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정글에 숨겨진, 잃어버린 마야 도시를 발견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무성한 정글 수풀을 헤치고 나가거나, 땅을 파서 발견한 것이 아니다. 미국 툴레인 대학 박사 과정 학생이, 구글 검색을 통해 우연히 발견한, 멕시코 환경 감시 기관에서 조사한 자료를 처리해서 발견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미국 대학 연구실에서, 멕시코 정글의 숨겨진 땅 속 도시를 찾아낼 수 있는 원격 감지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이 연구에선 라이다(공중 레이저 스캐닝) 영상이 사용 됐지만, 광학 영상과 초분광 영상 기술이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 기사를 읽다, 예전에 관련 글을 기고한 것이 생각나 옮겨본다.
사람들이 모르는 미래 유망 기술, 초분광 영상
앞으로 어떤 기술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을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인공지능을 사용해 2020년대 중반까지 널리 쓰일 미래유망기술 10가지를 발표했다.
대부분 수소 에너지나 자율 주행,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등 한 번쯤 들어본 기술이지만, 뭔가 낯선 기술이 하나 들어가 있었다. 바로 ‘초분광 영상(Hyperspectral Imaging, 超分光映像, HSI)’ 기술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농업이나 지질학, 의학 등에 이미 많이 쓰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다, 초분광 영상
대체 어떤 기술이기에 유망 기술로 선정됐을까?
간단히 말하면, 초분광 영상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 찍어서 기록한 이미지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진동하면서 만들어지는 전자기파고, 전자기파는 파장이 아주 짧은 감마선부터 긴 라디오파까지,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우리 눈은 이 중에 가시광선 영역밖에 보지 못한다. 하지만 엑스선, 적외선, 자외선 등 가시광선 영역 위아래로, 보이지 않는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초분광 영상은 이 보이지 않는 빛까지 다 찍어서 보여준다.
물론 빛의 모든 파장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가시광선 영역(400~700nm)을 중심으로 근적외선 영역(700~1000nm)을 주로 찍는다. 용도에 따라 단파장 적외선 영역(1000~2500nm)과 장파장 적외선 영역(8~12㎛)을 찍기도 한다.
중요한 특징은 초분광이란 이름처럼, 빛을 아주 잘게 나눠서 찍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보통 빨강(R), 초록(G), 파랑(B)이라는 가시광선 영역을 중심으로 세상을 본다. 디지털카메라는 RGB 픽셀을 이용해 사진을 찍고, TV 역시 RGB 픽셀을 섞어 색을 만들어 영상을 보여준다.
초분광 카메라는 이 영역을 파장에 따라 적어도 100개 이상, 보통 300~600개 정도로 잘게 나눠서 연속해서 찍는다. 그래서 초분광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나 영상은, 사진 형태가 아니라 사진집 같은 두꺼운 형태로 표시된다. 대상을 파장별로 잘게 잘라 200장 정도 찍은 다음, 하이퍼큐브(Hypercube)라고 불리는 200페이지짜리 책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초분광 영상이 필요한 이유
왜 그런 사진을 찍을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암석이나 흙, 식물, 바닷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이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고, 비슷해 보이는 흙이라도 성분에 따라 다르다.
이런 특징을 분광 지문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분광 지문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 물질이 어떤 물질인지를 알 수 있다. 거꾸로 내가 찾고 싶은 물질이 있다면, 그 물질의 분광 지문이 있는 대역대 이미지를 확인하면 된다.
그러니까 … 초분광 영상을 찍으면, 내가 찾는 물질이 있는지, 찍힌 대상이 무엇인지, 구성 요소는 어떤 것인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성 고고학자인 사라 파캑은, 인공위성으로 찍은 영상을 사용해 옛날에 사라진 도시와 유적을 탐색한다. 이미 이집트와 남미에서 여러 유적과 도굴 흔적을 발견했다.
