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별로 안 좋아할걸?”
영화 ‘놉’을 보고 나서 조던 필 감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넷플릭스에 조던 필-로 검색하니, ‘겟 아웃’이란 영화가 먼저 뜹니다. 꽤 괜찮은 영화라고 들었던 적이 있어서, ‘이상하게 영화를 추천해 주는’ 친구에게 먼저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안 좋아야 할 거란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상하네요? 이 친구가 추천해 준 영화가 사실 제대로 된(…) 대중적인 영화가 전혀 없었거든요. 한때 본인 입으로 ‘난 시네필이 싫어’라고 하는 이상한 영화광이었는데요. 꽤 좋다고 소문난 영화인데, 난 싫어할 거다?
“그냥 기묘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편해.”
오케이. 그럼 기대 없이 본다-하고 틀었습니다. 기묘한 이야기는 좋아하거든요. ‘겟 아웃(Get Out)’. 영화 ‘놉’을 만든 조던 필 감독을 세상에 알린 스릴러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웬 남자가 납치되면서 시작합니다. 얼마 전에 본 ‘블랙폰’이 떠올랐지만, 다행히 납치된 남자가 주인공은 아니었네요. 납치 이후 다음 장면에서 진짜 주인공이 나타납니다. 어, ‘놉’의 주인공이었던 대니얼 칼루야(여기선 크리스 워싱턴역)입니다. 하하하. 되게 반가웠어요.
…따지자면 ‘겟 아웃’을 먼저 찍었겠지만요.
‘놉’에선 왜인지 평생 독거노인으로 살 것만 같은 포스를 풍겼는데, ‘겟 아웃’에선 시작부터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백인이고, 예쁘네요. 그리고 여친 부모를 만나러 간다고 합니다. 웨딩 스토리인가요.
친한 친구도 있습니다. 꽤 웃겨요. 크리스 여친과 친구가 만나는 대화가 재밌어서, 이거 코미디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친 부모님도 만나네요. 두 사람 행동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자상하고 인자하게 생겨서 좀 속았습니다.
여기까진 부드럽게 흘러가는데, 이 다음부터가 이상합니다. 나오는 사람마다 정상인데 뭔가 부자연스러워요. 뭐 이런 연극적인 대사를 하고, 연극 같은 행동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나중에 크리스가 잡힌 다음, 모든 진실이 (중간에) 밝혀집니다.
… 한 방 먹었네요. 진짜.
전작…은 아니고, 전에 본 ‘놉’에선 이런 반전은 없었기에, 꽤 띵-했습니다. 모든 이상한 장면들이 순식간에 말이 되는 행동으로 바뀌면서 이해되는 경험, 결국 다시 보기가 뒤로 돌려 볼 수밖에 없는 거, 경험해 보셨죠?
그리고 알겠더라고요. 친구가 왜, 내가 이 영화를 안 좋아야 할 거라고 한 건지. 로봇도 괴물도 나오지 않고 SF도 시간여행도 로맨스 영화도 아니지만, 그래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이건 기묘한 이야기지만, 사람을 팔고 사는 기묘한 이야기네요.
예, 사람이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일방적으로 유린하고, 그런 유린에서 탈출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인종차별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들어가 있긴 한데, 사실 그건 저로선 잘 와닿지는 않는 부분이고…
… 그냥, 사람이 사람에게 못 할 짓을 하는 이야기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 이런 줄도 모르고 알고 보니 정원사 흑인과 가정부 흑인이 실제로 이 집을 다스리는 주모자고 여자 친구랑 여친네 가족이랑 그들의 지배하에 노예처럼 살면서 뭔가 이상한 일을 하고 있다는 추측을 한 제가 한심스러워졌다는. 젠장 한통속이었어(…).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는 일이야 늘 일어납니다. 영화에선 그걸 기묘한 이야기처럼 꾸며서, 대놓고 표현하죠. 대상은 항상 사회적으로 먹잇감이 될 만한 약한 사람들. 누군가가 나를 동정하는 척할 때 화가 나는 이유도, 그건 곧 내가 포식자의 먹이라고 말하는 거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당연히, 포식자에겐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그걸 사랑으로 포장하든 공헌으로 포장하든 영원한 삶으로 포장하든 말이죠. 애당초 포식자가 아닌걸요. 인간 사회에선 말이죠. 그걸 백만 번 혼자 부정한다고 해도 소용없지만, 꼭 자기는 특별한 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싫죠.
… 친구가 맞았네요. 진짜 진실이 밝혀지면서 속으로 어이없었다는.
다행히(?) ‘겟 아웃’은 ‘놉’에 비하면 스케일이 훨씬 작은 데 비해, 영화적인 재미는 더 낫습니다. 재미있어요. 별것 아닌 장면들 같은데 끝까지 몰입해서 보게 됩니다. 잘 만들었네요.
보통 같은 감독 영화를 보다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 있는데, 같은 배우가 출연함에도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입니다. 물론 연출 솜씨는 어디 안 가서,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요. 아, 죄송, 이 영화가 전작이죠(…).
그래서 결론은, 추천입니다. 잘 만든 영화입니다. 대신 다른 정보 얻지 않고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반전이 아주 골 때리게 다가올 겁니다. 그리고 저번처럼 별로 무섭지는 않습니다. 포스터가 제일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