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디(Nobody)’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 또래는 분명히 원더걸스의 노래를 떠올릴 겁니다. 노바디 노바디~ 노바디 노바디~하는 그 노래 말이죠. 처음 노바디라는 영화 제목을 봤을 때도, 그래서 딱히 눈길을 주진 않았습니다. 잘 아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리즈 물도 아니고, 존윅이란 영화를 보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냥 액션 영화 뭐 좋은 거 없냐?라고 단톡방에 던졌는데, 친구가 그럽니다. 이거 재밌다고. 옛날 홍콩 영화 생각날 거라고.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기에 틀었습니다. 보다 재미없으면 딴 거 볼 생각이었는데, 90분이 훌쩍 흘렀습니다. 제 평가는 ‘시계 한 번도 안 봄’.
예, 재밌습니다. 이번 주말에 대충 액션 영화 보고 싶은데 볼 거 없다 싶은 분들은 이거 보세요.
* 다른 설명이 붙지 않은 사진은 네이버 영화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영화 내용은 간단합니다. 전직 정부의 비밀 킬러로 추정되는 남자가, 고양이 목걸이 찾으러 갔다가 러시아 갱단과 얽히게 되고, 부숴버립니다. 끝. 누가 그러더군요. 이런 게 남성 영화라고, 50대 가장이 ‘나는 아직 고자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영화라고.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들 딸 하나씩 있는 4인 가족. 겉으론 평온하지만 그래서 지루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쓰레기 버리는 일조차 제대로 못하는 무능력자처럼 보이는 남편. 자신을 우습게 보는 직장 상사이자 처갓집 사람들. 그 와중에 들이닥친 좀도둑들에게 ‘평화를 위해’ 굽신거리자, 아들마저 그를 외면합니다.
속이 터질 만도 하죠. 한때 아드레날린이 터져 나오는 삶을 살았던 사람일 수록 더 그렇습니다. 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하는 자괴감. 좀도둑들이 훔쳐간 고양이 목걸이는 이런 분노를 터트릴 계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액션 쾌감(?).
사실 액션 영화에 스토리는 … 중요하죠. 다만 스토리가 액션을 가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노바디-는, 코로나19 시기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맨손 액션을 보여줍니다. 초반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격투신은 그 중에서도 백미. 감독이 직접 한국 스릴러처럼 보였으면 좋겠다-하고 말했는데요. 정말 ‘올드보이’가 생각나는 액션 명장면이 펼쳐집니다.
… 물론 리얼한 액션은, 뒤로 가면 갈수록 주인공 허치 맨셀(밥 오덴커크 분)이 살아나면서, 뮤지컬(?) 같은 느낌으로 변하지만요.
영화를 보다가 이거 전작이 있는 건가? 아니면 원작이 따로 있나? 하고 생각한 부분도 많습니다. 많은 걸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정보원인 ‘이발사’ 같은 존재 등 말하지 않은 원작 설정 같은 것이 있다고 느껴져서 그랬는 데… 아니네요. 없어요. 그냥 원래 작가가, 이렇게 세계관을 잡고 대본을 쓴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액션 영화지만, 선을 넘지는 않습니다. ‘니가 뭔데 날 깔봐?’라고 주인공이 느끼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깔보거나 하지는 않아서 그렇습니다. 러시아 갱단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감독이 러시아 출신입니다.), 다른 가족이나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그렇습니다.
타인이 나를 망가트린 원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택한 삶이 자신을 지루하게 망가트렸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꽤 특이했어요. 그렇다고 착한 척 하는 건 전혀 아니라서, 액션의 참된 맛이 손상되지는 않습니다. 일단 이런 영화는 시원하게 쓸어줘야 맛이니까요.
재미있게도, 주연을 맡은 밥 오덴커크는, 영화 촬영 이후 심장 마비에 걸렸다가 살아났습니다. 운좋게 살았다고 해도 좋은데, 이런 말을 남깁니다. 아무래도 노바디를 위해 지난 2년간 격투기 훈련을 받으면서, 심장이 튼튼해 진 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요. 영화 속편 제작도 결정됐습니다. 제작비 1600만 달러에 수익 6천만 달러 이상을 벌었으니, 당연하겠죠.
그리고 많은 팬들은, ‘존 윅 vs 허치 맨셀’ 같은 영화가 언젠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 이 영화 속 최고 걸작 캐릭터인 허치 아버지. 낯익다 싶었더니 빽 투 더 퓨쳐에 나온 박사님, 크리스토퍼 로이드 옹이었다는…(오덴커크가 제안했다고 합니다.)
* 허치의 아내는 영화 ‘원더우먼 1984’의 히폴리타, 원더우먼 어머님이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