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0, 돈이 보이는 변화를 찾다

120년 전 1900년, 파리에서 다섯 번째 만국 박람회(Paris Exposition)가 열렸다. 당시 대한제국이 참여해 알려졌지만, 원래는 프랑스가 가진 과학기술과 문화를 과시하기 위해 개최된 전시다. 7개월간 방문자는 약 4,800만 명. 그 당시 만나볼 수 있던 최신 기술 제품이 한자리에 모인 장소이기도 했다.

34개 전시공간(파빌리온) 중에 과학기술에 배당된 전시장만 21개. 그 안에서 사람들은 가상현실(시네라마), 전기 자동차, 로봇 인형, 혁신적 모빌리티(무빙워크),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유성 영화), 스포츠(1900년 하계 올림픽) 그리고 수많은 전구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벨 에포크 시대의 정점을 찍는 자리였다고 해도 좋다.

 

▲ 1900 파리 만국 박람회 포스터

 

120년 후, 202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행사를 보는 기분이 이와 비슷했다. 행사 성격은 다르지만 모인 것은 비슷했다고 할까. 새로운 기술과 제품들. 그걸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지난 20년을 바탕으로 나아진 기술과 낭만적으로 이야기되는 미래. 과시 속에 숨겨진 불안감. 어쩌면 지나고 나야지 알게 될, 그 안에 숨겨진 큰 변화.

기술 주제는 인공지능과 모빌리티 혁신, 5G와 사물 인터넷,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바뀌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은 똑같다. 뭔가 올 것 같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 변화를 먼저 보고 경험하고 싶은 사람과,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으려는 사람들. 특히 이번 CES 2020은 디지털 가전부터 시작해 자동차, 플라잉택시, 마케팅, 푸드테크, 디지털 치료, 여행, e스포츠까지 영역을 넓혔기에 더욱 그랬다. IT는 이제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기반 기술이 됐다.

 

 

모빌리티, 인공지능, 디스플레이

 

핵심 트렌드는 모빌리티 혁신, 디스플레이, 인공지능과 서비스 로봇이다. 특히 모빌리티 혁신에 대한 의지가 두드러졌다. 확 눈길을 사로잡은 회사는 소니다. ‘비전 S’라는 콘셉트 자율주행 차량을 공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소니가 강한 이미지 센서와 음향 기술을 활용해 안전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하는 차량이다.

현대 자동차는 우버와 손잡고 만드는 ‘플라잉 택시’ 개발을 포함한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 눈길은 콘셉트 플라잉 택시 비행기 ‘S-A1’이 사로잡았지만, 현대차가 만드는 건 도심 교통 문제를 해결할 미래 교통 솔루션이다.

2019년 이팔레트라는 자율주행 차량을 공개한 토요타는 이번엔 자율주행 차량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연구용 도시 ‘우븐 시티(Woven City)’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도쿄 근교에 만들어지는 이 인공도시에서는, 실제로 사람이 살면서 다양한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홈, 인공지능 기술을 테스트하게 된다.

그 밖에 LG전자, SK텔레콤, 보쉬를 비롯해 차량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인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앞으로 5년 안에 분명한 먹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 소니 콘셉트 카 비전 S

 

인공지능은 한 걸음 나가면서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2019년 CES에서 보여준 AI는 모든 가전제품을 사람 대신 관리하는, 인공지능 집사 같은 모습이었다. 2020년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 딱히 더 나아지지 못했다. 대신 더 나아진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쓰임새를 찾고 있다.

삼성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네온(Neon)’은 진짜 사람처럼 보이는 디지털 인간이다. 현실 세계의 사람을 따라 하지 않고, AI 스스로 외모부터 표정, 대화하는 방법까지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 컴퓨터 게임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안타깝지만, 올해 가장 과대 포장된 기술이 될 거라 생각한다.

가전제품에 들어간 인공지능은 알아서 할 일을 한다. 세탁기는 옷감과 재질을 파악해 적당한 세탁방법을 선택하고, 로봇 청소기는 알아서 집안을 파악해 움직인다. TV 안에 들어간 AI 프로세서는 알아서 화질을 개선한다. 그냥 알아서 한다. 이제야 기술이 이용자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탓이다.

 

▲ LG OLED 터널

 

디스플레이는 올해 가장 크게 느껴질 변화다. 그동안 너무 비쌌던 고가 OLED TV 제품은 크기를 줄이면서 보다 저렴해졌다. 8K TV는 아직 사기엔 이르다 여겨지지만. 폴더블 디스플레이는 빠르게 퍼지고 있다. 레노버와 델 등은 폴더블 디스플레이가 달린 노트북을 공개하고, 올해 안에 판매에 들어간다고 한다. 당장 2020년 말부터, 폴더블 디스플레이와 화면이 2개 달려서 접히는 노트북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여럿 만나볼 수 있겠다.

중국 하이센스는 롤러블 TV와 비슷한 ‘셀프 라이징 레이저 TV’를 공개했다. TV 패널 대신 프로젝터 빔을 비추는 스크린이 말려 있다가 위로 올라간다. 짝퉁이란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레이저 프로젝터 방식 대화면 TV(일명 레이저 TV)가 중국에선 큰 인기를 끌고 있음은 기억해 두자.

 

돈이 되는 기술을 찾아라

 

얼핏 보면 작년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제 수익이 나는 사업에 집중하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꿈만으로 투자자가 지갑을 열던 시대가 끝난 탓이다. 전시된 제품은 아이디어만 보여주는 제품도 많지만, 대부분 올해 또는 2~3년 안에 실제로 만나볼 수 있는 제품이다.

개인용/서비스 로봇은 이제 실제 사업장에서 사용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무인 키오스크 기기처럼, 적절한 가격에 필요한 사용처를 찾을 수 있다면 빠르게 보급될 수 있다. 자율주행차 및 전기 자동차는 10년 안에 휘발유 자동차를 대신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시장 참가자는 모두 그쪽에 베팅했다.

스마트홈은 조금 뒤로 물러난 대신, 알아서 작동하는 고급형 가전제품이 많이 출시될 예정이다. 모든 제품에 AI가 탑재된다고 생각해도 좋다.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일상에는 더 많은 스크린이, 더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다. IT는 이제 기술보다는 내리는 비에 더 가깝다. 제품에서 빠져 나와 세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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