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인간에 대해 당신이 알고 싶은 것들

실질 실업자 300만명 시대라고 한다. 경제활동인구 8명중 1명은 직장이 없는 상태라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요즘 인터넷에선 잉여인간이란 말이 자주 보인다. 예전에 유행했던 ‘루저’와 비슷한 의미같기도 하고..

맞다. 별로 좋은 말은 아니다. 잉여인간은 사회적 낙오자, 또는 패배자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남는 인간, 세상에 별로 쓸모없는 사람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특별하게 하는 일도 없고, 직장도 갖지 못하고,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또는 누군가가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며 잉여인간이라 부른다. 줄여서 그냥 잉여-

▲ 영화 잉여인간 포스터

새롭게 만들어진 말은 아니다. 알고보면 옛날부터 쓰이던 단어다. 이 말은 1958년 손창섭의 단편소설 제목으로 맨 처음 등장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도, 주인공이 나레이션을 통해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 부르는 대목이 들어있다.

나는 잉여인간이다, 더 이상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잉여인간이란 단어가 유행하게 된 것은,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 화나(FANA)의 노래 ‘잉여인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노래는 ‘게으름뱅이, 매일 패닉상태인 폐인, 쓰레기 내 인생, 이런 제길’ 이런 식의 가사를 통해, 무위도식하며 방 안에 틀어박혀 사는 폐인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묘사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잉여인간이란 말이 유행하게 된 이유

그런데 이 말이 어떤 의미에서건, 자주 쓰이게된 계기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꽤 비난하는 느낌으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이젠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잉여짓 그만해야 하는데.. 내 잉여생활.. 잉여의 힘을 보여줍시다.. 등등… 그건 아마, 그 안에 담겨 있는 어떤 자조적인 느낌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의미로만 놓고 보자면 예전에 유행했던 폐인이나 오타쿠라는 말보다 훨씬 더 가슴 아프다. ‘쓸모없음’에 훨씬 무게가 가 있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나 이태백이란 말도 자조적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는 각박한 세상의 현실에 빗대 신세한탄을 하는 단어에 가깝다.

반면 잉여인간은 인간은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말 그대로 쓸모없는 인간, 지금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이랄까.

잉여인간의 반댓말처럼 쓰이는 말들을 들어보면 이런 정서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잉여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던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예쁘고 멋진 배우자를 얻어야 한다던가… 그러니까 잉여인간의 반댓말은 사회에 필요한 인간-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스펙이 좋아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고 예쁘고 멋진 배우자를 얻는 사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잉여인간은 그냥 쓸모없는 인간이 아닌,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인간들, 직장 없고 돈 없고 힘 없어서 무시당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단어라고 봐도 좋겠다.

▲ 화나 앨범 표지

잉여인간의 등장과 대량 실업사회

또 하나, 잉여인간이란 말이 널리 쓰이게 된 배경에는 잉여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러니까 300만, 또는 400만으로 여겨지는 대규모 실업자군의 존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에선 이런 실업자 통계가 과장된 것이며, 통계청에 잡힌 실업자 숫자는 90만명 정도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일반 시민의 정서로 볼 때는 실업자 400만명이란 말이 훨씬 더 피부에 와닿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상 실업자, 또는 일해도 가난한 노동 빈곤층의 규모가 300~400만인 시대에서 살아간 다는 것은, 결국 빈곤을 삶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층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인터넷상의 잉여인간은 20대로 한정되지 않는다. 20대부터 40대, 심지어는 50대까지… 잉여인간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나이는 매우 폭 넓다.

마지막 하나는 사회적 성공, 또는 경쟁 이데올로기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성공, 또는 성공한 삶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뚜렷하다. 많은 돈, 좋은 차, 큰 집, 멋진 배우자, 사회적 명성, 높은 자리에 올라가 대접받는 것… 한 마디로 세속적 성공이 우리 사회에서 부르는 성공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를 얻기 위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가? 결국 삶 자체에서 만족을 찾지 못하고, 부자가 되어야지만 성공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세속적인 성공에는 이를 수 없는 계층이 많아지면서 이런 단어가 유행하고 있는 셈이다.

▲ DC 힛갤에서

잉여인간의 시대가 열리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꼭 나쁘게만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언제나처럼, 인터넷에선 이런 부정적으로 시작된 이야기도 나중에는 농담이 된다. 웃기는 말로 바뀐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잉여력-이란 표현이 있다. 잉여로서의 내공이 얼마나 쌓였는 가를 표시하는 말인데, 잉여짓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잉여력이 높다고 한다.

이 말처럼, 이들은 스스로를 무기력한 존재로만 여기지는 않는다. 시간이 많이 남으니까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인터넷은 이렇게 시간이 남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웃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줬다. 예를 들어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패러디 문화라던가, 팬덤 문화 역시 어느 정도 잉여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인터넷 이슈의 전파자다. 새로운 소식이나 재밌는 이야기, 이슈가 되는 사건의 뒤편에는 언제나 이들이 활약하고 있다. 때론 정말 무의미한 사건들이 서로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웃음거리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실 인터넷 문화 자체가 이런 잉여력을 통해 성장한 측면이 있다.

애시당초 인터넷에서 시간을 보내는 많은 네티즌들을, 기성 세대는 할 일 없어서 저런다면 측은하게 여기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들이 수많은 유행을 만들고,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을 생산하고, 지금의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로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하다.

가끔은 당신도 잉여가 되고 싶은 꿈을 꾼다

무엇보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경쟁사회에서 강요되는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살아가는 방법이랄까. 홍대 앞 카페 문화나 장기하 열풍, 디지털 카메라 유행도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삶 자체에 스스로 즐거움을 부여하는 방법.

잉여인간이라 부르는 많은 이들은, 일종의 패배감에 젖어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어떤 목적의식적인 삶이 아닌, 성과 지상주의적인 삶이 아닌, 자신이 하는 일 자체, 어떤 일에 몰두해 시간을 소비하는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생활 양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이 싫어하는 말중 하나가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 말 속에는 ‘그러니까 실패한 것은 니 탓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자다’라는 말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몇몇은 이런 말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리고 ‘재미있지 않은 것에 왜 노력을 해야하냐’고 되묻는다. 효율적인 삶을 쫓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라이프 스타일일 것이다.

사실 이런 문화는 한 나라가 고도 소비 사회, 또는 경쟁 사회로 진입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일본의 오타쿠나 미국의 매니아 계층등도 이와 비슷한 유형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다. 다만 우리에겐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 자체를 즐기는 것이야 말로 옛날부터 얘기하던 행복한 삶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어려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취업도 못하고 돈도 없는, 그런 현실이야 분명히 존재하는 거고,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숙제니까.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출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은 있다. 공무원이나 대기업만을 꿈꾸는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계속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 94.5Mhz, YTN 라디오 금요일 오후 8시 40분, 뉴스집중분석 – 클릭! 인터넷 이슈, 2월 5일 원고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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