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5월 임볼든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트리플 폴더블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재기를 꿈꾸는 지금 화웨이(2024) 모습을 생각하며 읽으면 재미있습니다.
미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를 미 상무부 블랙 리스트에 올렸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작년부터 만지작거리던 카드였고, 미중무역협상이 잘 안될 때마다 써먹던 카드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한 번에 좋게좋게 협상을 끝낸 적이 없다.
쓸 거로 생각했던 수를 내밀었는데,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예상보다 훨씬 많이 준비했다. 전에는 물건을 살 수 없게 공급을 끊어버리는 정도였다면, 이번엔 물건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화룡점정은 반도체 설계 기업 ARM 홀딩스와의 관계다. 이 회사와 관계가 끊어지면, 화웨이는 당분간 아무것도 새로 개발할 수 없다.
트럼프는 왜 화웨이를 때리는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되돌리겠다고 말해왔다. 미국 내 일자리 감소 등이 중국과의 불공정한 무역 거래에서 파생된 결과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기술 도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란 경제 개발 계획을 통해, 주요 하이테크 산업을 육성해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야망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실제로 집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그동안 해외 기업 인수, 기술 이전 강요, 산업 스파이 활동 등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미국은 주장한다.
화웨이는 이런 중국을 때릴 수 있는 약한 고리다. 중국 대표 기업 중 하나면서, 보안 우려가 있는 네트워크 장비 업체다(화웨이는 계속 부인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화웨이가 중국 스파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다른 한 편 5G 네트워크 시장을 장악하고 싶은 중국의 야심, 기술 굴기를 꺾을 기회이기도 하다.
약한 고리가 드러나다
그런 의미에서 미중무역협상이 결렬된 후, 미 상무부가 제재 조치를 취한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미국 회사들이 화웨이에 물건을 팔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 연락해 화웨이 네트워크 장비와 스마트폰을 쓰지 않게 만들었다. 구글, 인텔 같은 미국 기업을 비롯해 캐나다, 일본, 대만, 호주, 영국 등 여러 나라 회사가 동참했다.
빠른 움직임에 놀랐던 이유는, 화웨이는 이들 국가에서 물건을 팔기도 하지만 사기도 하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화웨이 매출은 약 1000억 달러이고, 700억 달러의 물건을 협력사에서 수입한다. 한국과 미국은 각각 100억 달러, 약 12조 원 규모의 부품과 중간재를 수출하고 있다. 미 네트워크 부품 제조 업체 네오포토닉스는 매출의 40% 이상이 화웨이와의 거래에서 나올 정도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미국은 화웨이를 제재하면서 기술 산업계 밑바닥에 있던, 잘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문제를 건드렸다. 다시 말해, 이 산업은 특정 국가, 특정 기술에 생각보다 강하게 종속되어 있다. 안드로이드 OS는 오픈소스가 분명하지만, 구글이 인증해주지 않는다면 (이미 구글을 내친)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선 팔기 어려운 물건밖에 만들 수 없다.
예전에 미 아마존에서 파이어폰을 선보였다가 실패한 이후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때는 스스로 자기 이익을 위해 구글 인증을 포기했던 경우다. 이번엔 미국의 행정 명령으로 특정 회사 스마트폰 사업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RM 홀딩스가 화웨이와의 비즈니스를 포기한 사례는 더욱 특별하다. ARM은 모든 스마트 기기에 들어가는 프로세서를 설계하는 회사고, 그 설계를 빌려줘서 돈을 번다. 애플, 삼성, 화웨이, 미디어텍, 퀄컴에서 만드는 거의 모든 프로세서가 ARM에서 라이센스를 받아 만들어진다.
이 회사가 라이센스를 주지 않겠다면, 사실상 앞으로 기존 제품을 능가할 새로운 프로세서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회사가 화웨이를 버렸다. 미 상무부의 행정 조치 이전까지만 해도, 화웨이에서 ARM 프로세서로 만든 서버를 개발하는 등 서로 관계가 돈독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웨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 현재, 화웨이는 위험하다. 어떤 상황이 와도 살아남을 거라고 말하지만, 중국 국내를 제외하면 주요 선진국에서 진행하고 있던 네트워크 장비 공급과 스마트폰 출시가 대다수 막혀버렸다. 아직 중국 내수시장과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중국 입김이 강한 곳과의 계약은 살아있지만, 스마트폰 세계 시장 2위, 네트워크 장비 시장 1위를 자랑하던 화웨이는 더 없다.
최소한 올해는 그렇다. 미리 재고를 쟁여놨다고 하지만, ARM과의 계약이 깨진 이상 새로운 스마트폰 및 네트워크 장비를 출시하기도 어렵다. 연 매출 1000억 달러짜리 기업이 국가 간 무역분쟁에 의해 순식간에 망가질 위기에 처했다.
화웨이만 망가질까? 화웨이에 700억 달러 규모의 부품과 중간재를 공급하던 다른 협력사도 어렵다. 그렇다고 사태가 쉽게 풀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미중무역협상 결과에 따라 화웨이에 내려진 제재는 약해질 수 있겠지만, 5G 네트워크 장비에 대한 전방위적 압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트럼프 집권 이전부터 제기되던 문제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화웨이가 살아남아도, 다시 예전 그 회사가 되기는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화웨이가 당하는 일은, 전에 중국에서 중국 진출을 꿈꾸던 미국 기업들에 했던, 사드 배치 논란 이후 한국 기업들에 했던, 그런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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