 할 일)해 두셨다면 거기서 고르면 됩니다.
- 아니라면 ‘광화문 맛집’ 이런 식으로 검색할 겁니다(당장 할 일).
- 거기서 한 두 군데를 고르고, 페이스북등에 ‘여기 맛있나요?’하고 글을 올리세요(남에게 위임).
- 그럼 사람들이 많은 아이디어를 던져줄 거랍니다.
… 처음에는 낯설어도, 몇 번 해보시면 금방 자동화되어 뇌에 새겨지게 되니, 한번 해보세요!
전 평소에 가보고 싶은 곳을 검색, 기사,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알게되면, 카카오맵이나 네이버 지도, 구글맵(해외) 등에 찜해 놓습니다. 거기서 리뷰를 살피기도 하고, 아니면 근처에 있을 때 맵을 켜면, 맵에 표시된 곳이 보여서 찾아가기도 합니다. 데이트 따위는 안합니다(ㅜ_ㅜ).
하루 두 번의 쿨 타임
전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을 기록-합니다. 웹서핑을 하다 아이 쇼핑으로 넘어가는 경우, 많죠? 그때 까딱 잘못하면 하던 일은 못하고 아이 쇼핑(…) 또는 진짜 쇼핑(…)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땐 그냥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놓거나, 에버노트에 있는 ‘사고 싶은’ 노트북에 기록해 놓습니다. 그리고 잊습니다.
메일, SNS, RSS, 웹서핑 등을 하다가,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기록해 두고 싶은 문장을 찾았다? 그냥 ‘라이너’라는 앱으로 쓱쓱 밑줄 쳐서 보관합니다. 긴 글은 에버노트로 보관하지만요. 그냥 나중에 읽고 싶은 것은 포켓. 일하다 뭔가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냥 앞에 있는 메모지에 적어둡니다. 스마트폰 메모장이나요.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일단 적고, 잊는 겁니다. 그럼 이상하게, 뇌가 편합니다.
그 다음, 어쩌면 이게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두 번의 쿨 타임-을 가집니다. 운동 경기 보다보면 중간에 ‘타임’을 외치면서 잠깐 경기를 중단시키는 시간을 갖잖아요? 그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두 번 가지는 자기 점검 시간. (저는 점심 먹고/자기 전에 가지긴 합니다만-)
무슨 소리인가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모 그룹의 사장님에게 배운 방법입니다. -_-; 그 사장님의 필터는 A4 종이 한 장. 그걸 2번 접어서 사용하시더라구요. 아침에 출근해서 오늘 할 일은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며 이 종이에 쭈욱 적어본다고 합니다.
접으면 한 페이지에 4면이 생기는데요, 왼쪽 위는 내가 생각한 오늘 할 일, 오른쪽 위는 남에게 부탁 받은 일, 왼쪽 아래는 틈틈히 떠오르는 아이디어, 오른쪽 아래는 연락할 사람들 이름… 이렇게 적으면서 신입사원때부터 사용하셨다고 하네요.
이런 내용을, 아침에 한번, 저녁 퇴근 전에 한번, 이렇게 정리합니다. 필요한 내용을 중간중간에 채워넣기도 하구요. 일종의 하루에 대한 예/복습인거죠. 이렇게 하면 하루가 틀에 딱- 잡힙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하루를 어떻게 채워나가고 어디에 에너지를 써야할 지도 감이 잡히구요.
저라면 여기에, 할 일 목록 옆에 ( )를 치고 숫자를 적는 것도 권합니다. 그러니까 그 일에 사용될 예상 시간을 적어두는 거죠. 간단하죠? 간단한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분류하고, 쿨 타임 시간을 정해 무엇에 집중할 지만 결정해도 하루의 결은 확 달라집니다.
혹시 손으로 적기 귀찮으신 분들은, 포켓모드에 가보시면 A4 용지에 출력해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페이퍼 수첩을 만들 수 있으니, 한번 활용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생산성에 목매다는 것도 안좋을 듯 하지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빨리 일 끝내고, 더 놀자고. … 출퇴근 하시는 분들은 해당 없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