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언제나 그곳부터 입니다.

하늘선물님의 글 「’88만원 세대’한테 무대가 ‘시위’라는곳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를 읽다가 짧게 생각나서 씁니다. 맞습니다. 등록금 싸움만 끝나면 다시 개개인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같은 “세대”로서의 정체성을 얻지 못하고 토익과 취업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면, 슬픈 일이죠.

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그곳부터 입니다-

예전에, 25년전쯤 현대중공업에서 첫번째 파업을 했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진에 찍힌 사람들보다, 그 사진에 직힌 구호들에 더 눈이 갔습니다. 그 구호들에는 임금을 인상하라-는 당연한 주장말고도, 머리를 기르게 해달라, 출퇴근할 때 사복입게 해달라-라는 주장이 함께 적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눈으로 볼 때는 조금 황당하게 느껴지는 요구들이지만, 그때는 그 작은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고 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된 곳은, 바로 그 작은 곳들부터 였습니다. 전 그래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저 한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처음부터 더 큰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과도한 요구입니다.

무대에서 막이 내려와도 공연은 끝나지 않습니다. 인생은 단막극이 아니라 네버엔딩 드라마인걸요. 무대에서 얻은 경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찌되었건 경험은 자기자신에게 남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 어떤 행동을 선택할 것인가는 일단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어차피 한 판의 무대에서 놀아도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운동권이라 욕했던 학생회가 무너지자, 새로운 학생회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대학 당국이 학생들을 먹어버렸던 것처럼. 그들은 대학 당국과 기성 사회의 논리에 동의했다가, 그만 자신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잡아 먹힌 학생들은 이제 대학의 봉 취급을 받지요. 몇십만원씩 등록금을 올려도 항의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한달에 백만원꼴로 학교에 꼬박꼬박 바치면서도 자신의 권리 하나도 제대로 못찾는 학생들.

그런 그들이 이제 나서려고 합니다. 학생들 스스로 힘을 얻지 못하면, 누구도 그들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판이 커야합니다. 이제와서 어지간한 힘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한판 나랑 싸워자-하고 나서지 않는다면, 언제까지 봉 취급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무대가 필요하겠지요. 한판 거하게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무대에 동참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당분간이라도 이런 무대에서 실컷 뛰놀수 있도록 응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넓게 봐야한다-는 이야기는, 그 다음에 나와도 늦지 않습니다.

아직 판도 안벌렸는데, 끝나고 다시 소시민으로 돌아갈거냐-는 염려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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