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DeepSeek이 시끌시끌한 것을 보고 잘 됐다- 생각했습니다. AI 산업에겐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거든요. 오픈 AI 주도로 계속 덩치를 키우고 키우고 키워가며 성능을 올리는 방식은, 돈도 많이 들고 전기도 많이 먹고 따라서 인류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 물론 그에 필요한 자본을 댈 수 있는 입장에선, 이런 게임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이 유리했겠지만요.
딱 그 정도만 생각했는데, 어제 증시에서 엔비디아를 필두로 AI 관련 주식이 폭락하면서, 오늘 아침 제 이메일 함이 또 그 얘기로 가득 찼네요. 투자 같은 거 안 하는 사람이라 관심 없는데, 테크 쪽 뉴스레터도 죄다 그 얘기.
아무래도 스타게이트를 비롯해 한참 트럼프 아부 정책 + 트럼프 집권 시기 틈타 규제 다 해체하고 산업 확장 하려는 와중이었는데, 외부 충격이 세게 와서 그런 듯합니다. 뒤통수를 맞았다고 할 수도 있고, 그동안 주가가 너무 올라서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기도 했고요.
예, 딥씩의 핵심은 비용 절감입니다. 비용을 아꼈는데 성능은 비슷하죠. 천만 원짜리 컴퓨터를 50만 원에 살 수 있다면, 혹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미 쓰는 사람도 속속 생겨나고 있고요. 사실 모두가 기다려온 순간이기도 합니다.
막상 딥씩 개발자들은 개발 비용이 화제가 될지 몰랐다고 합니다. 중국은 미국의 규제로 인해 컴퓨팅 환경이 제약을 받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업을 한 결과가 딥씩이었을 뿐이라고 하네요.
... 그게 뭐야?라고 하실 수 있지만, 많은 혁신은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태어납니다.
문제는 이런 가격 혁신(?)이, 현재 미국 AI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 가정을 박살 낸다는 겁니다. 그동안 AI 산업은 더 많은 서버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키면 뛰어난 결과가 튀어나온다! 그러니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는 이야기에 기반하고 있었거든요.
이는 실제 결과에 기반한 주장입니다. 챗GPT가 그래서 태어났고요. 명확한 결실이 있었으니 투자를 과감하게 집행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물량공세 AI였다고 해야 하나요. 돈이 많이 들어가니 이런저런 이유로 제품 가격 올리는 것도 정당화됐죠.
... 실제로 돈 못 번다. 쓰일 곳을(=제대로 돈 벌 곳) 찾지 못했다는 얘기는 깔끔하게 무시하면서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꽤 많은 기술 제품이 처음엔 어찌 쓰일지 몰라 힘들어하곤 했습니다. 그러니 일반 인공 지능(AGI)란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며 더 투자가 필요하다고 돈 내놔-하고 있었죠. 우린 아직 개발단계이고 AGI에 도달하면 돈을 낳는 황금 거위가 될 거라면서요.
DeepSeek의 성공이 진짜라면, 이런 이야기가 무너집니다. 반전, 또는 터닝 포인트. 물량공세가 아니어도 AI가 발전할 수 있다면? 아니면 현재 정도 AI를 싸게 많이 돌려서 쓰게 된다면? 더 많은 전기와 더 많은 서버가 없어도 그 정도로 충분하다면?
간단히 말해 기존 폐쇄형 AI를 개발하는 회사 모두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비싼 돈 들여 쓸 이유가 없으니까요. 거꾸로 이런 오픈소스 AI를 이용해 회사마다 자체 AI 서버를 구축하는 기업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AI 인프라 구축하겠다고 원자력 발전소 되살린다 온갖 곳에 다 데이터 센터 짓겠다-하는 일도 멈추거나 느려질 수 있습니다. 사실 미친 짓인 거 다들 알잖아요. 애들 숙제하고 디자인 아이디어 얻고 코딩 초기 빌드 만들겠다고 국가급 전기를 소모하는 게 말이 되나요.
다르게 생각하면, 컴퓨터 산업에서 진공관이 트랜지스터로 바뀐 때만큼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컴퓨터는 그때서야 상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싸게 누구나 쓸 수 있으면 많은 다양한 사용/응용 사례가 만들어지고, 그때부터 시장이 진정한 의미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빅테크 중심으로, 거대 자본을 가진(또는 투자받을 수 있는) 기술 기업만 AI 모델을 개발하고 훈련시키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애당초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딥씩 충격이 가라앉고 다시 빅테크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그런 문제는 여전합니다.
특정 기업들이 세상을 좌우하는,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힘을 쥐게 되는 건 모두가 우려할 만한 상황입니다. 당장 일런 머스크가 눈에 띄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고요. 딥씩 웹 버전에 천안문 사태에 대해 질문하면 답변 거부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설날 맞이 선물처럼 살짝 즐기려고 합니다. 앞으로 전개될 다양한 상황을 상상=뇌내 시뮬레이션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요. AI 산업이 다른 쪽으로 얼마든지 터닝할 수 있다는 힌트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재밌지 않나요?
아무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