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의 소고기 파동, 그리고 리스크 관리

정보라는 것은 사실 리스크 관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위험에 처했을 때 리스크 관리 팀을 만들어 대응하는 것보다 사전에 정보를 모니터링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 마이클 캐펠라스(Capellas) 퍼스트데이터(신용카드 결제회사) 회장

20여년전에도 한국에선 소고기 파동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고기 기름 파동이라고 해야하나. 바로 「삼양라면 공업용 우지파동」이다. 미국에서 비식용(공업용)으로 분류된 소고기 기름을 들여와서, 라면을 튀겨 팔았다는 것이 사건의 요지다. 1989년 11월 발생한 사건은 대법원 판결(1997년)을 통해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대법원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는 1등급 우지만 식용으로 쓰고 있으나, 문제가 된 2, 3급 우지도 건강한 소에서추출하며 살균·고온처리 과정을 거치는 등 위생 처리돼 인체에 유해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일본은 76년까지 2등급 이하의 비식용 우지를 사용했으며 스페인 등 일부 국가는 현재도 이를 수입해 쓰는 등 우지생산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2, 3급 우지를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무죄를 받았으면 뭐하나, 그 당시 신용이 땅에 떨어져 버린 걸. 그 사건으로 인해 1989년 11월 시중에 유통되던 1백억원어치의 삼양 라면이 수거됐다. 삼양식품 라면공장은 3개월간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매출 1위였던 삼양라면은 시장점유률 66%에서 10%로 주저앉아버렸다. … 그러니까, 한국 라면시장을 대표하는 라면이 ‘삼양 쇠고기 라면’에서 ‘농심 신라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농심은 이때 이미 팜유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한국에서 공업용 쇠고기 기름으로 라면을 튀기는 경우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

아무리 무죄판정이었다고 해도, 미국에서 비식용으로 쓴 것을 식용으로 쓴 죄는 벗을 수 없었다. 우지파동 때도 삼양라면은 현재 정부와 똑같이 대처했다. 안전하다고, 다들 그렇게 먹는다고, 미국에선 그냥 편의상 그렇게 분류했을 뿐이라고. 장관들이 먼저 나서서 라면을 먹는 사진도 실렸다. … 하지만, 국민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누구도 리스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항상 ‘리스크(위험)’에 둘러쌓여 있으며, 작은 선택 하나에도 그에 상응하는 리스크를 감안하고 선택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업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데이비드 아프카는 작년에 출간한 「Risk Intelligence」책을 통해 앞으로는 위험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배우는 ‘위험 IQ(Risk Intelligence Quotient)’가 더 중요하다고 이미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개인과 기업도 리스크에 대비하는데, 한 나라의 정부라면 더더욱 리스크 관리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광우병 사태를 둘러싸고 국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이미 품위를 잃었다. 대통령과의 긴급 회담 이후 급작스럽게 한미 쇠고기 통상협상이 타결되었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고, 국민들에게 어떤 위험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고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발생한 국민들의 불안을 ‘니들이 몰라서 그런거다’, ‘괴담이다’라는 식으로 몰고가는 것은 적반하장에 가깝다. 거기에 정당한 의견 제시를 한 TV 프로그램과 국민들에겐 ‘소송’과 ‘사법 처리’라는 협박을 들이민다. … 리스크 관리에 있어서 최악의 형태며, 폭삭 망했던 삼양라면과 똑같다 못해 리스크 관리를 너무 못하는 꼴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리스크 관리를 모르는 기업이나 정부는 없다. 그렇지만 최근 ‘쥐우깡 파동’이나 ‘삼성 중공업 바지선과 유조선의 충돌 사건’, ‘삼성 비자금 사건’등에서 보여지는 기업의 리스크 관리 능력은 ‘없는거나 다름없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하나 밖에 없다.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과 투명성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리스크를 둘러싼 이슈들을 선점함으로써 리스크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이 보여주는 것은 그저 “니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다”라는 태도 밖에는 없다. 결국 국민들이 먼저 이슈를 선점하면서 치고 나와야만 했다. 나라가 나라 꼴이 아니고, 언론이 언론 꼴이 아닌 거다. 결국 기업과 정부의 그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은 죄다 헛똑똑이였던 셈이다. 아님 말 그대로 ‘영혼이 없는 인간’들이거나.

…갑갑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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