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여름이었던 것 같다. 후배들과 함께 철거민 관련 집회를 나갔는데, 갑작스럽게 경찰들이 치고 들어왔다.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다른 사건들과 맞물려 시국이 꽤 예민해져 있었던 것 같다. … 뭐, 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집회 한 번 하려면 꼭 피를 보는 경우가 잦긴 했다. 본대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도망치는데, 같이 데리고 나갔던 후배가 넘어졌다. 후배를 일으켜 세우는데, 누가 다리를 발로 찼다. 전경이었다.
이상하게 후배는 보내주고 난 끌려갔는데, 전경들 사이로 끌려가자마자, 누군가가 무릎으로 내 얼굴을 찍었다. 안경이 부셔져 날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맞고 있는데, 소대장인듯한 좀 늙은 경찰이 오더니 말리더라. 그리곤 그대로 닭장차에 실려서 경찰서로 갔다. … 아, 기억난다. 한창 월드컵을 하고 있던 때였다. 경찰에서 조서 쓰는데 누가 월드컵 경기 중계를 틀어놨다. 몰래 보다가, 얼떨결에 흥분해서 슛- 슛! 하고 외쳤던 것 같다. 경찰서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어이가 없었는지 웃었고, 누군가가, 저 넘은 월드컵 응원하려고 잡혀왔냐고 그랬다.
…그 다음날 훈방이 되고 나서야, 눈동자에 피멍이 맺힌 것을 알았다. 안과에 가보니 안구 출혈이라고 하더라. 특별한 방법은 없고, 그냥 살다보면 저절로 피가 흡수된다고 했다. 핏자국이 점점 흐려지기까지, 몇년 걸린 것 같다. 자국은 마치 점처럼, 눈동자 밑에 콕 박혀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특별하게 삶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살던대로 살아갔다. 나는 천성이 … 운동권이나 정치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내 삶이, 눈에 안구출혈이 있든 말든, 뭐 그리 달라질 것이 있었을까. 같이 갔었던 또 다른 후배는 얼굴에 곤봉이 찍혔다. 그 녀석은, 지금도 그 곤봉자국이 남은 채로 살아간다. 그래도 결혼도 하고,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 누군가가 남겨준 덧글을 읽었다. 실은, 그 전에도 그가 글을 남겼다가 지운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이제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슬픈 것은 생각이 변한 것이 아니다. 슬픈 것은, “나는 변했다, 어쩔 수 없다”라는 한숨섞인 탄식이다. 군대에서의 경험이,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그 이야기를 읽다가, 내 몸에 남아있던 옛날 이야기가 생각났다. 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제대로 대답 할 자신이 없다.
그냥, 그냥, 그 뿐인거다.
그냥, 그냥, 그때 생각이 난 것 뿐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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