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메타버스 오지 않는다니까요-

지난 2020년 10월, 엔비디아 CEO 잰슨 황은 이렇게 말했다.

“If the last twenty years was amazing, the next twenty will seem nothing short of science fiction, The metaverse is coming.(Jensen Huang, CEO & Founder of Nvidia, @ GTC 2020).

한마디로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이분 왜 이러실까-하고.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고 말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 20년은 SF처럼 보일 거라고 말해서다.

그런 허세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기술이 기대를 배신하는 걸 그동안 너무 많이 봤다. 백투더퓨처 파트2나 블레이드 러너 같은 영화에서 상상했던 21세기는 오지 않았다. 2016년 아마존이 공개한 영상 속 드론 배송은 아직도 상용화되지 못했다. 자율주행차도 플라잉카도 아직 멀었다. 온다는 특이점은 대체 어딜 갔을까?

 

… 최첨단 기술이 우리에게 남긴 건 스마트폰과 QAnon 정도다. 세상도 인생도 기술도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요즘 한창 뜨거운 메타버스는 어떨까? 이 단어가 이렇게 뜰 거라고는 정말 생각 못 했다. 아바타를 이용해 살아가는 가상현실 세계, 알고 보면 익숙한 아이디어인 탓이다. 실제로 10여 년 전에, 메타버스를 표방한 세컨드 라이프라는 가상 세계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인기가 너무 높아서 구글 같은 곳에서도 유사 서비스를 만들었고. 당시 출시된 가정용 게임기에도 죄다 3D 아바타 채팅 서비스가 들어갔다.

맞다. 전에 알고 있던 메타버스는 3D 아바타 채팅 서비스다. 이게 뭐라고, 당시에는 차세대 인터넷이 바로 이런 3D 아바타 채팅 서비스일거라 믿는 이가 많았다. 3D 게임(?) 속에서 일도 하고 연애도 하며 살아가다가, 나중에는 VR 헤드셋을 쓰고, 몰입형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 거라고. 이런 생각을 반영한 게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원작 소설이다. 2011년에 나왔다.

 

 

 

 

멋진 아이디어처럼 보였지만,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조용히 망했다. 콘텐츠도 적고, 경제 시스템도 엉성했던 탓이다. 사람들은 떠났고 꿈은 빠르게 식었다. 그렇다고 메타버스라는 아이디어가 사라진 건 아니다. 많은 게임과 영화에 영향을 줬고, VR 기술이 다시 뜨면서 되살아났다.

게임 ‘포트나이트’를 만드는 에픽의 CEO 팀 스위니가 대표적이다.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우리가 언젠가는 VR 선글라스를 쓰고,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가상 세계에서 놀게 되리라 믿는다. 여기에는 디지털 휴먼을 만드는 컴퓨터 그래픽과 AI 기술, 실감 나는 가상 세계, 기기를 가리지 않는 소셜 네트워크, 우리 자신이 이 세계에 있다는 어떤 존재감이 필요하지만, 결국 그렇게 될 거로 생각한다.

MS와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들은 일과 소셜 네트워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MS는 가상으로 만나 서로 협업하며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기고, 페이스북은 가상으로 실제처럼 만날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어한다.

 

 

 

지금 뜨는 메타버스는, 각자 필요한 목적에 맞게 그때그때 이용하는 가상 공간/현실이다. 3D/VR 게임형 가상 놀이터고, 사무실이고, 카페다. 이렇게 간단한데,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현실을 대체하는 공간’이라거나, VR 기기를 항상 쓰고 살 것처럼 말한다거나,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술이라 생각하는 탓이다. 마치 인류가 여기에 걸어 들어가 살 것처럼 얘기하며, 그러니 여기에 투자해서 돈을 벌라고 한다.

유감이지만, 그런 메타버스는 없다. 앞으로도 오지 않는다. 문학적 상상력과 현실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기술이 덜 발전한 탓이기도 하지만, 애당초 인간이 그렇게 살지 않고, 그런 삶을 원하지도 않는다. 전 구글 CEO 에릭 슈미트가 말한 것처럼 “삶은 모니터 속에서 사는 게 아니다(Life is not lived in the glow of a monitor)”.

… 게임 아이템을 팔아 먹고 사는 일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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