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23 19:27:14
다음은 이코노미스트 뉴스레터에서 갈무리한 글이다. 자신만의 토지를 가지고 있으며, 세금까지 내는 나무인 황목근에 대한 이야기.
마을 공동 재산을 마련하기 위해, 500년된 나무에 이름을 붙여주고, 땅을 등기 이전해 준 그 마을 사람들. 그 마음 씀씀이에, 살풋 웃음이 났다. 겨울날 까치를 위해 감나무의 감 몇 개를 남겨두는, 옛 조선의 마음이 이런 것들이었을까. 누가 어떻게 이런 멋진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을까.
토지를 갖고 세금을 내는 나무 황목근이 지금 한창 새 단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황목근은 마을의 너른 논 한 가운데 홀로 서 있는데, 이 나무가 주변 단장 공사에 한창입니다. 황목근 바로 앞에 있는 후계목도 멀찌감치 옮겨 심고, 나무 바로 옆에 있던 정자도 멀리 떨어진 쪽으로 옮긴다는 것이지요. 황목근이 서있는 자리를 좀더 넓히되, 순전히 황목근만 홀로 서있도록 하고, 주변에 따로 공간을 마련해, 주민들의 휴식처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공사는 다음 주까지면, 마무리될 수 있다고 합니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의 황목근(黃木根)은 무려 12,232㎡나 되는 토지를 갖고 꼬박꼬박 토지세를 물고 있는 귀한 나무로, 나라에서는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 제400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지요. 토지세를 내는 부자나무로는 역시 같은 지역인 경북 예천의 석송령과 함께 아마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나무일 겁니다.
이 황목근은 나무의 종류로는 팽나무입니다. 팽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고, 5월에는 노란색 꽃을 피우고, 늦여름에는 까만 색 열매가 열리지요. 그 열매가 바로 ‘팽’이어서 팽나무라 불리는 것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피어나는 노란 색 꽃을 떠올리며, ‘황(黃)’씨 성을 붙였고, 다른 나무와 달리 ‘뿌리가 있는 나무’라는 뜻에서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황목근은 나이가 500살 쯤 된 팽나무로, 키는 18m, 가슴높이 둘레는 5.7m로, 그리 큰 나무는 아닙니다.
토지대장에 황목근은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고유번호 3750-00735로 기록돼 있으며, 토지 소유자의 이름이 황목근(黃木根)으로 돼 있습니다. 황목근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땅에서 거둬들이는 곡식 가운데 해마다 쌀 다섯 가마니 정도를 받아서, 자기를 위해 쓰고 있습니다.
금원마을에서 공동 재산을 마련한 기록은 1903년에 나온 ‘금원계안 회의록’과 1925년의 ‘저축구조계안 임원록’에 나옵니다. 금원마을의 공동재산을 황목근이 소유하게 된 것은 1939년의 일입니다. 금원 마을에서는 1백여년 전부터 마을 공동재산을 마련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성미(誠米)를 모아왔는데, 그렇게 모은 재산을 그때 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한 것이지요. 황목근이라는 이름도 이때에 붙인 것입니다.
– 이코노미스트 뉴스레터 지기 고규홍 (gohkh@solsu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