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 가네시로 가즈키

오랫만에 다시 읽게 된,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연애 소설. 원 제목은 대화편(對話篇). 원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 사람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뤄진 세 편의 단편 연작 소설 모음집((계단에서 넘어짐, 깨지지 않는 다는 표시가 새겨진 레코드판, 다니무라 교수- 라는 매개체를 빼면 ㅡ_ㅡ;; 솔직히 이어지는 내용은 없다.)

아아, 그러니까, 이 책은 추억과 연애와 운명과 죽음과 우연한 만남에 대한 세가지 이야기다.

첫번째 대화는 나와 불행한 운명을 가졌다고 믿는 친구와의 대화
두번째 대화는 나와 알고보면 살인청부업자인 친구와의 대화
세번째 대화는 추억을 더듬으며 사랑하는 이의 유품을 찾으러가는 노 변호사와의 대화

<연애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 맞닥드리며 산다. 그것은 죽음을 부르는 운명이기도 하고, 암과 같은 병이기도 하고, 피할 수 없는 실수로 인한 헤어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때문에 지옥 끝까지 떨어진다고 한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경계선을 그어봐도, 내 근처에 아무도 다가오지 말라고 사정을 해도, 어느 순간 금을 넘어버리고 내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 거니까.

그 사람이 있기에, 그 사람과 살아왔기에,
그 사람이 나를 지켜봐 주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손을 놓지 말라고-
죽음이 다가와도,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것.


아래부터는 책에서 밑줄 친 부분


-p43, 44, 45

“달이 예쁘다”

정말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도 그녀의 시선을 쫓았다.

“운명 같은 거 잘 모르겠지만, 늘 생각하는 게 있긴 해.”

그녀가 말했다.

“그게 뭔데?”
“있지, 제대로 전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을 꺼내고는 턱을 내리고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어도, 안 만나면 그 사람은 죽어버려.”

그도 얼굴을 내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다 죽잖아. 그러니까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야. 가령 추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 버려.”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잖아. 지금은 너하고 이렇게 손잡고 있지만, 손을 놓고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가능성도 있는 거잖아?”
“돌아가는 길에 CIA에 납치돼서?”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지으면서, 비어 있는 손으로 그의 어깨에 가벼운 펀치를 먹였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좋아하는 사람하고는 계속 만나야 한다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p53

“고마워. 나는, 정말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좋아하는 사람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 말이야. 좋아하는 사람이 슬퍼하면, 그런 거 별일 아니야, 내가 있잖아,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지금도 그렇잖아.”
“정말?”
“보장해.”



-p58, 59

가끔 나는 그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마나 내 어릴 적, 처음으로 좋아했던 그녀가 떠오르고, 조금은 슬퍼진다. 그녀는 내가 살아가는 싱거운 시간의 흐름에 묻혀 점차 그 모습이 멀어졌다. 손을 뻗어도 이제는 닿지 않을 장소로. 언젠가 그녀의 얼굴 생김은 커녕 윤곽조차 희미한 날이 올 것이다.

내게 누군가를 죽일 힘은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분명하게 생각한다.
언젠가, 내게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고 .
그리고 그 사람을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 그 손을 절대 놓지 않으리라고.
그렇다, 설사 사자가 덮친다 해도 .
결국은 소중한 사람의 손을 찾아 그 손을 꼭 잡고 있기 위해서,

오직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싱겁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럭저럭 살고 있다 .
그렇지 않은가요 ?

<영원의 환>

-P109

“내일 죽는다면, 뭐 할 건데?”

K는 손잡이를 잡은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에는 대담하고 야비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죽다니, 무슨 말씀. 내일도 모레도 살아남을꺼야”

<꽃>

-P137

“지금은, 그때 그녀의 모습이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네만.”

도리고에씨는 말했다.

“그녀가 무척 아름다웠다는 것만은 확실해. 그것만은 틀림없어.”

-P175

“난, 이미 늦었지만”

도리고에씨는 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절대 그 사람의 손을 놓아서는 안 되네. 놓는 순간, 그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멀어지니까. 그것이 내 인생 28년분의 후회일세.”

-P184

지금 내게는, 후회할 일이 하나도 없다.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기억만이 있을 뿐. 달리기 시합에서 출발하면서 넘어졌던 일, 발렌타인 데이에 채였던 일, 오키나와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일. 모두모두 사랑스럽다. 그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다가올 겨울을 맞으리라.

차는 상태가 아주 좋다.
이 세상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이 세상은 멋지다.
나는 아무 상처 없이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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