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레고 드로리안이었습니다. 새로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살펴봤는데, 너무 예쁜 데 너무 비쌉니다. 그런데 3종류로 바꿀 수 있다고 하네요. 드로리안 1, 2, 3가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아, 생각해보니, 빽 투 더 퓨쳐를 본 게 벌써 30여년 전입니다.
… 뭐 제대로 기억할 리가 없죠.
이렇게 말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거 1985년 영화다. 30년이 아니라 37년이다! 라고요- 그런데 … 전 영화가 개봉할 때는, 극장에 갈 나이가 아니었거든요(…). 나중에 비디오로 나온 빽 투 더 퓨쳐를 봤습니다(백 투더 퓨처가 아니라 빽 투 더 퓨쳐라고 합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신 선배님들, 부럽습니다.
아무튼 생각나서 검색해보니, 아직 하네요(?).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고, 유튜브에선 천 원입니다. 시간이 지나니 떨이가 됐구나..하고 생각하면서, 한번 봤습니다. 아아, 이거 웬일입니까. 한번 보니까 빨려 들어 갑니다. 진짜 신기해요.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 이 영화 본 게 진짜 30여년 전인데.
▲ 정말 좋아했던 댄스신. 이때는 스윙댄스를 추게 될 거라 생각 못했죠..
생각해보니 여기서 전화하는 대상이 척 베리(…).
재밌는 건, 그때는 몰랐던, 안보였던 장면들이- 이제 보니까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제 보니까 보이는 장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보고 찾은 것, 몇 개 풀어놔 봅니다.
브라운 박사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였다?
처음 봤을 땐 전혀 안 썼던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었던 거지? 하는 겁니다. 1.2 기가와트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빽 투 더 퓨쳐 전체를 관통하는 문젯거리인데요. 지금 다시 보니…
리비아 테러리스트에게 플루토늄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핵폭탄을 만들어 달라고 받았다고. 아니 박사가 핵폭탄을 혼자 만들 정도의 실력인 것도 굉장하지만, 플루토늄을 개인이 다룬다고요? ㅋㅋㅋ 그것도 테러리스트가 훔친 플루토늄을 낼름?
와,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 분), 매드 사이언티스트였군요. 결과적으로 좋았지만, 연구를 위해선 테러리스트 따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였어요. 으하하하. 하기야 1955년의 브라운 박사도, 순찰 나온 경찰에게 자연스럽게 촌지를 건네주는 남자였죠(…).
마티는 키스다운 키스를 못했다
영화에서 마티가 키스를 하는 장면은 총 네 번 나옵니다. 여친이랑 세 번, 엄마(…)랑 한 번. 첫 키스씬은 기부금 내라는 분이 방해하는 관계로 못하고, 두 번째 씬은 여친이 데리러 온 아버지에게 돌아가기 전 가볍게, 세번째는 남동생이랑 키스하는 기분이라고 내침 당하고, 마지막 귀가 후 키스씬은 브라운 박사가 훼방 놓죠.
참 운도 없다- 싶은데, 영화 주인공 운명이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 참고로 여주인공에는 원래 다른 배우가 내정되어 있었는 데, 클로디아 웰즈(제니퍼 파커 역)로 촬영 전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들 말하길, 십대 여학생이 자기보다 키 작은 남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해서, 마이클 J 폭스(마티 맥플라이 역) 키에 맞는 배우로 바꿨다고.
키 작은 저는 웁니다.
▲ 키스는 못했지만, 당시 잠깐 스케이트 보드 붐을 일으킨 기억은 납니다.
정말 뜬금없이 유행했었다는…
브라운 박사는 스마트홈을 만들었다, 컴퓨터는 없었다
이건 진짜 이제야 보인 건데요. 초반 씬에서, 마티가 브라운 박사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 그 집엔 온갖 연구 기구가 놓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옛날엔 전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정말 이상한 느낌.
… 아무리 1985년이라지만, 컴퓨터 도움 없이 혼자 핵폭탄과 시간 이동 장치를 만들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요? 으하하하.
하기야 혼자 계산해서, 정확하게 번개가 떨어지는 순간에 드로리안에 전기가 공급될 주행 거리를 도출해내는 사람이니, 그럴수도 있겠다-하는 생각도 합니다만. 당시 컴퓨터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나름 팔리고 있었는데요. 뭐, 좋은 컴퓨터는 아무나 쓸 수 없었지만요.
그나저나 수동식 스마트홈 시스템은 나름 신선하긴 했습니다. 예전에는 저런 자동화 장치가 기술 괴짜를 상징하는 장치이긴 했는데요. 알람에 맞춰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리고, 개 먹이를 공급하는 장치라니- 이거 요즘에도 나오는 거잖아요!
여기저기 보이는 일본 브랜드
80년대가 워낙 일본 브랜드가 잘 나가던 시절이긴 했습니다. 소니는 요즘 애플 같은 위상을 갖추고 있었죠. 그래서일까요? 30년만에 다시 보니, 여기 정말 일본 브랜드가 많이 보입니다. 드로리안 정도나 미국 브랜드였다고 해야 하나요.
