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 올 수 없어요
– 이문세, 소녀
1. 작곡가 이영훈, 그가 하늘로 돌아갔다. 올해 48세, 사인은 대장암.
다른 이들도 그렇듯, 내게도 이영훈과 이문세는 따로 생각하기 힘든 존재다. 내 청춘의 음악 가운데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문세 3, 4, 5집, 그리고 7집을 함께 만든 이들이기에. 음반 한 장 살 돈이 없어 라디오에 나오던 음악을 카셋트 테잎에 녹음해가며 듣던 시절, 라디오 DJ가 어떤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MBC에서 청취자들이 보내준 엽서들을 가려뽑아 예쁜 엽서 전시회를 하던 시절,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던 시절…. 그 시절을 함께해준 음악을 만들어준 이.
두근 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 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
2.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꽤 축복받은 시절이기도 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콧대를 높이고, 헤비메탈이나 적어도 팝송 정도는 좋아해야 음악 좀 아는구나-라고 인정받던 시절. 한쪽에선 회현역 지하상가에서 복사해온 일본 음악(윙크, 시즈카 쿠도, 노리코, 나카야마 미호, 히카루 겐지의 전성기였다.)과 애니를 듣고, 다른 한쪽에선 대학로 MTV나 옐로 서브마린에서 수입되지 못한 외국 밴드들의 뮤직 비디오를 보던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 우리에겐 <들국화>와 <이문세>가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한국 음악계의 다양성이 처음으로 꽃피던 시절이기도 했다. <시나위>, <백두산>, <부활>같은 그룹이 있었고, <다섯손가락>등의 대학가 그룹들이 있었고, <노찾사>를 위시해 새로운 음악의 힘을 알려준 민중음악 가수들이 있었고, 홍대 뚜라미 출신의 <고은희/이정란>이나 <조동진>, <어떤날>등 포크 음악(?)을 추구하던 가수들도 있었다. 이들이 80년대 후반 한국 음악계의 부흥을 주도해낸 힘이었다.
내 품에 잠시 머물은 보라빛 노을이었나
사랑한단 말도 모르는데, 울먹이는 저녁 아이처럼
내 품에 잠시 머물은 한줄기 햇살이었나
– 이문세, 사랑은 한줄기 햇살처럼
3. 그 이후로 <이승환>과 <신승훈>, <무한궤도>가 등장했고, 그 뒤를 이어 <신해철>, <OI5B>,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김광석>, <김현철>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인들이 줄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힙합 음악의 중흥기도 이쯤이었다. 이들의 뒤를 이었던 <패닉>이나 <델리 스파이스>등의 음악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제대로 무르익기 시작했고… 중간에 아이돌 그룹의 광풍이 끼어있긴 했지만, 다행히 음반의 질적인 측면에선, 지금은 제2의 부흥기라고 불러도 좋을듯 하다. 그만큼 팔리지 않아서 그렇긴 하지만- 쩝.
그래도 이영훈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았던 것은, 이영훈과 이문세의 조합만큼 어떤 “쓸쓸한 서정”을 제대로 표현해낸 음악을 만나기 쉽지 않은 탓이었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노래에서 받았던 그 울림을. 마치 한조각 마들렌처럼, 그들의 음악이 귀에 닿는 순간 생각나게 되는 수많은 기억들. 소박한 멜로디 속에서 번져 나오던, 쓸쓸하고 쓸쓸하고 또 쓸쓸한, 그렇지만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술취한 늦은 새벽, 찬 바람이 부는 건널목 신호등에 기대서, 가볍게 미소 지으며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도닥이는 사람같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 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위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속에 있네
– 이문세, 옛사랑
4. 잘 가시기를. 그리고 고맙습니다. 좋은 음악을 선물해주셔서,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 쓸쓸하지않고, 아프지말고, 그곳에서도, 잘사세요. 행복하세요.
이젠 혼자 있어 외로움도 느끼질 않아
그렇게 한세월을 사랑했는데 넌 어떻게 살고 있는지
흰눈 나리던 어느 해 거리에서 너를 보았지
변한 모습 없이 소박한 너의 뒷모습에
눈물이 나를 위해 흘러내렸지 내가 보낸 세월을 위해서
거리에 오가는 사람중에 우릴 보고서 이해할 사람 있을까
사랑은 구름같이 사라지고 우리가 사랑했었던 흔적없이
슬프게 살다보면 슬픈 것도 모르게 되는지
이젠 혼자 있어 외로움도 느끼질 않아
그렇게 한세월을 사랑했는데 넌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거리에 오가는 사람중에 우릴 보고서 이해할 사람 있을까
사랑은 구름같이 사라지고 우리가 사랑했었던 흔적없이
흰눈 나리던 어느 해 거리에서 너를 보았지
변한 모습 없이 소박한 너의 뒷모습에
눈물이 나를 위해 흘러내렸지 내가 보낸 세월을 위해서
– 이문세, 그해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