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만 보면 그리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동영상은 아니다. 지난 3월초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한 국가대표 선수단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김연아 선수에게 꽃다발을 걸어주고 양 팔을 잡으며 격려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때 김연아 선수가 몸을 뒤틀어 뒤로 빼는 모습을 보여줬다. ‘회피 연아’ 동영상은 그 장면을 따로 잘라서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네티즌을 고소를 한 이유는?
그런데 왜 고소를 하게 되었을까? 이 동영상 제작/배포자를 수사의뢰하며 문화부가 밝힌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동영상 속도를 변화시켜서 왜곡했다는 것. 다시 말해 동영상에 조작이 가해졌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이 동영상은 ‘사실을 가장하면서’ ‘거짓을 유포해’ 유인촌 장관을 악의적으로 조롱하고 있다고 문화부는 판단했고, 이에 대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어떤가?
어이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말 그대로 웃자고 만든 영상에 죽자고 달려드냐? 라는 분위기다. 사실 인터넷에는 공인이라면 활동하면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욕먹을 각오는 해야 한다-라는 정서가 있다. 그렇다고 정도가 지나쳐서도 안되겠지만, 일종의 유명세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달까….
이런 문화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네티즌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예전에 한나라당에서 고 노무현 전직 대통령을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으로 패러디한 사진을 게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명예훼손 소송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다.
이런 상황이니, 네티즌들이 갑작스런 고소고발에 어이없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이 보기에 앞서 말한 두 사례에 비해 이번 건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반면 문화부는 생각이 다른데, 이번 동영상이 ‘진실을 가장’하고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동영상을 조작해서 배포했다면 문제가 되는 것 아닐까?
맞다. 공인의 인격도 분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인터넷 문화에 어느 정도 과도한 조롱이 섞여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조금 납득할 수 없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동영상을 조작했다고 하는 데, 이번 영상은 조작이니 뭐니 할 만한 수준의 것은 아니다. 애니메이션 GIF 라고 하는데, 그냥 KBS에서 방영된 원본 영상의 몇 장면을 이미지로 저장(캡춰)해서 이어붙인 것에 불과하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다 페이지별로 그림을 그린 다음에, 책장을 연달아 넘기면 만화영화 같은 효과가 나는 낙서를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그런 것과 비슷하다.
이런 것을 만드는 이유는 예전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동영상을 올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기도하고, 만들기나 사용하기가 간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번 ‘회피 연아’ 동영상도 보이기엔 동영상으로 보이지만, 인터넷에 글을 쓸 때는 ‘그림 파일’로 처리가 된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첨부하는 것도 간단하고, 컴퓨터로 보관하는 것도 간단하다. 이런 것들을 보통 인터넷에서는 ‘짤방’이라고 부른다.
짤방이 무슨 말인가?
짤방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 인사이드에서 생긴 말로, 관리자에 의해 게시판에서 글이 삭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넣기 위한 그림이란 뜻이다. 그 커뮤니티는 일단 형식적(…)으로 디지털 카메라 전문 커뮤니티다. 그래서 모든 커뮤니티 내 모든 게시판을 사진을 올리는 ‘갤러리’란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갤러리에 글을 올리려면 반드시 사진을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생긴 문화다.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보통 풍자 요소로 많이 쓰인다. 예를 들어 황당하게 느껴지는 신문기사를 봤다면, 그에 대해 이것저것 글을 쓰는 대신,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만화 그림을 집어넣어서 대신하는 식이다. 일단 재미있고,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사용하기가 간편하기 때문에 네티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동영상처럼 만든 짤방은 보통 움짤-이라고도 부른다.
그래도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은 분명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다. 회피 연아 동영상은 유인촌 문화부 장관을 조롱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도를 확대해석해서, 애시당초 성추행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게 하려고 만들었다고 보는 것은 조금 무리다.
사실 관계를 따져봤을 때 김연아 선수가 몸을 뒤틀며 뒤로 뺀 것은 맞다.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블로거도 이에 대해 ‘유인촌 장관이 포옹’하려는 것으로 봤다고 밝힌바 있다. 물론 이 당시 행동이 ‘진짜’ 어떤 의미였는지 알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회피 연아’ 그림 파일 자체는 그냥 뉴스 화면을 그대로 담고 있을 뿐이다. 애시당초 처음 그림 파일이 올라왔을 때도 ‘김연아’ 선수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지 유 장관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 고소건의 경우 문화부에서 더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영상 밑에 붙어 있는, 동영상에 대한 글이라고 보여진다. 영상 밑에 유인촌 장관이 김연아 선수를 왜 포옹하려고 하냐, 입술은 왜 내미냐 등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는데, 이런 부분이 문화부 사람들에게 명예훼손으로 여겨진 것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말해 영상을 올린 사람을 고소함으로써 영상 밑에 달린 댓글들이나, 그 영상을 퍼나른 사람들이 덧붙이는 해설을 막아보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문화부의 반응은 지나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어떤 부분에서 지나치게 여겨지는가?
