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와 정보통신기술(IT)의 관계에 대해 짧게 생각해 봅니다.

촛불 집회와 정보통신기술(IT)의 관계에 대해 짧게 생각해 봅니다.

아마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한 첫 번째 촛불 집회는, 1992년 케텔 유료화 반대 시위였을 겁니다. 그 다음 PC통신 나우누리 찬우물 속보란이 전국 데모(...) 속보란으로 한때 이름을 날렸고요. 여기까진 90년대, 운동권을 대상으로 했던 시절이야기입니다만.

이 고릿짝 시절이 중요한 건, 68혁명 이후 세대들이 80년대부터 진지하게 고민하던 '전자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태동하던 시기였기 때문이겠죠. 바깥에선 멕시코 무장단체 사파티스타란 실제 성공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었고...

전자 민주주의를 위한 고민들은 김대중 정부 들어와,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실제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대중 집회 형식도 바뀌었고. 여기서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역시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거리 응원은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에 대한 항의 시위로 이어졌고, 21세기형 집회 양식은 이때 거진 다 만들어졌습니다. 노무현 정부도 이 기반 위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하고요. 인터넷 커뮤니티 + 젊은 학생 + 신기술을 이용한 미디어 활용.

 

이때 이후 여러 시위가 이어졌지만(ex 황우석 사태)... 예전과는 진짜 뭔가 다르다, 하고 느낀 건 2008년 촛불 집회였습니다. 버스에서 거리가 막힌다는 교통 방송을 듣고, 그냥 가봐야겠다-하고 갔는데, 사람들이 가득 있었던 집회. 특히 청소년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죠.

2008년 촛불 집회때 모습

그 다음으로 놀란 것은 이명박 탄핵(...진짜로)을 외치는 구호를 들었을 때. 뭐랄까. 정치 공학 따지는 사람들, 전술이랑 전략 같은 거 따지는 사람에 따르면, 이때 나오면 안되는 구호였거든요. 그런데 그냥 별 생각 없이 나옵니다. 흔히 있을 정치 공학적 선택이 잘 안보였습니다. 흔히 있을 주도적인 세력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진짜 신기...

 

그리고 이때부터 집회 생중계를 시작했습니다. 프리 허그 같은 다양한 실천 방식도 고민했죠. 일반 커뮤니티가 주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요. 재미있는 깃발이나, 사진 찍히기 좋은 여러 이벤트도 만들었습니다. 사실 어떤 '에너지'라는 면에선, 이때만큼 뜨거웠던 적은 이후에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폭력도 난무했지만 ... 마침 계절도, 여름이었다(이 표현 쓰면 안되는데).

그리고 긴 공백(일베가 태어났다로 요약하자) 후에,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에선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하지만 목표는 확실한 사람들이 몇 달을 싸웠습니다. 수명이 짧은 일반 초는 계속 밝힐 수 있는 LED 초로 바뀌었고요. 이때는 꽤 길었던 싸움이라, 인내심을 가지고 잘 대오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만큼 참가자 수도 늘었지만, 여전히 운동권(?) 주도라는 느낌은 남아있었던 시기.

 

그리고 다시 긴 공백(코로나19로 요약하자) 후, 2024년 윤석열이 자초한(...) 탄핵 집회에선, 또다른 모습을 봅니다. 팬클럽의 LED 응원봉이 난무하고, 다양한 노래가 흐릅니다. HOT와 윤도현과 민중가요와 BTS와 에스파를 한 자리에서, 한 플레이리스트로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 사회자도 고백하더군요. 제 취향은 아니지만 하고(ㅋㅋ). 음악 틀어주는 팀이 따로 있다고.

예전에 받은 간식 선물

그래도 그래서 좋았습니다. 사실 너무 추워서, 춤추며 놀지 않았다면 버티기 힘들었다고 생각했고요(저는 노래가 나오면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굳이 특정 문화를 중심에 놓지 않고, 있던 걸 샐러드 마냥 다 섞었으니 더 맘이 편하더라고요.

 

막상 스마트폰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는 것도 나름 포인트. 그게 통신망이 잘 안 터져서(...). 집회 자체가 엄청 질서정연했다는 것도 포인트. 경험치가 쌓인 데다, 이태원 참사 같은 기억도 있어서. 간식(?) 나눠주는 것도 포인트. 한국 사람에겐 먹을 것이 정말 중요하니까요.

 

저게 당연해 보여도, 예전에는 + 다른 나라 시위 볼 때는 거의 보기 힘들었어요. 예전에는 저게 무슨 시위냐! 이러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게 19금 딱지랑 같은 거라, 무질서와 폭력이 붙으면 열성팬은 늘어도 일반 참여자가 확 줄거든요. 아무튼 덕분에, 덜 추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번 윤석열 탄핵 집회는 지난 20년간 쌓아온 경험의 완성형입니다. 기반 커뮤니티는 더 작아졌지만, 의사소통은 더 활발해졌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습니다. 상호 감시라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네트워크로 상호 잘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확인했고요. 이런 나라에서, 왜 계엄 같은 짓이 성공할 거라 생각한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요.

 

+ 그래도 에스파 슈퍼 노바 같은 노래는 힘들었다는. 노래를 정말 모르겠어요. 아하하하.
+ 녹색봉 가진 분들이랑 같이 있었는데, 이게 이번 시위용 새로운 촛불인가-했더니 NCT 정식 응원봉이었단 걸 알고 깜놀.

About Author


IT 칼럼니스트. 디지털로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IT 산업이 보여 주는 'Wow' 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가져다 줄 삶의 변화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 프로필 : https://zagni.net/about/ 브런치 : https://brunch.co.kr/@zagni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zagni_ 이메일 : happydiary@gmail.com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