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자퇴한다해도 괜찮아

1. 얼마 전 이삿짐을 정리하다, 오래전 사촌누나가 어머니에게 보내온 편지를 찾았습니다. 1980년 6월, 휴교령이 내려진 대학을 나오면서 보내온 편지였습니다. 그렇지만 20대라는 시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의대생이었던 누나는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네요.

…인생에 대한 회의, 무엇이 나의 고민인지 알지 못하며 지내던 방황의 시절… 지나간 나의 6년간의 긴 방황과 불안. 마음 아파하던 것들… 아직도 나 자신이 된 느낌은 안들어요…

맞아요. 알고보면 즐거운 청춘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래서 다들 많이 힘들어하고, 고민하고, 방황하곤 합니다. 이십대가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어디간들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갑니다. 사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알고보면, 별 것 아니거든요. 신해철이 예전에 말한 적이 있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 세상에 길들여짐이지”라고…

그렇죠. 다 그런 거죠, 뭐. 작게는 학점을 걱정하고 군대를 걱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결혼을 걱정하게되고 건강을 걱정하게 되고, 카드값을 걱정하게 되고 정기적금 이자율을 따져가고 친구의 결혼때 축의금을 얼마할지, 장례식에서 부조금은 얼마를 내야할지 걱정하게 되는 것.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의 자신을 붙잡아두게 되는 것. 조금씩 책임질 것들이 많아지면서 겁이 많아지게 되는 것. 도망치고 변명하고 회피하고 자신의 일을 먼저 걱정하게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이겠죠.

2. 저라고 별로 다르진 않았습니다. 까놓고 말해 대학에 들어오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영어 공부하기, 컴퓨터 공부하기, 헬스로 몸 다지기”였습니다. -_-; 단순하게 말하자면, ‘사랑받고 싶은 욕망’과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불타있었던 거죠. 영어와 컴퓨터 공부란 것, 솔직히 내가 이것들을 ‘무지무지 좋아해서 한다!’라기보단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니까요.

물론 당연히,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몇몇 사람도 그렇겠지만, 얼마 못가서 모든 꿈은 깨어지고 그저 술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_-; 물론 술을 마신 이유는 가지가지였죠. 한 일 년동안은 음악한다고 미쳐 살았고, 다시 일 년동안은 광고한다고 미쳐 살았고, 나머지 일년은 학생회한다고 미쳐 살았으니까요.

재밌었냐구요? 무슨 말씀을. 원래 지나간 것이야 다 좋게 보이는 법이긴 하지만, 솔직히 그때를 돌이켜보면 하루하루가 징그러울 정도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할 일은 많고, 고민해야할 것도 많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은지. 왜 그렇게 전망도 보이지 않고, 돈도 없고, 연애도 되지 않고, 공부는 더더욱 안되고, 심심할 때는 뭐해야 좋을지 몰랐던지.

3. 그리고 며칠전, 자퇴를 하겠다던 한 학생의 글을 보았습니다. 솔직히 그 글을 읽고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아, 다른 것은 아니구요, 그 글에 나오는, ‘너의 꿈을 응원할께… 단, 대학은 졸업해’라고 말하는 꼰대가, 바로 저였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전화 왔던 후배에게, 대놓고 그렇게 이야기 했었답니다. 세상 우습게 보지 말고, 일단 졸업하라고. 긴 방황의 끝을 지나, 이젠 뭘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후배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딱 그 정도 밖엔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쿠, 말해놓자마자 뒷통수를 된통 두들겨 맞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 후배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고 해도,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입니다. 세상 우습게 보지 말고, 공부하라고. 농담 아니고, 정말입니다. 어떤 학벌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닙니다. 원래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할 수 밖에 없는 것인 걸요.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 그러니까, 도망가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히라고. 꼼수따윈 제발 좀 부리지 말라고.

그렇지만 저는 지금, 그녀의 자퇴를 응원할 생각입니다.

4. 구스타프 라드브루흐는 자신의 법학 입문 책에서, 포에르바하에 대한 일화를 이야기하며 법대생의 모습을 세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법학이 가져다주는 돈과 권세와 명예 때문에 법공부를 택한 청년들로서, 그들에게 법학은 말 그대로 빵을 위한 것이지요. 라드부르흐는 이들을 가장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부류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어려서부터 쭈욱 우수한 성적을 나타내왔던 이들로서, 당연한 선택인 양 법대에 진학한 경우입니다. 법학에 열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들이 법공부를 하면 좋다하고, 주변의 기대도 있고, 손해 보는 것 없어보이고. 이들은 성실하게 공부하며 이후에도 대체로 유능한 법률가라는 평을 받습니다. 전형적인 법률가라고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세 번째 부류는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서 철학, 예술, 휴머니즘 등에 이끌리면서도 외부적인 사정 등으로 인해 법학을 택한 이들인데, 법학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법학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때로는 도중에 포기하기도 합니다. 라드부르흐는 그러나 정작 법학을 진보시키는 것은 창조적 상상력을 갖춘 이 세 번째 부류라고 얘기하지요.

이 이야기를 먼저 들었던 탓일까요. 저는 그 자퇴 글을 읽는 내내, 그 학생이 자신이 가진 어떤 기득권을 포기했다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애시당초 자기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남이 입으라고 해서 억지로 입었을 뿐, 부모님이 좋은 대학 가라고 했으니 갔을 뿐, 처음부터 그곳은 자신이 있어야할 땅이 아니었던 겁니다.

물론 그런 결정을 쉽게 내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것이 과연 좋은 선택인지 망설임도 있었을테고,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민도 많이 했을 겁니다. 그리고 저 같은 꼰대들이 그래도 대학은 졸업하라고 잘난 척 충고도 했겠지요. 망설임이 깊어지면서 다시 돌아올 수는 있을까, 나중에 다른 기회를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고민도 많이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말빚을 지기 위해, 그렇게 글을 썼겠지요. 예, 저는 그 글을 글로쓴 약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못박음. 당신들 모두에게 고하니, 나는 이제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그러니 나에게 다시 돌아가라 말하지 말라는. 나는,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라고 말하는.

5. 하지만 청춘, 얼마든지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때가 아니라도, 나중에라도 그럴 수 있다고 믿지만… 또 한 편으론,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저질러 볼까요. 고민하고 넘어지고 상처받으면서 커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아파야 할 때는, 얼마든지 아파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넘어지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는 법. 넘어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것처럼. 다행히 당신은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을 바로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그다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곳이 바로 당신이 마음을 맡기고자 하는 세계. 당신은 당신이 가야할 길을 알고 있으니, 하고싶은 일과 해야할 일을 알고 있으니.

그렇지만 언젠가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꼰대들이 원래 이렇게 좀 질깁니다.). 다시 돌아와서, 스스로 원하는 공부를 찾아서 하기를 바랍니다. 그 대학이 아니어도 좋고, 꼭 다시 돌아올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다시, 좀 더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그때는 지금처럼 망설이지 말고 다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괜히 당신이 해놓은 말빚 때문에 망설이지 말고,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언제라도 다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꿈이란 것은, 구체적인 계획과 도전을 통해, 현실과 이어져야 비로소 태어나게 된다고,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눈물과 헌신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채는 것은 현장에 있는 당신 몫. 그것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니, 제가 더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럼 부디, 당신이 꿈꾸는 세상, 끝까지 꿈꿀 수 있기를.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간 당신에게,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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