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술이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바꿀 것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그 때문에 달라지기도 하니까. 그와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기술의 ‘미래’를 묻는 만큼, 그 기술이 바꿀 ‘미래’도 물어봐야 한다는 것. 그 기술이 바꿀 미래를 묻는 자리가 11월 1일 열렸다. 「2016년 기술영향 평가 결과(안) 마련을 위한 공개 발표회」다. 때맞춰 올해의 평가 주제는 ‘가상/증강 현실’.
가상 현실 기술의 미래 영향력을 지금 알 수가 있을까?
이 자리에서 다루는 것은 가상 현실의 미래가 아니다. 가상 현실이 미래에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다.
어떻게? 글쎄. 원래 기술의 영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하지만 결국,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에 기반을 둬 추측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잊지 말자. 이번 ‘기술영향평가’ 역시, 크게 경제/ 사회/ 윤리/ 문화의 4가지 분야로 나눠서, 여러 전문가들과 연구자,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자리였다.
가상 현실은 우리 미래에 정말 큰 영향을 끼칠까? 끼친다. 일단 이번 기술 영향 평가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전망에 동의했다. 몇 년 전 3D TV가 미래를 이끌 것처럼 얘기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과는 다르다고. 가상 현실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라고.
재미있는 것은, 이번 기술 영향 평가 자체는 가상 현실/증강 현실 기술을 놓고 이뤄졌지만, 앞으론 이 두 기술이 공존하거나, 따로 구별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평가가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이 서로 이용되는 것도 다르고 기술적 특징도 다르지만, 앞으로는 일종의 혼합 현실, 그러니까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의 구별이 무의미해지고, 굳이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않고 살아가는 ‘기술적 생활 세계’가 다가올 것이다-라는 가정이 기술 영향 평가 초안에는 깔려 있다.
가상 현실이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이유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중 하나로 여겨지는 가상 물리 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 CPS)이란 개념이 있다. 일종의 진화한 사물 인터넷이기도 하고, 인공 지능 시스템이라고 봐도 좋다. 말 그대로 오프라인의 다양한 사물들과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결해서, 물리적인 시스템을 관리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빌딩에 화재 사고가 났을 경우 인공지능이 이를 감지해 스스로 대처하는 시스템 같은 것이나, 환자를 이송할 때 구급차가 자동으로 환자 상태를 체크해서 병원 의료진이 바로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 같은 것이 앞으로 만들어질 가상 물리 시스템의 한 형태다.
이 시스템은 향후 생산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인프라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핵심 기술 중의 하나가, 가상현실 기술이다. CPS의 경우 가상 세계와 현실을 동기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 삶도 변화 시킬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물건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판다거나, 화면과 다른 제품을 받아보고 실망하는 일처럼 소비 과정에서 나타나는 소비자 불만도 VR 기술을 통해 극복하면서, 새로운 소비 경험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상 현실은 라이프 스타일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사회 인프라나 소비뿐만 아니라, VR은 새로운 산업 군을 태동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다른 어떤 것의 대체재 역할로 여겨지고 있지만, 앞으로는 가상현실 제품을 만들거나, 콘텐츠 제작, 출판, 교육 등의 많은 영역에서 VR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업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사람들이 가지게 될 경험의 형태가 크게 변한. 가상으로 여행을 떠나고, 인공 지능 도우미와 함께 새로운 기술이나 스포츠를 익히고, 평소에 하기 힘든 안전 대피 훈련 등도 VR로 할 수가 있다. 가상현실 공간에서 맞춤형 정보를 제공받는다던가, 맞춤형 체험을 즐기는 것도 가능 해진다. 어쩌면 전기 제품과 컴퓨터, 스마트폰 보급과 맞먹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특히 교육은 VR 기술이 보편화되면 크게 바뀔 것으로 여겨지는 분야다. 이전까지 온라인 교육이 오프라인 교육을 전달하는 매체만 바꾼 것이었다면, 가상현실은 지식의 전달뿐만 아니라 체험, 또는 반복 훈련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시대에, 이런 변화는 새로운 시대에 좀 더 쉽게 적응하는데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다.
가상 현실 사회가 보여줄 여러 가지 문제들
개인적으로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쓰는 시대에서 터치스크린 시대로 넘어왔던 것처럼, 미래의 어린이들은 화면을 보면서 그 안에 있는 물건을 잡으려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컴퓨터 화면을 그냥 멀뚱 멀뚱 쳐다보지만, 요즘 사람들은 화면을 눌러서 뭔가 반응이 나타나길 기대하는 것처럼.
VR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무엇인가를 직접 체험하는 형태라서 그렇다. 보고 들은 것과 몸으로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 기술영향 평가 보고서에서는 그 때문에 가상현실 공간에 기반을 둔 새로운 인간관계도 만들 수 있겠지만, 반사회적 성향이나 행동들이 나타날 것들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적고 있다.
가상 현실 공간에서 배운 행동들이 현실에서 행동하는 양식에도 영향을 끼친다거나, VR이나 AR 공간에서 나타나는 정보가 특정한 이익을 위해 조작될 가능성, 성인 콘텐츠가 불러올 문제 등도 빼먹지 않았다. 앞으로 가상 공간의 윤리나 규범 같은 문제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가상 공간에서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지킬지, 스토킹 행위 등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지 등은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다.
더불어 신체적 /의학적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는 있지만, VR 기기 사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눈 피로, 안구 건조증, 근시 발생 및 사용 불편감 문제 등이 언제쯤 해결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거기에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 같은 경우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기술 영향 평가는, 그래서 존재한다. 기술 영향 평가 자체가, 현재 혹은 미래의 과학 기술이 사회에 미치게 될 영향을 미리 예측하고 평가하면서, 부정적인 면을 줄이고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하는 과학 기술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기술은 항상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미리 예측해 본다는 것은, 결국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과도 같다. 가상현실은 매우 가까이 왔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조금 특이한 기술이다. 이런 평가 작업이 긍정적인 과학기술정책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