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알바생이 MBC에게


10여년전, 나는 MBC의 알바생이었다. 지금은 알바-라고 하면 너무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많아서, 이렇게 고백하기도 무섭지만(?), 소품 보조 알바를 했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보조 출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막상 엑스트라로는 한번도 나가지 못하고 소품 보조 일만 계속 했다. 그것도 MBC만. 혹시라도 외모 때문이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ㅜ_ㅜ

그때 느낀 MBC는 이랬다. 모두 다 바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일하며, 별의 별 것이 방송국 안에 다 있고, 생각보다 위계질서가 엄격하며, 몰아서 일을 처리하는 것(?)에 능하다-라는 느낌. 덕분에 드라마 하나 찍다 보면 날새기가 일쑤였다. … 왠지 MBC에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진 않은데, 오해다. 🙂 그때 나는 진심으로 이런 회사라면 계속 일해보는 것도 재미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오래했던 일은 아니다. 몇 번 스튜디오 촬영에 일용직 잡부로 동원되다가 우연히 ‘별은 내 가슴에’라는 이름의 드라마에서 고정 소품 보조를 맡았는데, 일한 지 한달 만에 경찰에 잡혀가야만 했다(나는 몰랐는데 그때 내가 수배중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모 여성잡지에도 촬영 에피소드 형식으로 내 이야기도 실렸다. 구속영장에 체포장소가 ‘청담동 룸싸롱 xxx 앞’이라고 나오는 쪽팔림도 겪었고(주인공이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씬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진짜다.).

…덕분에 조서를 쓰고 난 다음에 잠은 푹 잘 수 있었으니,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지금은 모르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미니시리즈 스텝 보조들은 거의 밤을 새다시피 일했다.).

티브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의 쏘스

나는 티브이를 잘 보진 않는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내가 편한 시간에 내가 끌리는 정보들을 볼 수가 있는데, 굳이 번거롭게 TV앞에 앉아 좋아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언제 나오나-하고 기다리기가 귀찮다. 얼마전에 구입한 PMP에 DMB TV 보기 기능이 있기에 그거라도 한번 볼까,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 같은 이유로 그만뒀다. 앞으로도 DMB가 주문형 TV로 바뀌기 전까지는 잘 볼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티브이의 열렬한 시청자이기도 하다. 물론 인터넷으로 본다는 조건이 붙지만. TV로 보는 것보다 빨리 볼 수는 없지만, 재밌겠다 싶은 내용을 골라서 다른 이들이 적어놓은 감상문과 함께 볼 수 있으니 나름 편하다. 필요한 때 필요한 것을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듯. 특히 PD 수첩이나 100분 토론은 꼭 본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들을 보지 않으면 친구들이 인터넷으로 나누는 얘기에 끼기가 어렵다.

…그래, 우리는 TV에 나온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따지고 나눈다. TV 프로그램은 우리가 인터넷으로 나누는 많은 대화의 쏘스다. 음식에 부어먹는 그 쏘스가 아니다. 보통은 원본, 또는 편집을 위한 필수요소등의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대화의 발단이 되는 사건, 정보의 출처를 의미한다. 결국 매스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세계를 구성하는 경험중 하나인 셈이다.

누군가는 이런 것을 보고 영상이라는 귀신에 홀렸다고 하지만, 그래도 보지않고 듣지않으면서 모르는 것 보다는 낫다. 아마 훈련소에 들어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밖에선 쓰레기 취급받는 스포츠 신문 쪼가리 하나를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우리는 이미 미디어를 기반으로 세상을 알고, 미디어를 기반으로 서로 소통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파놉티콘과 매스미디어

푸코는 현대 사회를 감시의 원형감옥인 파놉티콘에 비유했다. 누군가가 우리 모두를 쳐다본다, 하지만 누가 쳐다보는 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조심하면서, 권력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살게 된다는 것이다. 감시로 인한 자기 규율의 강화, 한마디로 말해 알아서 권력에 기는 시스템. 그것이 파놉티콘의 사회다.

