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스페이스. 전 세계의 몇십억에 달하는 합법적 프로그래머들과, 수학 개념을 배우는 아이들이 매일 경험하는 공감각적 환상…… 인류가 보유한 모든 컴퓨터 뱅크에서 끌어낸 데이터의 시각적 표상. 상상을 초월한 복잡함. 정신의 비공간(非空間) 속을 누비는 빛의 화살들. 데이터로 이루어진 성군과 성단. 멀어져 가는 도시의 불빛……”
Wiliam Gibson의 Neuromancer, 3장
‘윌리엄 깁슨’, 1948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1968년 캐나다로 이주한 뒤 줄곧 캐나다에 살면서 SF 소설을 써온 작가. 이렇게 표현하면 세상의 많고 많은 작가들 가운데 하나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이버 펑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친숙하다. 그의 첫 장편소설 <뉴로맨서>가 사이버 펑크란 장르를 개척한 소설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 앞엔 항상 ‘사이버 펑크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어떤 이는 깁슨이 사이버펑크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아니다. 그의 작품에 사이버 펑크란 이름을 달아준 사람은 미국 ‘연간 SF 걸작선’의 편집자였던 가드너 도즈와였다. 깁슨은 오히려 사이버펑크라는 단어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였다. 그는 대신에 ‘C 문자 문학’(C-word literature)이라는 상징적인 용어를 쓰자고 이야기했다.
아아 이런, 처음부터 딴 얘기로 빠졌다. 어쨌든 결론은, 그는 사이버펑크란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사.이.버.스.페.이.스(Cyber Space)란 말을 만들었다.
많은 작가는 순간의 영감에서 작품의 핵심을 찾는다. 무라카미 류의 표현을 빌자면, 어느 순간 눈 앞에 거대한 지도가 나타나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고민해도 풀리지 않던 실마리가, 어느 순간 완전한 설계도를 갖춘 모습으로 떠오른다. 깁슨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비슷하다. 사이버 스페이스는 1980년대 초, 캐나다 밴쿠버의 한 비디오 상가 앞에서 잉태되었다.
그가 본 것은 번쩍이는 화면(지금 우리가 보기엔 정말 유치하겠지만) 앞에서 오락에 열중하고 있던 한 무리의 젊은이들. 그때 받았던 느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긴장된 자세에서 그 애들이 얼마만큼 게임에 빠져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화면에서 나온 빛이 아이들의 눈으로 들어가고, 신경세포들을 통해 몸을 타고 흐르면서 전자들이 비디오 게임을 통해 움직이는 듯한, 말하자면 마치 피드백 폐쇄회로 같았다. 그 애들은 분명히 게임이 투영되는 공간의 사실성을 믿고 있었다.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다고 믿어지는 세계를.”
오락이나 컴퓨터를 잘 몰랐지만,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구형 타자기를 이용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단편 소설 ‘버닝 크롬(1981, 사이버 스페이스란 말을 선보였다)이고, 몇 년 뒤 출간한 (사이버펑크의 원조라 불리는) 뉴로맨서(Neuromancer, 1984)다.
깁슨은 자신이 느낀 가상 세계를 ‘사이버스페이스’라 이름 지었다. 이 세계가 그의 초기 장편과 단편의 배경이 되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두뇌 안에 이식된 소켓에 전극을 꽂는 등의 방법을 통해 그 세계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인간이 만든 모든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는 정보들이 3차원으로 재현되어 있다.
사용자가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할 때 “존재”하는 “장소”를 나타내는 말, 사이버 스페이스. 깁슨이 처음으로 이름 붙인 이후, 다른 많은 이름들이 컴퓨터 정보들이 살고 있는 그 유령의 세계에 붙여졌다 : 네트, 웹, 클라우드, 매트릭스, 메타버스, 데이타스피어, 전자 전선, 정보 고속도로 등등.
… 그러나 그 세계의 이용자가, 인터넷에 연결된 수백만의 컴퓨터를 일컫는 말로서 선택한 이름은, 여전히 ‘사이버 스페이스’다.
80년대 이후 등장한 영화에서 그의 영향은 크다. 잘 알려진 많은 SF영화가 사이버 펑크의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졌다. 최근 개봉한 ‘매트릭스(Matrix)’ 역시 깁슨의 상상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컴퓨터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퀘이크’ 같은 FPS는 물론이고 ‘폴아웃’ 같은 RPG 역시 그의 세계관이 짙게 배어있다. 깁슨은 화려하고 세련된 미래 사회를 그리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 그래서 더욱 암울하고 비참한 현실.
그의 책에서 사이버스페이스는 ‘장소’로서, 실제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능가하는 아주 강렬한 경험들을 할 수 있다. 그곳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비슷해 보이는 시각적 환경이다. 그 공간에 나타난 기업들은 강력해 보.이.고, 군사 복합체들은 위험해 보.이.며, 전자 대응책들이 작동할 때는 작업 과정이 생생하게 화면에 보.인.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어떤 개념과 보이는 모습은 일치한다. 실제 네트워크에 신체 감각적 경험과 반응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중요한 장점은, 복잡한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데 일상적인 지각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 거창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사실 사이버스페이스란 단어에 대해 깁슨은 아래와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작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언어 요소들로부터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생각나는 대로 만들어진 신조어라고 할까, 팝 시학(pop poetics)적인 행동이었다고 할까. 처음에는 어떤 개념도 들어 있지 않았다. 매끈하면서도 텅 빈 채, 공인된 의미를 기다린 셈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그가 관심 가졌던 것은 컴퓨터 그 자체가 아니라, 컴퓨터를 둘러싸고 행해지는 사람들의 행동이었으니까. 다만 점점 모든 것이 컴퓨터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관찰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2020년 초에 발표한 신작 ‘에이전시’를 소개하기 위한 인터뷰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인터넷이 신비롭고 매력적인 장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뉴로맨서에 묘사한 사이버 스페이스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인터넷과 전혀 같지 않습니다. 여긴 정말 진부하고 바보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죠.”
* 2000년 9월 사이버 문화잡지 닷쯔(dotz)에 연재했던 글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따라서 지금 상황과 일부 다른 표현(…-최근 개봉한- 매트릭스라던가 매트릭스라던가 매트릭스라던가)이 있을 수 있으며, 빠진 내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