앞서 말하듯 영상 자체에 대해 문제 삼기는 어렵다. 이번 사건은 뉴스 화면을 단순히 캡춰했다. 중간중간 화면이 튀는 것, 몇가지 장면이 과장되게 보이는 문제는 그림 파일로 변환됐기에 발생한 문제라고 여겨진다. 만약 이 영상이 전문가에 의해서 ‘알고’ 만들어졌다면 문제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해프닝으로 여기고 넘어가는 것이 맞다.
* 이런 식의 변환(편집)을 통해 동영상을 제작하는 것은, 작업자의 의도가 개입될 여지가 많고, 의도에 따라 내용이 왜곡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따라서 언론이라면 조심스럽게 다뤄져야할 문제다.
그리고 이런 뉴스 화면을 보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것들이 자신들의 뜻과 다르게 해석되거나 모욕적으로 느껴진다고 해서, 허위사실 배포라고 수사 의뢰를 하는 것은, 문화부의 의도처럼 ‘품격 높은 인터넷 문화를 만들기 위해’ 일종의 ‘시범 케이스’를 만드려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영상이 정말 문제였다면, 그것이 성추행을 연상시켰다면, 수많은 방송사에서 저렇게 내보낼 수가 없다. 당장 시청자들의 항의가 쏟아졌을 것이다. 결국 이런 저런 말을 하긴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영상이 아니라 영상 밑에 달린 ‘해석’이다.
사람들이 저 화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 가다. 그리고 그런 것은 누가 시켜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넷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밖에.
…물론 컨트롤 할 수 없다고 믿기에, 침묵 시켜려고 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섵부른 법적 제재는, 지금처럼, 오히려 더 많은 지저귐을 낳는 결과로 이어진다. 조용히 지나갈 수 있는 일을 섵불리 건드려 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인터넷에 왜 조롱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는가
기존 인터넷 문화가 작은 일도 지나치게 조롱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인정해야할 부분이다. 그렇지만 인터넷 문화의 일부분이 왜 이렇게, 조롱하는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는 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번 일에선 일단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우선 인터넷에서 조롱하는 것은 토론보다 쉬운 방법이다. 자료를 찾고 논리를 세우는 것보단 그냥 웃기시네-한마디 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대신 가장 허무한 방법이기도 하다. 남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롱해봤자 남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조롱한 사람이 오히려 멸시를 당하기가 쉽다. 그런 면에서 문화부는 이런 동영상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된 이유를 먼저 뒤돌아 봐야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정치적 허무감을 들 수가 있다. 대체로 조롱과 풍자는 힘없는 약자들이 권력자들을 상대로 구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인이 조롱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만 하고, 대부분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이에 대해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가 공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단순히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 어느 정도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 권력 관계에서, 뭔가 잘못된 것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느끼면 조롱은 극에 달하게 된다. 권력기관에선 왜 사람들이 이런 막막한 기분을 느끼게 됐는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티즌 문화도 어느 정도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예전 죄없음으로 드러난 ‘최민수 노인 폭행’ 시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세상일은 그리 쉽게 무 자르듯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 그런데도 알려진 한 면만 보고 쉽게 상대방에게 판결을 내리고 조롱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부분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남의 일이라고만 여긴다면, 그 다음은 공권력이 개입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수밖엔 없다. 스스로 권리를 지키지 못해 법이 개입해야만 한다면, 그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 잠시 유튜브를 뒤져보니 이런 것들도 있네요. 쿨럭-
게다가 이 글 밑에 달린 댓글은 무려-
Monica got to “LAWENSKI” the president so why cant Hillery “LAWINSKI” the president. In fact make a sex tape with Joe Biden in it… then the top 3 people in government can be impeached…And we can see a CAT firght between Michel and Hillary
* 94.5Mhz, YTN 라디오 금요일 오후 8시 40분, 뉴스집중분석 – 클릭! 인터넷 이슈, 3월 19일 원고를 다시 수정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