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그 시작을 유튜브 실시간 중계 채널에서 확인했다. 침략 받은 국가는 트위터에 공식 성명을 올린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어, 자신이 최전선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는 걸 세계에 알렸다. 텔레그램에선 수많은 사진과 전쟁 소식이 쏟아진다. 우크라이나어로 작성된 기사를 번역 서비스에 돌려 읽는다. 틱톡에선 민간인이 찍은 현장 영상이 쉴새 없이 올라온다. 예전에 없던 전쟁 상황이다.
1991년 CNN이 걸프전 생중계를 시작한 이후, SNS로 사람을 모으고 선전하던 시대를 지나, 영상으로 개인이 전쟁에 대처하는 시대까지 왔다. 인터넷이 폭탄만큼 힘이 세지는 않지만, 정세를 좌우하는 힘을 가진 시대가 됐다. 실제로 전쟁이 발발하자, BBC의 우크라이나 에디터 마타 쇼칼로는 현지 시민은 전기와 인터넷이 끊기는 걸 가장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21세기 사회적 생명선이 돼버린 정보통신 기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IT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크라이나 네트워크, 생각보다 튼튼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특징 중 하나는 인터넷을 통해 현지 상황이 전달되고, 현지 거주민과 계속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8년과 2014년, 러시아가 개입한 남오세티야 전쟁과 크림반도 강제 합병에선 러시아 사이버 부대의 공격으로 인해 인터넷이 마비됐다. 2015년과 2016년, 우크라이나 변전소를 공격해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니다. 인터넷 중단 탐지 및 분석(IODA) 프로젝트의 조사에 따르면, 일부 지역은 인터넷이 완전히 마비됐고, 몇몇 지역도 간헐적으로 인터넷 불통 상태에 빠지고 있다. 당연히 이번 전쟁에도 사이버 공격이 잇달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인터넷망을 마비시킬 수 없었다. 디도스 공격으로 일부 홈페이지를 다운시키는 건 쉽지만, 한 국가의 네트워크를 막는 일은 쉽지 않다(얼마 전에 북한이 당하기는 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으며, 뒤에는 EU 국가로 연결되는 백업 망이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 제공 업체도 4,900개로 스무여 개인 한국보다 훨씬 많다. 나쁘게 말하면 파편화됐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르게 보면 몇몇 망이나 데이터 센터가 공격받아도, 다른 쪽으로 돌려서 연결할 방법이 많다는 의미다.
·POINT : ISP가 너무 많아서 상호 충돌이 빈번히 발생하기에, 우크라이나 기술자들은 상황에 맞춰 융통성 있게 네트워크를 수리하는 일에 능숙하다고.
틱톡, 세계가 전쟁을 감시하는 방법을 바꾸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며 쓴 몇 가지 방법은 이후 전쟁의 흐름을 일정 부분 바꿨다. 민간 협력자를 가장한 사보타주, 디도스 공격을 포함한 사이버 공격, SNS를 활용한 심리전과 정보 조작이 여기에 포함된다. 러시아는 (당연히) 부정하지만, 이 방법은 다른 나라 정치에 관여하기 위해서도 계속 쓰인 거로 알려져 있다.
틱톡은 그런 방법을 옛것으로 만들었다. 틱톡이 ‘유틸리티’로 가진 강력한 힘은, 누구나 쉽게 영상을 찍고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이 하지 못한 일이다.
평소 패션과 일상, 식사를 찍어 올리던 사람들이 전쟁에 관한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다. 화염병 던지는 모습을 찍은 영상, 버려진 장갑차나 미사일 폭격 장면을 찍은 영상, 도움을 호소하는 영상 등 틱톡에 올라 #Ukraine 태그를 달고 올라간 영상은 정말 많고, 통합 조회 수는 300억 회가 넘는다.
