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명예훼손, 개념부터 잡고 시작하자

어제 오세진 경찰청 기획수사팀장이 CBS 라디오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다가, 최진실법 이미 통과된 줄 알았습니다. 🙂 악플이 문제 있는 거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연예인들 루머에 시달린거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정말 인터뷰대로라면, 이번 경찰 수사, 좀 문제 있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찰이 잡고 있는 ‘악플’의 개념부터 문제가 좀 있습니다. 악플이라고 부르면서 사이버 명예훼손, 루머, 인신공격 등 ‘동일하지 않은 현상’을 같은 것처럼 취급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개념이 이렇게 문제 있으면, 경찰이 생각하는 “범죄 행위”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지게 됩니다. 말 그대로, 지금 경찰의 개념은 인터넷 이용자 전체를 “예비 범죄자 집단“으로 보고, 감시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간단히 얘기할까요? 인터넷 댓글을 가지고 법원에서 문제 삼는 사례는 아직,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보고가 된 적이 없습니다.

악플과 루머, 개념부터 잡고 말하자

악성댓글의 기준과 정의에 대해, 오세진 팀장은 아래와 같이 대답합니다.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있지도 않은 사실을 게시판에 게시하는 걸 허위사실 유포라고 하고요. 게시판에 악의적으로 남을 공격하기 위해 헐뜯거나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댓글을 악성댓글로 봐서 악성댓글이 허위사실을 포함하는 광의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 기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현재 명확한 기준은 없는데요. 부모 등 가족 헐뜯기, 개인의 외모 등 인신에 대한 비난, 허위사실, 근거 없는 소문이나 음모론 등이 되겠으며, 댓글 내용을 전체적으로 분석해서 구체적 사안별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루머나 인신공격이나 다 악플이며, 악플에 대한 판단 기준은 “특정 개인이나 주변 사람들을 욕하거나, 소문을 퍼트리는 행위”입니다. 뭔가 굉장히 광범위하죠? 하지만 ‘악플’, ‘사이버 스토킹’, ‘유언비어’등은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분간해서 쓰는데, 정부와 경찰, 한나라당은 일부러 그러는지 구별하지 않더군요.

보통 악성 리플(flaming, 악플)이나 게시물은 “강렬한 감정과 정서의 적대적 표현”이라고 정의됩니다. 유형으로는 개인의 취향, 젠더, 외모, 행동에 대한 적대적 느낌의 공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랄한 비꼼, 무례한 언사(욕설), 인신공격성 댓글이나 게시물들을 악플이라고 불립니다.

… 인터넷 하다보면 다들 한번씩 당해보는 거죠. -_-; 연예인들 입장이라면 “제 성형했네?”, “미아리 창녀 같은 복장”등의 댓글이 이런 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단, 헤이트 스피치(hatespeech) 같이 직접적인 폭력을 선동하거나, 노골적으로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예를 들어 2006년 “임수경씨 아들의 죽음 기사에 달린 악플”에 벌금을 선고한 경우가 그렇습니다.(주1)

사이버 스토킹은 한 사람의 개인 정보를 유출하거나, 한 개인이 정서적/신체적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을 말합니다. 집요한 이메일 공세, 협박성 댓글, 문자메세지 공세, 공개 커뮤니티에 허위정보 유포 등의 행위를 말합니다. 인막녀 사건이나 개똥녀 사건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이 경우는 세계 어디를 가도 실정법에 의해 처벌됩니다. 한 사람에게 “직접적인 폭력과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유언비어는 보통 루머(rumor), 또는 혹스(hoax)라고 불립니다. 인터넷 도시 괴담-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예전에 떠돌았던 ‘가짜 바이러스 경고‘나 ‘제 친구가 죽어가고 있어요! 피가 필요해요!’ 등등의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연예계 “~카더라” 통신은 모두 여기에 속하지요. 대부분 스팸 게시물 정도로 치부되지만, 얼마전 스티브 잡스 사망설이나 8년전 있었던 빌 게이츠 사망설처럼, 실제 회사 주가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재밌는 것은, 이 루머의 확산에 언론의 방향실(echo room)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기존 인터넷 공간은 ‘매스미디어의 반향실’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는데, 어느새 언론이 인터넷의 방향실 역할을 맡고, 그래서 만들어진 기사가 다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 현재의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경찰은, 이런 여러가지 현상들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고 뭉뜽그려 ‘악플’이라 부르고, ‘사이버 명예훼손’이라 부르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그건 법에서 사이버 명예훼손의 범위를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글을 쓰면 모두 명예훼손이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가이드 라인

