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한가위 연휴 보내세요

“이 새벽에도 태어나고 죽고 사랑하고 배반하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겠지요. 살아가는 일에 매번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가 닿는 마음은, 찰나에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입니다. 아직 미혹이라 매번 이 평범한 자각에 이르기까지 가슴이 확 뒤집어지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만, 섬광처럼 지나가는 순간순간을 아로새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애쓰겠습니다.

그래도 당신에게 가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면, 그건 제가 힘에 부치는 약속을 질러 한 것이지, 당신 탓이 아닙니다. 그러니 귀한 당신. 인간을 사랑하는 일에서 멀어지지 마세요. 당신은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그늘이니, 자괴감을 갖지 말아요. 힘껏 살아야 강렬하고 견고한 사유를 하지요. 여기가 끝이 아니니 어서 힘을 내서 또 걸으세요. 멀리, 저 끝없는 저 길 위를.”

– 신경숙, 「오래전 집을 떠날때」 서문에서

 

 

막내 조카 양력 생일과 어머님 음력 생신이 우연히 겹쳐, 가족들과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급하게 잡은 거라 어디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이래저래 숙소도 잡고 생일 파티도 하고 그랬네요. 어른 전원이 백신 접종을 마치니, 이런 건 편합니다. 어딜가든 7명? 이러면 안되지만 어른 4명은 다 백신 접종 완료! 이러면 통과-

가만히 해안가 카페에 앉아 조카들과 놀아주다 바다를 보는데,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지나갑니다. 이젠 익숙해졌으면서도, 여전히 SF 같은 풍경이죠. 공기 좋은 해안가에 놀러왔는데 마스크 쓰고 다녀야 한다니… 지켜야 할 것도 많고, 미리 확인해야할 것도 많고, 안되는 것도 여전히 많고.

… 이제 두돌이 된 막내 조카는, ‘마스크’가 없는 세상을 모릅니다.

앞으로 마스크가 사라진다고 해도, 어떤 세상을 살게될 지 짐작하기 어려워요. 비슷한 전염병은 반복될 겁니다. 타인과 온/오프에 익숙해진, 하이브라이드한 삶이 뉴노멀이 되겠죠. 기후 위기는 모두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지금 보고 있는 바다가 10년 후에도 이 자리에 있을까요? 동해안 해안 침식은 꽤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사회적 양극화는 더 지독해졌고, 양쪽 진영을 갈라 아귀다툼 하는 모습도 여전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살암시민 살아진다-라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고, 제 조카도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바뀌지 않는 것도 있어요. 강릉에서 쳐다본 달은, 아직 보름달은 되지 못했지만, 휘엉청 밝고 크더군요. 인류가 멸망해도, 달이야 당분간(…) 어디 가겠습니까.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모두, 손가락 대신 달을 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짧기보단 길게보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좀 더 단단한 삶이, 가슴에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굳세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기를. 모두, 행복한 한가위 연휴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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