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TV 홈쇼핑을 보시더니, 뭔가를 주문해 달라고 하십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하면 더 싸다고 하면서요. 예-하고 주문을 하고 있는데, 슬쩍 말을 건네십니다.
“넌 좋겠다.”
무슨 말인가 해서 보니,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어머니 대신 주문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배달 음식도, 물건 주문도, 온라인 쇼핑도, 세금을 내거나 서류 같은 것을 보내는 것도 대신합니다.
속으론 제 돈으로 대신 주문 하니 어머니가 더 좋으신 거 아닐까요-하고 생각했지만, 말하진 않았습니다. 제 무덤을 제가 파고 싶진 않으니까요.
사실 어머니는 스마트폰을 곧잘 쓰십니다. 친구들과 카톡도 하시고, 유튜브에서 영상도 보시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검색도 하십니다.
다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스마트폰 뱅킹을 비롯해 뭔가를 결제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못하십니다. 택시 부르는 앱도 못 쓰십니다. 지도 앱도 못 쓰시고요. 스마트폰뿐만이 아닙니다. 음식점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건 하실 수는 있는데 안 하십니다. 마트에서 셀프 결제하는 것도 마찬가지.
그래서일까요? 안 그래도 점점 안 좋아지시는 관절염에 겹쳐, 어째 요즘이 옛날보다 사는 게 더 힘든 것 같다고 하십니다. 제 어머니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코로나 19가 대유행했던 시기, 빠른 대응을 위해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고령층에서 많은 불편을 겪었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거기에 더해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나 스마트폰앱으로 바꾸는 경우가 늘면서, 요즘엔 평범한 일상조차 망가지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어머니 잘못이 아닙니다.
불편함을 느끼는 당신 탓이 아닙니다.
어려운 기술은 잘못됐다
그냥 나이를 먹었을 뿐인데, 사는 게 남들 눈치가 보인다면, 이상한 겁니다. 그냥 눈이 보이지 않을 뿐인데, 팔다리를 잘 못쓸 뿐인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인데 평범한 생활을 할 방법이 없다면, 이상한 겁니다.
디지털 기술은 그러라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거꾸로 잘 모르는 사람도 쓰기 쉽도록, 장애가 있어도 쓰기 쉽도록, 다시 말해 누구나 쓰기 쉽도록, 디지털 기술은 지금까지 진화해 왔습니다.
물론 그게 쉽지 않으니 갖은 궁리를 다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쓰는 컴퓨터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갖춰서, 키보드와 마우스만 있으면 조작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게 당연해 보이지만, 오래전 컴퓨터는 타자기와 비슷해서, 모니터에 글씨만 줄줄 나열하는 그런 물건이었습니다. 컴퓨터에 입력할 명령어를 외우지 않으면 조작할 수 없었죠. 그걸 누구나 쓰기 쉽게, 사무용 책상을 베껴 디자인한 것이 요즘 컴퓨터입니다.
스마트폰이 성공했던 이유도 비슷합니다. 쓰기 쉬웠거든요. 키보드나 마우스도 필요 없이, 그냥 손가락으로 톡톡 터치를 하면 작동합니다. 쓰기 쉬운데, 변신 로봇처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전화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할 수 있죠.
이렇게 좋으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젠 누구나 손에 쥐고 있는, 아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쓰고 있는 스마트 기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제는 거기서 생깁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다 스마트폰을 잘 쓰는 것은 아닌데, 다 잘 쓸 거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인터넷 서비스나 앱을 만드는 사람들이요. 어떤 표준적인 사용자를 상정하고 만드는 거죠.
일부러 잘 못 쓰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기도 합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돈의 논리, 시장의 논리가 개입되면 상황은 더 안 좋아집니다.
… 쓰기 좋은 제품이 아니라, 돈만 벌면 된다는 제품이 태어나거든요.
디지털 소외,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디지털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반기는 편입니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를 생각해 보면 지금은 정말 편리한 시대가 된 것이 맞습니다.
온라인 쇼핑, 다양한 배달 음식을 비롯해 스마트폰 하나로 세금도 납부하고, 기차표도 사고, 은행 업무도 처리하고, 메신저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익숙해지면 키오스크로 편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셀프로 빠르게 결제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변화는 옛 것과 함께 가야 합니다. 코로나 19가 유행할 때, QR코드로 출입기록을 확인하면서도, 한편으론 행정복지센터에서 신분증 붙여준 QR코드 스티커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처럼요.
문제는 이게 안된다는 겁니다. 방법의 다양성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편리함이나 이익을 위해 기존 방법을 배제하는 쪽으로 가버립니다. 주문 받는 사람이 없는 가게, 현금을 안 받는 버스, 지점을 없애는 은행들처럼.
... 이유야 당연히 돈 때문이고요.
한 푼도 손해를 볼 수는 없으니, 우리 것을 쓰고 싶으면 사람이 바뀌라고 합니다. 이런 걸 잘 못 쓰는 사람을 위한 정책도, 배워서 잘하자는 정책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변화된 세상에 발맞추는 교육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특정 방법을 배제하는 쪽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이 공존하도록 강제하는 정책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인터넷은 가끔 멈추고, 우리는 지금도 늙어가고, 새로운 기술은 계속 나옵니다.
그때마다 적응 못 한 사람 탓을 해야 한다면, 정말 이상하고 우습지 않을까요?
* 문화저널 2024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