매스미디어를 파놉티콘에 비유해도 그다지 틀린 것은 없을듯 하다. 무엇보다 파놉티콘은 매스미디어의 정보 전달 시스템과 비슷하다. 누군가가 정보를 생산하고,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보낸다. 방송이나 신문을 만드는 사람에게 독자(시청자)는 구독률(시청률)을 올려주는 숫자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는 그것을 볼 것이냐 보지 않을 것이냐 정도다. 기자는 독자(시청자)를 모르고 독자는 기자를 모른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보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보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보를 보낼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은 정말로 강력한 힘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니까. 이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아니 지금의 많은 사람들도 매스미디어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 사람들에겐 그것이 전부다.

정말 무서운 것은 ‘나쁘게 보도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이 일어났으나 보도되지 않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우석 사태때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가장 소리높여 얘기하는 대목이다. 그때도 KBS 앞에서 수만명이 모였는데 왜 아무도 방송해주지 않았냐고. 파놉티콘적 시스템에서 ‘보도되지 않은 사건’은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나 다름 없다. … 뭐, 알고보면 쌀로 밥짓는 이야기다.

100분 토론과 PD 수첩을 보는 이유

그런데 세상이 바뀐 탓일까. 언제부터인가 정보를 받는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받기만 하던 사람들이 우리도 정보를 생산하겠다고 나선다. 일방 전달이 아닌, 네트워크형 시스템이 등장한 것이다. 피씨통신 게시판을 시작으로 서프라이즈 같은 인터넷 논객의 시대를 넘어, 오마이뉴스 같은 시민 참여형 인터넷 신문의 등장, 다음의 블로거 뉴스 및 올블로그 등의 메타 블로그 사이트에서 생산되는 숱한 뉴스들이 좋은 예다. 미디어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네트워크형 시스템이 매스미디어를 대체할 수는 없다. 수십만번의 조횟수를 기록해도 티브이 뉴스에 한번 방영된 것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근본적으로 네트워크형 시스템은 주어진 정보를 가공해 정리하고,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대화형 시스템이지,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 탓이다. 네트워크 시스템에서 이뤄지는 것은 전달이 아닌 대화다.

웹2.0으로 대표되는 참여 네트워크형 시스템이 위키피디아나 딜리셔스 같은 정보 정리형 사이트에서 가장 힘을 발휘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는 서로를 참조하면서 정보를 정리/가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정보를 만든다. 알고보면 친구랑 얘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과 똑같다. 매일같이 뉴스를 만들어 내기엔 일상이 너무 평화롭다.

그래서 우리는 100분 토론과 PD수첩을 줄기차게 본다. 100분 토론과 PD 수첩은 한번 방영되고 허공으로 사라지는 다른 프로그램들과는 다르다. 처음 시청율은 낮을 지 몰라도,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줄기차게 다시 본다. 중요한 부분들을 편집해서 서로 돌려보는 사람도 많다(실은 인기 있는 드라마도 그렇긴 하다.). 이 프로그램들은 우리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 또는 아직 잘모르고 있지만 꼭 알아야할 사실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우리들의 쏘스다.


파놉티콘을 지키기 위해 네트워크가 작동하다?

이제 인용되고 언급되지 않는 매스미디어의 정보는 죽어가는 정보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뉴스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리얼리티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감상만 하지 않고 가지고 논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세계를, 자신들의 이야기를 구성하기 시작한다. PD수첩에 나온 정보를 다시 분석하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끼리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며, 편집과 패러디를 통해 다시 새로운 정보로 만든다.

