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만 즐기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오래전 일이지만 ‘리얼 사운드 : 바람의 리글렛’이란 게임이 나온 적 있다. ‘D의 식탁’을 만든 게임계의 괴인 크리에이터 ‘이이노 겐지’가 만든 게임이다. 다른 게임과 다른 점이라면, 그래픽이 없다. 눈 감고 플레이할 수도 있다고 했다. 흥미가 있었지만 직접 플레이해 볼 기회는 없었다. 일본어도 못하는데 애써 구해서 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다만… 이런 게임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만 했을 뿐.

그랬는데, 정말 소리로만 즐기는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도쿄 게임쇼 2018에 출전한 ‘오디오 게임 센터’라는 프로젝트다. PC에서 즐길 수 있는 이 게임은, ‘소리로 게임을 해보자’라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제 ‘앞을 보지 못하는 프로그래머’가 자신과 같은 사람도 즐길 수 있게 만들고 있는 게임이다.

이름은 ‘스크리밍 스트라이트’. 장르는 액션으로, 왼쪽-가운데-오른쪽 세 군데의 라인에서 다가오는 적을 ‘소리’로 판단해 조이스틱을 조정, 쓰러뜨리는 형식이다…. 세 번 공격을 받으면 게임 오버.

▲ 실제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출처 : 기가진)

▲ 게임이 진열된 모습. 그래픽은 전혀 없다. 오른쪽 조이스틱과 헤드폰만 사용한다(출처 : 파노라).

대단하진 않지만, 게임 자체로 일단 재미있다고 한다. 오직 귀로만 듣기에 상상력이 커지기도 한다. 이런 점은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회와도 비슷하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사운드 게임은 ‘사운드 노블’에 더 가까웠다. 줄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오디오 북이라고나 할까. 설마 사운드 액션 게임이 나올 줄 몰랐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이 게임을 만든 이는 어릴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던 노자와 유키오. 게임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고, 사운드 중심 게임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은 홈페이지(링크)에 공개되어 있다. 본인은 오디오 게임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와 함께 이번 게임 제작을 주도하고 있는 DDD 프로젝트는 유키오 말고도 여러 디자이너, 연구원, 프로그래머, 큐레이터 등이 소속된 팀이다. 감수를 맡고 있는 이누카이 박사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게임’을 연구하고 있으며, e스포츠팀 PD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하고 찾아보니, ‘다누온‘이란 스타트업이 여러 가지 배리어 프리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다만 나는, 이들이 그저 ‘착한 기업’으로 남기를 바라지 않는다. 배려는 필요하지만 게임의 본질은 아니다. 대신 새로운 세계, 귀로 듣고 봐야 하는 세계를 나 같은 사람에게 열어주길 바란다. 아직 짐작하기 힘든, 그 세계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알려주길 바란다.

… 게임이라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이 게임에 대한 정보는 오디오 게임센터 프로젝트 홈페이지(링크)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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