세계와 러시아, 중국 눈치를 동시에 봐야 하는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는 울고 싶겠지만, 틱톡 앱은 세계가 전쟁을 감시하고 분노하는 방법을 바꿔놓았다. 물론 온갖 가짜 뉴스와 확인되지 않은 정보도 흘러 다니고, 전쟁을 관음적 시선으로 소비한다는 비판도 크다.
·POINT : 정리된 정보를 얻고 싶다면 텔레그램 메신저 공식 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해커 전쟁은 현재 진행형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크라이나는 기술 강국이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맥스 레브친, 왓츠앱 창업자 얀 코움이 이 나라 출신이다. 데카콘 기업으로 평가받는 그래머리, 유틸리티 앱으로 잘 알려진 리들 같은 많은 스타트업도 가지고 있다. 구글이나 MS 같은 빅테크 기업 사무소를 비롯해 다양한 해커 조직의 활동 근거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전쟁이 시작되나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트위터와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해 ‘IT 부대’를 모집했고, 이 채널에 가입한 사람은 2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 웹사이트나 국영 TV를 공격해 마비시키는 데 성공했다. 핵티비스트로 알려진 어나니머스도 동참했다. 낮은 수위였지만 러시아 인공위성 관제소 해킹에 성공하기도 했다.
세계 해커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똘똘 뭉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동안 활발하게 활동한 많은 랜섬웨어 해커, 디지털 갱들의 고향이 러시아인 탓이다. 콘티와 쿠핑 프로젝트라는 해커 조직은 공개적으로 러시아 지지를 표명했다.
물론 사이버 공격은 누가 피해를 봤는지는 명백하지만, 누가 어떤 의도로 공격했는지는 스스로 밝히기 전에는 ‘강력한 의심’ 정도로 끝나곤 한다.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이전 MS는 폭스블레이드라는 데이터 파괴형 악성 코드의 공격을 발견해 미국 정부와 정보를 공유했지만, 러시아 해커나 정보 당국이라고 의심할 뿐이다. 역공을 우려해 아직 공개하지 않은 사건 역시 많다고 한다.
·POINT : 남의 일이라고 안심하지 말자. 이번 전쟁으로 인해 세계 네트워크의 위험 수위가 한꺼번에 올라갔다. 우크라이나를 노리는 공격이 우리에게 올지도 모른다. 항상 최신 버전으로 보안 패치를 교체하고, 2단계 인증을 활성화하며, 바이러스 백신 등을 반드시 사용하자.
역사상 가장 빠르게 움직인 빅테크 기업
이번 전쟁을 맞이해, 기술 기업들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모습이었다. 페이스북, 트위터, 넷플릭스, 구글(그리고 유튜브) 등은 모두 가짜 뉴스를 단속하고,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를 퍼트리는 스푸트니크, RT, 로시아원 같은 러시아 매체에 제한을 걸었다. 구글과 애플은 러시아에서 구글 페이와 애플 페이를 쓰지 못하게 막았으며, 애플은 러시아에서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스포티파이는 러시아 지사를 폐쇄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예상되는 미국 정부의 규제에 자신들의 선함을 증명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러시아 시장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가짜 계정을 제거했더니 바이든을 욕하는 애국적인 미국인 계정이나 러시아를 지지하는 애국적인 우크라이나인 계정이 사라진 건 덤이다.
그 밖에도 다양한 기술 기업들이 한꺼번에 행동했다. EA는 자사 스포츠 게임에서 러시아팀을 제거하고, 반전 게임 ‘This War of Mine’ 제작사는 게임 판매 수익 전부를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기부하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쓰기 위한 장비를 보냈다.
암호화폐는 조금 애매한 위치에 처했다. 우크라이나에서 태도를 바꿔 암호화폐로 기부금을 받기도 했지만, 러시아 부호들이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산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규제 방안을 논의 중이다.
·POINT : 그렇다면 러시아는? 원래 VK나 얀덱스 같은 자체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번 전쟁을 기회로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서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