먼저 마티 아버지, 조지 맥플라이(크리스핀 글로버 분)가 쓰던 계산기가 있습니다. 잠깐 지나가듯 나오는 소품이라서 못 보신 분들 계실 텐데요. 당시에 많이 쓰이던, 프린터가 달린 계산기 입니다. 모델은 1981년 생산된 캐논 P3-DII 로 추정되고요.
왜 프린터가 달렸냐 물으신다면, 당시 계산기엔 액정창이 한 줄 밖에 없었거든요…
그 다음엔 유명한, 마티가 차고 있던 계산기 손목 시계 카시오 CA-50 입니다. 비슷한 제품이 아직까지 만들어지고 있죠.
박사가 시간 여행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던 타이머? 목걸이 시계에는 세이코와 카시오 제품이고요.
마티가 박사의 시간 여행 도전을 찍던 비디오 카메라는, 유명한 JVC GR-C1 입니다. 최초로 비디오 테이프 녹화 장치와 카메라 장치가 통합된 제품이죠. 무슨 소리냐고 하신다면, 초기 비디오 카메라는 카메라 장치와 테이프 녹화 장치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 마티가 쓰는 워크맨은 아이와 제품
그러니까 1980년대 미국은, TV를 제외하면 전자제품은 재팬! 같은 분위기였다는 거죠.
기술 표준은 생각보다 오래 호환된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엔 모든 기록을 텍스트 파일(확장자 *.txt )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 하드 디스크가 깨지고, 쓰던 서비스가 없어지고, 프로그램 포맷이 바뀌면서 데이터를 잃어버린 경험을 한 탓입니다.
30년 넘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하다보면, 결국 안 망가지는 건 없다고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백업만이 살 길입니다. 클라우드와 오프라인 항상 같이 저장해야 하고, 저장 내용은 다른 곳에 반드시 복사본을 만들어 둬야죠.
텍스트 파일로 기록해 놓은 것은, 파일 크기가 작아서 저장, 백업이 쉽습니다. 몇십년이 지나 *.hwp 파일을 못 읽는 날이 와도, *.TXT 파일을 못 읽을 걱정은 거의 안해도 됩니다. 기술은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버려지는 부분도 많으니, 안버려질 핵심 포맷에 집중하는 거죠.
그래서 마티가 1955년으로 가서, 1985년에 찍은 비디오 영상을 재생할 때는 조금 놀랐습니다. 어? 50년대 TV에서 80년대 비디오 카메라 영상을 볼 수 있단 말야? 했는데요. 생각해보니, 됩니다.
… 이유는 간단. 80년대 비디오 카메라가, 50년대 TV까지 지원하도록 설계됐으니까요.
별로 쓰지는 않지만, 현대 TV에도 달려 있는 RF 단자나 AV 단자는 1950년대에도 있었습니다. 컬러 영상 출력 신호는, 흑백 TV에도 연결해도 되도록 만들어졌고요. 표준이라고 말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새로운 걸 만들어도, 새 제품 이전에 만들어진 제품들은 모두 표준 단자나 신호를 지원하기에, 이미 있는 제품과 호환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새 표준을 만들어도, 과거 표준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덕분에 80년대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50년대 TV에서도 보고, 이 카메라를 2020년대에 가져와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일도 가능해지죠.
마티는 벌컨 인사를 했다.
마티가 아버지 조지를 현혹시키기 위해 외계인 흉내를 낼 때,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우주에서 온 다스베이더다! 벌컨 행성에서 왔다!고요. 그리곤 쫙 내미는- 손가락을 둘 씩 붙인 벌컨 인사.
… 이건 스타워즈와 스타트랙을 아는 사람만 웃을 수 있는 장면인데, 30년 전 저는 스타워즈도 스타트랙도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답니다(…).
Safety Last!
아 이건 깜짝 놀랐네요. 얼마 전 고전 영화의 특수 효과를 설명하다 알게된 영화였거든요. 이 영화의 유명한 장면을 딴 시계가 처음에 나옵니다. 영화를 위해 따로 만든 건 아니고, 원래 팔고 있는 시계라고 합니다.
백 투 더 퓨처. 사실 저에겐 인생 영화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 이거 봤을 때, 정말 너무 감명 받았거든요. 보다가 너무 재밌어서,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나가야 하는데, 나가지 않고 계속 봤던 기억. 그래, 과거가 미래를 만드는 거야! 하고 생각하게 됐죠.
… 30년이 지난 지금, 이런 현재가 과거 30년간 내가 했던 행동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정말 너무 너무 슬퍼집니다만.
뭐, 그래도 다들 알잖아요. 산다는 건 운칠기삼이란 걸.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고, 삶은 게임이 아닙니다. 내가 A란 선택을 했을 때, 반드시 B가 되지는 않지요. 그렇다고 주사위 게임도 아니어서, 운이 모든 걸 결정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할 만큼, 나이를 먹었는데도, 이 영화는 신기하게 재밌습니다. 예전에는 안보이던 것이 보이니 더 그래요. 필요 없는 장면이나 대사가 거의 없는 것도 재밌고요. 늦은 저녁, 요즘 볼만한 영화 없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권합니다.
진짜 두 번 봐도, 재밌습니다.
아, 그리고 레고 드로리안은, 현재 매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