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렇게 죽는구나- 한 적이 한 번 있었다. 십년 조금 전쯤이었다. 여러가지 일로 너무 몸을 놀린 탓이었을까. 급격하게 몸무게가 줄던 때였다. 누가 냉/온탕 번갈아 들어가는 것이 몸에 좋다길래,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들어갔다가를 세번쯤 반복했을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게 턱-막히는 것 같더니, 무거운 쇳덩어리가 가슴을 누르는 것 같더니,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심장이 제 멋대로 뛰고 있는 느낌.
…그 순간, 아,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무서웠다.
기다시피해서 탕에서 빠져나와, 아기처럼 웅크리고 바닥에 누웠다. 몇 분이 지났다. 다행히 심장이 제정신을 차렸다.
2. 죽어도 괜찮다-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 있었다. 꽤 큰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기 전이었다. 의사가 각서에 싸인을 하라고 했다. 싸인을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담배가 심하게 당겼다. 동생 녀석의 담배를 가지고 비상구 계단에 앉아서 마지막 담배를 폈다. 세대를 줄줄이 폈다. 그제서야 덜덜 거리던 손이 좀 진정됐다. 순간 뭔가 맥이 탁- 풀리는 게, 이렇게 죽어도 괜찮아-라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응, 괜찮아.
이렇게 죽는다고 해도, 괜찮아.
3. 언젠가 한 친구가 힘들다- 힘들다- 라고 투정을 부렸다. 나는, 자기 혼자만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아무도 나를 안 알아주고, 삶이 어렵고, 나는 너무너무 불쌍하다-라고 얘기하는 친구들을 어려워한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내 얘기를 잠시 들려줬다. 그 친구가 대답한다. “그렇지만 기껏해야 너는 …”
화가 났었다. 그러다 도로 화가 삭는다.
사람은 남의 일은 너무 쉬운 듯 말하고, 자신의 일은 너무 힘든 듯 말한다.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자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일에 일일이 화를 내기엔, 나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 그리고 내 안에 들어있는 “대단히 드라마틱 해 보이는 내 삶”도, 다른 사람들에겐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이젠, 알고 있으니까.
4. 언젠가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 찾아와서 밥도 먹고 고스톱도 치고,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 안부도 묻고, 지난 시절의 추억과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 퇴직당한 친구와 잘나가는 친구, 자식 기르는 어려움과 마누라의 바가지에 대해서도 웃고 떠들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찌 죽었는지 묻다가도, “그래도 호상(好喪)이 네-“라고 웃으며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 놈은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갔으니 여한은 없겠네-“라고도 해줬으면 좋겠다. 보고 싶다 징징대는 녀석들 없고, 아깝다고 징징대는 사람들 없고, 몇 안되는 유산 받아먹겠다고 거짓부렁으로 슬퍼하는 사람들 없고, 그래서 내가 있는 장례식장이, 한판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거기서 눈 맞아서 맺어지는 커플이 두어쌍 나와도 더 좋고.
5. 그래도 나는 이제, 오래오래 살기를 바란다. 오래 살아서, 다른 사람들의 뒷모습을 모두 보고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무덤 위에 꽃도 놓아주고, 담배도 태우게 해주고, 술도 같이 마셔주고 싶다. 그러다가, 그렇게 쓸쓸함도 외로움도 아무 것도 아니게 될 즈음에, 조용히 사라질 수 있기를 바란다.
…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겠지만.
6. 그러니까, 제가 죽으면, 꼭 파티를 열어주세요. 🙂
아셨죠? 신나는 라틴댄스 파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