그리고 이제는 방송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든다. 아마 독립 언론이나 저항 언론이 아닌, 대한민국의 지배적인 방송사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글을 쓰고 집회를 여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실 처음있는 일은 아니다. 오프라인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예전 황우석 사태때 PD수첩이 여론의 수세에 몰렸을 때에도 많은 블로거들은 ‘PD수첩 사수를 위한 릴레이 글쓰기’를 벌였고, 디씨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황우석을 믿는 사람들과 일전을 불사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 조금 어이없기는 하다. 아니 세상이 어이없게 변했다고 해야만 할까. 우리는 지배 언론을 믿지 못해서 직접 카메라를 들고 집회장에 나왔다. 그들이 1~2분 보도하고, 한두 문장 단신으로 처리하는 것에 화가 나서 열댓시간 동안 촛불 집회를 내내 중계하고 사진찍고 글을 쓰고 다녔다. 경찰 채증에 맞서서 시민 채증을 했다. 그런 우리가 이제는 오마이뉴스도 아니고 프레시안도 아니고 한겨레도 아니고 경향도 아니고 다음 아고라도 아닌, KBS와 MBC를 지키기 위해서 촛불을 들어야만 하다니, 세상이 뭔가 이상해도 단단히 이상하게 돌아간다.

알고는 있다. 이것은 우리의 쏘스를 잃지 않기 위한 싸움이다. 우리는 파놉티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알고 있고, 그 시스템이 우리의 네트워크형 시스템과 어떻게 경쟁하고 갈등하는 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절박하다. 파놉티콘을 뺏기면 쏘스를 뺏긴다. 많은 사건은 왜곡되거나 아예 보도되지 않을 것이다. 네트워크도 당연히 상처받는다. 인사권과 감사권을 쥔 권력은 파놉티콘 시스템을 장악하며, 동시에 네트워크형 시스템을 정지시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방송국을 지키기 위해서도 촛불을 들 수 밖에 없다. 아- 정말, 시민들이 나서서 지켜야할 것이 너무 많아 피곤할 지경이다.

살아남아줘, MBC!

예전 동아일보의 예를 봐도 알수 있지만, 권력이 잘못 요구하면 생각이 올바른 사람들이 짤린다. 한번 사람들이 짤리고나면 그 매스미디어는 짜를만한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고개숙이며 따라갈 사람들만이 남는다. 30년동안 정신 못차리고 있는 동아일보를 보라(요즘 하고 있는 짓을 보면 동아일보 기자들의 굴욕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 하다.).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알 수 없게된 세상이다. 2004년엔 PD수첩을 운좋게 어떻게든 구해냈더니, 이번엔 방송국 자체를 갈아엎겠다고 정권이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황우석 사태때 PD수첩이 당했던 광고거부 운동은 이해할만 하다고 낄낄대더니, 자신들이 시민들에게 광고거부 운동을 당하자 시민들을 고소고발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정권은 ‘나를 따르라’라고 명령하면 ‘오~ 예~’하고 따라가는 군중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우리를 총알받이로 쓰려는 것이 갈수록 명백해지는 지금, 그것을 따를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을까. 파놉티콘이 지배당하면 네트워크도 무너진다.

이미 세상은 어쩔수 없는 미디어적 전환, 두 시스템의 공생 관계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글을 쓰고, 촛불을 든다. 방송국 직원보다 월급도 적은, 방송국 직원이라는 프라이드도 없는 우리까지 나선다. 티브이를 별로 보지 않는 나같은 사람까지 나선다.

물론 주의깊고 현명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네티즌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2002년 노무현을 당선시켰던 네트워크의 힘은 한나라당이 개정 선거법을 발의한 이후 2007년 대선에선 아무런 힘도 못쓰고 주저앉아 버렸다. 이번에도 같은 역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살아남아 주기를 바란다. 우리도 열심히 할테니, MBC와 KBS도 끝까지 우리에게 쓸만한 쏘스를 제공해주는 방송사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기왕이면 좀더 질 좋은 쏘스를 제공해주면 더 좋고, 시청률만 고려한 저질 프로그램은 수준 좀 높이고, 몇몇 프로그램은 CCL 저작권도 한번 고려해 줬으면 좋겠지만… 그건 나중에, 세상 좋아지면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지금은, 살아남아줘 MBC, KBS!

…그런데 이런 말을 하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왜 이렇게 서글퍼 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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