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폰, 소년은 살고 싶어 어른과 싸운다

지난번에 놉을 권해준 친구가, 역시 안 무섭다며 권해준 공포영화를 봤습니다. 안 무서운 공포영화를 왜 자꾸 권하는 걸까요. 영화 제목은 블랙폰입니다. 처음엔 BLACK PAWN으로 생각해서 무슨 판타지 같은 건가- 했는데, 제가 너무 나갔네요…. 그냥 BLACK PHONE이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제일 무서운 건 포스터입니다. 보자마자 영화 ‘그것(IT)’이 딱 떠올라서, 무슨 살인마가 등장하나 했더니, 등장합니다(…). 보다 보면 ‘기묘한 이야기’도 생각나실 거예요. 분위기가 조금 비슷합니다. 이제 보니 제가 미국 70년대 80년대 배경인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추천해 준 거였네요.

… 친구야 고마운데 난 그냥 레트로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데(…).

* 블랙폰은 현재 유튜브(링크)에서 빌려보는 것이 가장 쌉니다. 대여 2,500원 / 소장 7,500
네이버 시리(링크)시즌(링크)에선 대여 5,000원/ 소장 9,900원. 웨이브(링크)에선 대여 4,000원/ 소장 9,900원입니다.

재밌는 건, 친구가 한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런 적 드문데요. 정말 안 무서운 공포영화였습니다. 공포라기보다는 스릴러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요. 아니 스릴러가 맞을 것 같아요. 제가 공포영화 = 잔혹함, 갑툭튀, 무서운 분위기 뭐 이런 거로 생각해서 그렇긴 하지만, 이건 죽은 친구들과 힘을 합쳐 살인마를 무찌른다는 이야기라서.

배경은 1978년 미국 노스 덴버. 같은 동네 아이들이 다섯이나 실종됐는데도, 뭔가 조용한 도시가 배경입니다. 여기는 가난한 곳이거든요. 감독이 어린 시절 살았던 도시라고 합니다. 그냥 그때 그 시절 자기가 느끼던 걸 묘사한 거라고. 그러니까 여기는, 아이들끼리도 폭력이 난무하고, 어른은 당연한 듯 아이에게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도시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 납치된 주인공 피니(메이슨 테임즈 분)에게 처음 전화를 건 브루스는 야구를 잘하는 일본계 미국 소년이죠. 피니를 위기에서 구해준 빌리라는 소년은 신문 배달을 하는 아이였습니다.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려준 그리핀은 영화에서 나온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만, 벤스는 가난한 동네에서 흔히 보이는 동네 일진, 깡패였죠.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로빈은, 아버지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멕시코계 미국 소년입니다.

 

가난하고 위험한 도시에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던 아이들은, 아동을 노린 연쇄 살인마에게 걸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여섯 번째 희생자로 납치된 주인공 피니가 등장합니다. 학교 내 왕따이자,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가 있는 … 영능력을 가진 소년이죠.

살인마 그래버는 왜 이 소년들을 노렸을까요? 그야 쉽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 검은색 밴이 계속 돌아다니는 데도, 검은색 밴이 위험하다는 걸 경찰이 알고 있는데도, 그래버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습니다. 수사를 하는 형사도 고작 둘. 오죽하면 살인마의 동생이 취미로 살인마를 추적하고 있었을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피니의 여동생 역시 강한 영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살인마의 변태 같은 취미가, 납치한 아이들을 가지고 노는 거라는 겁니다. 일부러 아이들을 특정 행동으로 유도하고, 넌 내 기대를 배신한 나쁜 놈이라며 벌을 주죠.

이게 다행인 건지 아닌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래서 시간을 벌고, 탈출할 방법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어어, 이렇게 된단 말야? 하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더군요. 조금은 만화 같은 결말이랄까요. 그동안 친구들이 알려준 방법을 모두 모아, 문제를 해결합니다.

…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한 소년의 성장기로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피니의 삶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질 겁니다. 학교에서 괴롭히는 아이들도 없고, 짝사랑하던 소녀에게 가볍게 인사할 용기도 생겼으니까요.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을까 했지만, 갇혀있던 기간 내내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요. 혼자라면 무서웠겠지만, 내내 또래 아이들과 함께 있었으니까요.

무엇보다 피니는, 호기심 많고 다정한 아이였습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실종된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있던 아이. 친구 로빈의 말처럼, 때리는 건 망설여도 맞는 건 자신 있었던(…) 아이. 맞아도 항상 다시 일어섰던 파이터.

그런 피니였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친구들의 조언을 실행하고 응용하며, 나쁜 어른을 물리칠 힘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보면 진짜, 이 영화가 한 소년의 성장 스릴러라고 해도 맞을 겁니다.

악의에 가득 찬 어른들과 맞서 싸우며 어른이 된, 한 소년의 이야기라고.

 

* 영화는 재밌습니다. 큰 감동을 주진 않습니다.
* 제가 ‘비포 선셋 비포 선라이즈’ 진짜 좋아하는데요. 영화 끝날 때까지 에단 호크인 거 몰랐습니다. 이건 제가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 그런 것도 있습니다.
* 무서운 부분은 두 번 정도 있었는데, 공포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게 무서워? 하고 핀잔주실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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