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닥치고 애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때

가끔, 닥치고 애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때
애플은 생각보다 욕을 많이 먹는 기업입니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거의 안하는 기업, 자신의 독재적 환경을 구축하고 거기에 타인을 묶어두려는 기업, 매력적이지만 비싼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소비자의 요청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기업 ... 애플에 대해 욕할 것을 곰곰히 따져보면,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습니다.

...애플을 디스하는 사람들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가끔씩, 애플을 닥치고 예쁘게 볼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래 동영상처럼, 아이패드에서 애플이 줄기차게 밀고 나가는 방향성, 누구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콘텐츠 소비 기기-라는 컨셉이, 한 편으론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겠지만, 다른 한 편으론 어떤 분명한 변화, 어떤 이에겐 기적에 가까운 변화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예, 아이패드로 인해, 99살을 먹은 이 할머니는 자신의 첫 번째 컴퓨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출처) 그동안 간절히 바래왔지만 할 수 없었던 읽기와 쓰기가 가능해 졌습니다.

1930년대에 리드 대학을 졸업한 버지니아 캠프벨-할머니는, 자신이 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든 이후 읽거나 쓸 수가 없었습니다. 장님은 아니었지만, 녹내장으로 인해 제대로 글을 읽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패드가 등장했습니다. 밝은 화면과 함께 간단히 글자 크기를 키울 수 있기에, 시력이 약한 할머니도 글을 읽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글을 읽는 것만 돌려준 것이 아닙니다. 아이패드는 할머니에게 글쓰기의 즐거움을 돌려줬습니다. 이제 할머니는 예전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알고보면 별 것 아닌 기술(?), 별 것 아닌 변화입니다. 애플도 이런 상황까지 상정하고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그렇지만 이럴 땐, 정말 닥치고 애플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기기를 만들어줘서 고맙달까요..

물론 욕 먹기라면 애플은 저~리 따돌려 버릴 수 있는 MS도, 닥치고 사랑스러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위 사진처럼, 서울대 이상묵 교수님의 모습을 봤을 때 였습니다. ... 한때 이 교수님은, MS가 자신을 구원했다-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도 하셨지요. 과찬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사고로 인해 목 이하가 모두 마비된 교수님은, 휠체어에 붙은 휘슬 마우스(입으로 조작하는 마우스)로 컴퓨터를 조작해, 수업을 진행합니다. 저런 장애인용 장치가 없었다면, 또 없었던 옛날이라면, 교수님은 아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집에만 계셔야 했을 겁니다.

...저 장치를 개발한 것이 MS 입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엔, 정말 닥치고 MS를 사랑해 줄 수 밖에 없었죠.

그것이 허세라고 해도 좋고, 면피성 취지라고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진짜 좋은 도구들은, 정말 방망이 깍는 노인의 마음으로 만들어 집니다.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용성에 대한 고려, 설사 장애인이라 해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접근성에 대한 고려.

쉽지도 않고, 폼도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배려를 오롯이 느꼈을 때의 감동은, 어떤 신기술과 멋진 디자인에서 느낀 감동보다 크고, 또 오래갑니다. 녹내장을 가진 99살 할머니가 다시 글을 읽고 쓸 수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전신마비된 교수님이 다시 강의를 할 수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가끔은, 저 둘을 닥치고 사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늙으면, 제가 사고나면,
결국 제게 필요한 기기를 만들어 줄 회사는, 어쩌면, 저 둘 밖에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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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칼럼니스트. 디지털로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IT 산업이 보여 주는 'Wow' 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가져다 줄 삶의 변화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 프로필 : https://zagni.net/about/ 브런치 : https://brunch.co.kr/@zagni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zagni_ 이메일 : happydiary@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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