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편히 쉬렴, 아이야

1. 촛불 집회에 나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게 된다. 지난 6월 30일, 첫번째 시국 미사가 있던 날도 그랬다. 행진이 끝난 후, 흥분해서 혼자 전경들에게 달려드는 아저씨를 한참 말리고 있었다. 겨우 말리고 나서 시청 광장 턱에 걸터앉아 있는데, 한 아저씨가 생수 한 통을 가져다 주시며 말을 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어떤 이야기는 고개 끄덕이다 어떤 이야기는 한 귀로 흘리고 있는데, 아저씨가 그런다.

…젊은 사람들에게 이런 세상 만들어 주려고 한게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아니, 아저씨가 왜 미안해요. 정치에 제대로 관심 없었던 것도 우리고, 투표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도 우린데, 아저씨가 왜 미안해요. 그렇지만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에이- 아저씨 탓 아니에요-만 하고 있는데, 괜히 콧등이 시큰하다. 얼마전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같이 걸어갔던, 기타 들고 있던 노란 머리 청년이 기억났다. 그때 그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계속 미안해하고 미안해한다.

2. 한 아이가 죽었다. 여고 3학년. 여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아이. 사랑해줬던 친구들이 많았던 아이. 그 아이가 죽었다. 지난 7월 5일, 촛불 집회를 다녀온 날 밤, 집 근처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말수가 없고 조용한 타입이었다고 하는데, 어른들이 하는 말이니 정말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그 아이의 죽음을 전해 듣고, 그 아이의 미니 홈피에 찾아갔다. 미니 홈피의 이름은 ‘님들아 바뱌’. 1촌이었던 친구들이 벌써 많은 글을 써놨다. 사랑해 주는 친구들이 많았구나- 싶다. 참, 친구들에게, 무거운 사랑 하나 남겨놓고 떠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니, 이렇게 슬퍼하는 친구들 두고 가버리면, 너 어쩌니.

그 친구들의 글을 읽다가, 못난 어른이 되버린 나도, 피씨방 귀퉁이에 앉아 질질 울었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다른 세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세상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서울 어딘가에서 서로 스쳐 지나갔을 지도 모를 아이에게, 맘 속으로 계속 미안하다고 말을 건넸다.

3. 얼마나 더 많이 방황하고 학교를 떠나야 세상이 변할까. 그 아이들 가슴에 못을 박으며, 잘난 엘리트들 몇몇 더 키우면 그게 좋은 세상일까.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라고 썼던 것이 지난 3월이었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도 여전히, 아이들은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세상은 아이들을 일렬로 줄 세우고, 누가 그 줄 앞에 서느냐가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협박한다. 당연히 사랑도 하고 고민도 하고 몽상도 하고 울고 웃고 떠드는 게 하나 이상하지 않은 아이들을, 자신들이 정한 기준으로 잣대 긋고 처벌하며 순위를 매긴다.

10여년전의 내 친구들도 그렇게 떠나갔다.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친구들이, 그 살아감이 힘들고 어려워서, 술을 마시고, 싸우고, 토하고, 담배를 피우고, 타이밍을 먹고, 손목을 긋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죽어가는 아이들은 더 늘어만 간다.

이명박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허울 좋은 우리들의 핑계다. 지난 20년간, 사람의 긍지보다 돈을 앞세웠던, 그리고 그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동의했던 우리 모두가 실수한 거다. 나만 혼자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되고, 남들이 다 짤려도 나만 안짤리면 되고, 그저 내 이익만 이야기했던 수많은 우리가.



4. 잘 가라, 아이야. 미안하다, 미안하다고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어서, 정말 미안하다. 세상 모든 죽음에 슬퍼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너의 홈피에 들어간 순간, 나는 이미 너를 모르는 남이 아니라서, 그냥 막연히 슬퍼지네. 미안하다, 솔직히 우리는 네가 왜 죽었는 지도 잘 몰라. 네 아픔을, 힘듬을, 결국 고민하고 고민하다 흐트러졌을 시간들을.

너의 글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많이 허탈해하고 있었구나, 화가 나 있었구나-하는 것밖에는 알 수가 없어. 너의 이야기가 이제는 들리지가 않아. 읽히는 건 텅빈 눈물 뿐이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미안해.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었구나.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구나. 그렇지만, 뭔가는 할거다. 응,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는 할거다.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알고 있는 걸.

어찌되었건, 뭔가는 할거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뭔가는, 꼭, 할거다.
… 그러니까, 너는… 편히 쉬어. 그 세상에서, 꼭, 편히 쉬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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