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1가와 2가 사이에는 종각이 있습니다. 지금 밀레니엄 타워가 있는 곳 건너편이죠. 그리고 그 종각 옆에는, 파파이스가 있었고, 그 옆에는 종로 서적-이라는 서점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흔히 추억하는 작고 따스한, 그런 서점은 아닙니다. 한때 교보문고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서점 가운데 하나였으니까요.
사실 90년대에 공부한다고 깔짝댄 적이 있었던 저로서는,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은 안 들릴 수가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무척 행복했던 장소였죠. 쉴 곳 하나 제대로 없었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많은 책이 있었고, 선배들에게 말로만 들었던 책들을 이곳에서 뒤지고 뒤져서 찾아낸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특히 이상하게 종로서적은 이런 면에서는 교보문고보다 훨씬 나았지요.
… 교보보다 잘 안팔려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ㅡ_ㅡa;;
종로서적은 약속 장소로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종각 역에서 특별하게 사람들이 모두 알만한 건물들이 없었던 때고, 종각은 왜인지 사람들이 잘 몰라서, 사람들은 종각역에서 만날 약속을 잡으면 흔히 종로 서적에서 보자, 라던가- 종로 서적 앞에서 보자- 라고 했습니다. 사실 핸드폰이 없고 삐삐나 있었을 시절이라서,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와도 책이나 잡지 보면서 기다릴 수 있기에 더 선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리고 12월쯤이 되어, 학력고사나 수능 원서를 팔 시즌이 되었을 때는 또 장난이 아니었죠. 주로 종로 서적 뒷골목 입구에서 팔았는데, 줄이 정말 줄줄줄-
물론 좁고 여러 층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이것저것 돌아보기에는 힘든, 지금 생각해 보면 일본의 오래된 서점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새롭게 단장도 하고 이벤트도 하고 그랬지만, 근처에 생긴 영풍 문고와 새로 리모델링한 교보 문고에 계속 고객을 뺏기는 것 같더니, 결국 2002년 6월에 문을 닫았습니다. 뉴스에서 그 사실을 보고 깜짝 놀라 아침 출근길에 들려보았더니, 저 말고 다른 아저씨 한 분도 저처럼 사진을 찍고 계시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는 아직도 그곳에 가면 여전히 종로서적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제 마음 속에서는 그냥 그 자리에 종로 서적이 있어요. 이제는 책도 살 수 없고, 다른 매장으로 바뀐지가 오래인데, 친구들에게 종로 서적 앞에서 보자-라고 해도 다들 알아듣더라구요. 이건 대체 무슨 일일까요.
… 마음에서 추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탓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