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는 삶을 지키는 기술이 될 수 있을까

 

팟캐스트 녹음을 마치고 홍대 스튜디오를 나선다. 날씨가 풀린 탓일까,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꽤 많은 사람이 걷고 있다. 데이트하는 커플도, 새학기를 준비하는 학생도, 관광객도 보인다. 차분함과 설레임이 함께 있는 거리. 한쪽에선 댄스팀이 거리 공연 준비를 한다. 평범한 풍경 속에 낯선 변화가 눈에 띈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다. 커플도, 관광객도, 아티스트도. 코로나 19가 바꾼 풍경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세계화는,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바꿨다. 크게 보면 3가지다. 지리적 거리감을 좁혔고, 커뮤니케이션 속도가 빨라졌으며, 24시간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었다.

바뀐 건 세상만이 아니다. 우리가 물건을 만들고 사고팔고 소비하는 문화도 바뀌었다. 일본에서 만든 소재를 써서 한국에서 반도체 부품을 만들고, 중국에서 그 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복잡하지만, 여러 과정에서 서로 묶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일/미중 무역 분쟁과 코로나19사태는, 이런 기술 기반 상호의존이 가진 문제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지리적 거리감을 좁혔더니 우리나라 문제는 이웃 나라 문제가, 이웃 나라 문제는 우리나라 문제가 된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는 빠르게 다른 나라에도 퍼졌다.

중국 공장에서 생산을 멈추니 한국 공장 생산도 차질이 생긴다. MWC 2020을 비롯해 많은 IT 이벤트, e스포츠 경기 행사가 취소됐다. 작은 기업들은 생존 기로에 섰다. BCP(Business Continuity Planning) 또는 컨틴전시 플랜 Contingency plan을 가지고 있던 큰 기업들은 빠르게 대처하고 있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소셜 미디어는 공포심 증폭기였다. 코로나19라는 떡밥이 떨어지니, 너도나도 가짜 정보를 만들어내며 두려움을 키웠다. 이로 인해 여러 나라에서 실제로, 인종차별에 가까운 혐오 행동이 일어났다. 트위터, 페이스북, 틱톡 등에선 가짜 정보를 차단하려 노력했지만, 아시아인을 보는 시선은 이미 달라졌다.

아이러니하게, 공포심과 함께 연대감도 같이 커졌다. SNS는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많은 연구자가 중국 SNS에 올라온 글을, 검열되지 않은 진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로 수집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가 콜라를 팔던 사람을 설득하며 말했듯, IT는 ‘세상을 바꿀 기회’를 주는 힘이었다. 그 힘은 지금, 제대로 쓰이고 있을까? 중국 정부는 전 인민을 감시할 수 있을 만큼 촘촘하게, AI 안면 인식 기술을 이용한 감시 카메라를 중국 전역에 깔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감지하는 데 작은 도움도 주지 못했다. 꿈을 팔면서도, 막상 변해버린 현실에 IT는 무기력하다.

그럼 IT는 진짜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장사꾼을 위한 신상품을 만드는 기술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지난 사스 때와 비교해, 이번 코로나19 대응은 확실히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컴퓨터를 이용해 DNA 염기서열 정보를 해독하는 작업이 빠르고 저렴해졌다.

 

빠르게 분석된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는 인터넷에 공개됐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세계 연구자들이 동시에 분석과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검사 키트도 만들었다. 트위터, 바이오 아카이브 같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각국 과학자들의 소통도 빠르게 이뤄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상이 가는 방향도 바뀌고 있다. 실패라고 여겨졌던 무인화 기술이 다시 검토되고, 서비스 로봇들이 이르게 투입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나 학습을 위한 도구와 서비스도 여럿 나오고, 퍼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한번 위험이 발생하면, 그 위험을 대비하는 조치가 계속 이뤄진다. IT가 나설 시간은, 어쩌면 지금이다.

* 2020년 2월 임볼든에 기고한 글입니다.

About Author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