아직 한국에선 인터넷으로 인해 등장한 새로운 의사소통양식에 대해,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나쁘다/좋다의 이분법적 대립만이 있을 뿐입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이런 논란 자체가 드물고(수정 헌법 1조에 나타난 표현의 자유-건드렸다간 미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쫌 힘듬), 다른 나라 같은 경우에도 ‘명백한 폭력의 위험’이 있어야 처벌받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반대의견 올렸다고 처벌하는 나라는…. 중국, 이란, 이집트, 한국 정도입니다. -_-;;; 거기에 욕설까지 문제있다고 몰고가는 나라는 한국 밖엔 없는 듯 하네요. 하지만 이런 점에서, 예전 김완섭 사건때 내린 법원의 판결은 경청할만 합니다. 당시 법원의 판결을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김완섭은 ‘독도를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는 도발적 언동을 해서 네티즌들을 자극했고, 욕설 등이 오갔으나 토론의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차별화할 수 있다. 또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라는 김완섭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네티즌들의 댓글은 김완섭의 글을 비난한 것이지 김완섭 씨 본인에 대한 협박은 아니어서 사회상규에 위배 되지 아니한다
– 연합뉴스, ‘독도는 일본땅’ 망언에 악플은 무죄

사실 지금의 사이버 명예훼손죄는 2002년 6월 27일에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이 공중파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인정하면서 진입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헌법재판소는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 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하면서, 표현매체에 관한 기술의 발달은 표현의 자유의 장을 넓히고 질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계속 변화하는 이 분야에서 규제의 수단 또한 헌법의 틀 내에서 다채롭고 새롭게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별다른 고민없이, 사이버 명예훼손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 그 폭을 넓혀 대다수의 댓글과 게시물을 ‘처벌 대상’에 넣으면서,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를 내보이고 있습니다. 사이버 명예훼손과 사이버 스토킹, 악성루머 유포, 단순 악플등은 하나로 뭉뚱그릴 수가 없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최진실의 자실을 계기로 무턱대고 악플을 단속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오히려 인터넷 의사소통 자체를 억압할 우려가 높습니다. 박진애 교수의 지적대로(박진애, 2006) “인신공격성 댓글 풍조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태도로, 기존 형법보다 가중 처벌하는 인터넷 형사제재를, 악플에 대한 대응방안의 선두에 내세우는 것은 인터넷이 지니는 다양하고 긍정적일 수 있는 발전가능성과 잠재력에 역행하는 시도가 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인터넷상의 토론을 위한 가이드 라인과 그 가이드 라인을 만들기 위한 논쟁입니다. 적절한 수위는내부적으로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무턱대고 경찰이 신고도 없이 나서서 다 잡아들이겠다고 호통칠 때가 아닙니다. 실제 ‘연예인’에 대한 루머를 처벌한다고 나섰지만 그 대상은 정치적 게시물로 확장될 우려가 높습니다.(주2)

* 오 팀장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서는 추가로 계속 이야기 하겠습니다. 경찰 만능주의적 태도에 대해선 진짜 할 말이 많네요.

주1) 법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다만, 그 댓글이 특정인에 대한 경멸의 의사표시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댓글 자체의 표현내용이나 형식뿐만 아니라 그 댓글의 전제가 된 기사의 내용까지도 포함하여 그 기사와 댓글을 읽는 독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인바, 피고인 2, 이 씨의 경우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라는 댓글표현은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서 사람의 인격을 경멸하는 가치판단을 표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나 그 전제가 된 기사와 연결하여 살펴보면 피해자의 왜곡된 가치관과 잘못된 사생활로 인하여 아들이 사망하였다는 취지로 해석되어 피해자의 인격을 경멸하는 가치판단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주2) 최민재(2006)의 연구에서도 밝혀졌듯이, 댓글을 통한 논쟁은 연예기사보다 정치, 사회 기사의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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