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남대문) 전소 사건에 대한 뒤늦은 입장 정리

솔직히 말하자면 입장정리-라고 까지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써본다. 언제나 대형사고는 작은 실수들이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진다. 이 글에선 입에 익은대로 남대문이라고 일단 쓰겠다.

1. 언제인지 확실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남대문 지붕에 올라갔던 사람이 있었다. 뉴스를 통해 봤는데, 한 여성이 남대문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집어던지고 있었다. 무슨 주장을 했는지는 보도를 안해줘서 모른다. 다만 그로 인해 남대문 일대의 정체가 심각하다-라는 보도 내용 밖에(그때까지만 해도 남대문에 접근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 기억이 남아있던 탓일까, 남대문 지붕에 올라가 시위하는 사람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런 곳까지 올라가서 시위를 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것일까, 어떤 절박함일까- 하는 궁금증에.  아마, 한강다리에서 자살하겠다고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들과 같은 마음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다 소설을 접었다. 별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슬프게도, 나에게 있어선 정말 절박하고 억울한 것들이, 남들이 보기엔 하찮고 이기적인 것에 불과하다. 세상은 누구도 당신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2. 남대문과 동대문이 주목받은 것은 불과 10년전이다. 2002년 월드컵 개최를 맞이하게 되면서, 당시 고건 서울시장 밑의 공무원들이 짰던, 서울시 관광 인프라를 만들기 위한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지하도를 내서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발상에 불과했다.

그러다 2002년이 지나고, 광장 문화가 부각되자 서울시는 시청 앞을 비롯 남대문 일대, 동대문 일대까지 모두 광장화하겠다는 발상을 하게 된다. 물론 남대문과 동대문은 포토 아일랜드 조성- 정도의 생각밖엔 안했지만. 당시에도 이 광장들을 문화적 인프라로 조성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모두 묵살되었음은 물론이고… (당시 공모에 당선됐던 서울시청앞 광장 설계를 갖다버리고 그냥 평범한 잔디밭으로 설계 변경(?)한 사건은 꽤 유명하다.)

뭐, 문화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그 의도가 그저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를 만드는 정도였고, 문화재에 대한 대우도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이제와서 “국보 1호가 어떻게…”라는 탄식은 그래서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불편하겠지만, 평소에 우리가 그리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은 분명하다.

3. 2005년에 한국 갤럽에 의해 이뤄진 조사 결과를 보면, 신세대들이 생각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에 있어서 1위는 2002년 월드컵(30%), 2위는 김치, 그 뒤로 독도, 태극기, 이순신, 한글, 한복,  무궁화등이 있었으며, 남대문을 대표이미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회탈, 태권도와 함께 3% 미만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냥 있는 사실이니 넘어가고-

문화재 훼손 사례가 그동안 없었던 것도 아니다. 화재나 방화로 인한 문화재 훼손은 다른 기사들이 많이 다뤘으니까 넘어가지만, 90년대 중반에도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차들이 드나드는 대로 한가운데 남대문과 동대문을 방치해뒀던 것 자체가 이미 문화재 훼손이다. 그렇다고 차도를 막을 수는 없잖은가? 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스 아테네 같은 도시에서는 일정시간동안 차량통행을 완전 금지 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문화재 복원이나 보존의 문제는 의외로 굉장히 많은 이해관계와 상충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특히 자신의 이익이 걸린 사람들은 문화재를 오히려 미워하고 있기도 하다. 잠실 지역 재개발 당시 튀어나온 문화재 문제도 그렇고- (이건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계천 처럼 문화재가 나왔음에도 밀어버리기도 하고, 태릉 선수촌처럼 문화재 복원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곳도 있다. 심지어 광화문 복원 사업도 꼴통 보수 단체들은 문제시 하기도 한다.

4. 이번 문제의 책임을 따지자면 중구청, 서울시, 문화재청, 소방당국-이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2006년 서울시의 근시안적 개방 정책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전시 행정, 과시용 행정에 급급해 마땅히 챙겨야할 것들을 챙기지 못한채 문을 열었다. … 모두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 결과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했다는 것, 결국 그것은 내적인 시스템의 부재를 낳았다. 보안은 장난으로 여겨졌고,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고, 형식적인 훈련은 성과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지-라고 다들 여겼였다. 이번에 완전히 무너졌지만, 실은 숭례문은 그동안 상당히 상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작년말부터 복원공사 계획이 잡혀있는 상태였고(유홍준 청장이 보여준 복원예상도는 이미 계획서에 나와있던 복원 예상도에 불과하다.).

5.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 것은, 어쩌면 우리들 모두일지도 모른다. 2005년 서울시민이 뽑은 으뜸시정 3위에 숭례문 광장 조성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를 겪으면서, 최소한 이 나라에 어느 정도 시스템은 잡혀가고 있을 거라고 우리는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남대문의 전소는, 결국,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설마 다 탈까? 라고 믿었던 남대문이 다타버렸다. 말 그대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10년 전처럼 우리는, 다시, 이 나라가 (과연 제대로된 시스템이 갖춰진) 나라가 맞냐? 라는 질문을 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디자인은 멋지지만 고장 잘나고 성능 형편없는 MP3 플레이어를 보는 느낌. 이 나라는 여전히 베타 테스팅 중인 나라고, 우리는 하루하루 베타테스터로 살아가고 있었다.

6. 결국 불에 탄 남대문은 화장이 벗겨진 우리의 속살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진짜 모습이다. 남대문에게 바치는 국화는, 실은 남대문이 아닌, 하루하루 위태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 베타테스터인 우리들에게 스스로 보내는 애도의 국화다. … 무너진 건 대한민국이 아니다. 우리의 위선을 가리고 있던 거짓이다. 그래픽빨로 속여보려 했던 게임 시스템이다.

슬픈 건, 10년전에 끝난줄 알았던 테스트가 아직까지 계속 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언제 정식 서비스를 개시할지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기본 서비스도 안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버 불안을 야기할 것이 뻔한 엉터리 기능의 업데이트가 줄줄이 예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7.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면 된다. 다만 책임없는 사람들에게 돈 내놓으라고 사기치지 말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뚝딱 끝낼 생각도 말아야 한다. 문화재 관리 인력이 보강되고 새롭게 시스템이 잡혀야 하는 것처럼, 이 사회의 시스템도 실용(이게 눈가리고 아웅이다.)따위에 함몰되지 말고 제대로된 프로세스를 갖추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10년전엔 건물, 지금은 남대문이지만, 10년후에 또 어떤 것이 무너지고 불에 탈지 모른다. 나라가 격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람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장인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속이 꽉찬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한다.

앞으로 우리들에게 던져질 문제는 많이 남아있다. 개개인의 이익과 문화재가 충돌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하고 한정된 자원내에서 어느 부분에 얼마나 더 집중해야 할 것인가? 공공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만큼의 비용을 더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어찌보면, 답이 안나올 질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유저를 우습게 보는 개발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여. 남대문의 국보 1호 지위는 유지해도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복원된 남대문은 모형이 아니다. 다만 “복구”했을 뿐이다. 불에 탔던 건물이 600년전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별 문제 없다고 본다.  … 실은 어쩌면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자료삼아, 한글로 님의 글 하나를 링크_숭례문 개방 공로는 이명박, 화재 책임은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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