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것은, 결국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어떤 ‘팩트’도 벼랑 끝에 놓인 인간의 생명 앞에서는 무력했었고, 무력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교회는 신도들의 생명을 위해 언론에 ‘선교’라는 단어를 ‘봉사’로 써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탈레반을 자극하지 않도록 ‘샘물교회’라는 명칭 대신 교회 건물이 있는 상가 명칭인 ‘분당타운’이라고 써 줄 것도 부탁했습니다. 한 목사는 새벽 네 시에 불쑥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 인터넷에 올라가 있는 기사를 고쳐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매일 ‘민감한’ 기사를 쓴 언론의 기자는 교회, 혹은 한민족복지재단 관계자에게 호출돼 정정 요구와 함께 질책을 들어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샘물교회측이 작성한 ‘아프가니스탄 단기 선교 지원서’가 나돌았고, 네티즌들은 ‘선교’를 ‘봉사’라고 표현한 언론에게 비난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침묵’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그 어떤 진실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23일 한민족 복지재단은 “외교부에서 지난 2월 5일 아프가니스탄 여행 자제 공문을 보냈고, 그 사실을 교회에 알렸음에도 교회가 아프가니스탄 행을 강행했다”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냈지만, 어떤 언론도 그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피랍자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돌아왔다. 초기 언론에서 이뤄졌던 자발적인 통제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가 씁쓸하다.
목사 한 명 사표 낸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잘해왔는데, 어쩌다 재수없게 한번 걸린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이건 한국 기독교의 문제다. 종교와 국가, 시민의 관계맺음이 앞으로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 문제다.
두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21명이 살아돌아왔으니 장땡이네-할 것인가.
기독교는 이제, 자신의 목을 내걸고 개혁할 것을 약속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제 다시 묻고 또 물어야만 한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관용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이제 정당한 값을 치뤄야만 함을 알려줘야 한다.
우선 그들이 살아돌아오기를 바라고, 그 이후 반성하게 하자는 글을 썼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반성에 대해 입을 열어야만 한다. 기독교인들을 포함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