NASA에서 찍은 적외선 위성 사진, 다시 말해 분광 사진을 이용한다. 고대 이집트 주택은 진흙으로 지어졌고, 진흙은 다른 흙보다 밀도가 높아 주변 흙과 분광 지문이 다르다. 사라는 이런 특징을 이용해 땅속에 묻혀 있는 물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최신 기술처럼 보이지만, 1960년대부터 사용됐다. 인공위성이나 항공기에 실려 지질, 기상, 작물 생장 등을 확인하기 위해 쓰였다. 다만 그때는 4~7개의 영역을 정해 샘플을 뽑듯 찍었기에, 초분광이 아니라 다중 분광 영상이라 불렀다.
초분광 영상 기술은 1985년에 처음 제안됐으며, 초분광 영상이라 불리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다. 기술 자체는 21세기가 되어서야 제대로 쓰이기 시작했다. NASA가 개발한 지구 관측 위성 EO-1에 탑재되어 위성 원격 탐사용으로 실용화된 것이 처음이다.
초분광 영상을 찍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크게 공간 스캐닝과 스펙트럼 스캐닝, 스냅숏 방식으로 나뉜다. 여러 번 찍어서 하이퍼큐브를 만드는가, 한번 찍어서 만드는 가의 차이다.
여러 장을 찍으면 하나로 합칠 때 어긋나기 쉽고, 데이터를 얻을 때 시간이 걸리지만 대신 좀 더 정밀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한번 찍어서 만들면 간단하고 여러 장을 합치기도 쉽지만, 장비가 비싸고 얻을 수 데이터에 한계가 있다.
초분광 영상, 어디에 쓰일까?
굳이 수백 장을 찍을 필요 없이 다중 분광처럼 필요한 영역만 찍으면 더 낫지 않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초분광 영상이 가진 장점은 분명하다. 피사체의 다양한 파장을 연속적으로 다 찍어놓기 때문에, 일단 찍은 다음 나중에 필요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다루기 쉽지 않고 비싸다. 위성에 탑재된 초분광 카메라는, 하루에 약 700GB 정도의 데이터를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빠른 분석용 컴퓨터나 좋은 카메라도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아직, 다중 분광 영상이 초분광 영상보다 많이 쓰인다.
다행히 이미지 센서와 컴퓨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작고 비교적 저렴한 초분광 영상 기기가 개발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따라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용도로 초분광 영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먼저 지난 2020년 2월 19일 성공적으로 발사된 국산 환경관측 인공위성 ‘천리안 2B’ 호에 탑재됐다. 천리안 2B는 초분광 기술을 적용한 관측 센서를 가지고 있어서, 이산화탄소와 오존 등 다섯 개의 대기오염물질을 관측할 예정이다.
해양 사고에서 기름이 유출된 부분을 파악하거나, 녹조를 파악하거나, 농장의 토지 상태를 측정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노르웨이에 있는 에코톤은 수중 초분광 영상 전문 회사다. 이 회사는 드론과 수중용 드론, 초분광 카메라를 이용해 수중에 있는 파이프를 점검한다. 초분광 영상을 이용하면 평범해 보이는 파이프에 어떤 손상은 없는지를 파악하고, 기존 영상 검사보다 빠르게 진행할 수가 있다. 2020년 봄부터는 수산 양식장 모니터링도 시작할 예정이다.
최근엔 뇌수술에 적용하기도 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조사 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메탄가스 누출을 감지하거나, 식품이나 과일의 신선도를 측정하거나, 암세포 위치 확인, 치매 진단, 피부 상태를 확인하는 등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벽 너머에 있는 물체를 촬영하는 기술로도 개발되고 있다.
마치 마법 안경처럼 보이지만, 아직 초분광 영상 기술이 갈 길은 멀다. 장비 가격도 비싸고 촬영도 쉽지 않으며, 분석에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다만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한다면 쓸 곳이 매우 많아진다. 많이 쓰게 되면 가격도 내려갈 테니, 어쩌면 예상보다 빠르게 대중화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