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남으려면, 생물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전세계 어딜가도, 배아줄기세포-라는 단어를 내뱉었을때 “그게 뭐야?”라는 대답을 듣지 않을 나라는, 한국 밖에 없을 겁니다. 최첨단 학문에 속하는 ‘줄기 세포’를 이용한 연구에 대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상세히 알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체세포가 뭔지, 줄기세포가 뭔지, 그 세포를 이용한 연구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내용을 모르면, 어느 한순간 바보 취급 당하기 딱 좋습니다. 거짓 연구 결과에 놀아나고, 거짓 대박(바이오 벤처)의 꿈에 놀아나고, 거짓 선진국의 희망에 놀아나는….
한국인으로 살아남으려면, 예방의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소에게서 인간으로, 어떻게 병이 옮겨질 수 있는지, 소의 어떤 부위를 먹으면 광우병에 노출될 위험이 있고 어떤 부위는 또 그렇지 아니한지, 회장 원위부가 뭔지, vCJD와 CJD의 차이는 무엇인지, 30개월 이상된 소와 그렇지 않은 소의 차이는 뭔지…
무엇이 안전하고 안전하지 않은지, 정부에서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말해줍니다. 가끔은 정치 논리에 밀려 ‘졸속 협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싶다면, 아니, 내 가족과 아이의 안전을 지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 음식을 골라먹을 수 있으며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지, 스스로 배워야만 합니다.
한국인으로 살아남으려면, 신문방송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MBC의 지배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신문과 방송 겸영이 왜 문제가 되는지, 언론 종사자들은 어떤 윤리를 가져야만 하는지… 다른 나라에선 미디어 전문가들이 주로 토론하는 영역이지만, 한국에선 국민적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문제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언론이 어떻게 변하는지, 왜 정부는 언론을 장악하려 드는지…
그뿐만 아닙니다. 광고와 광고가 아닌 것을 걸러내는 눈도 가져야만 합니다. 어떤 블로그의 어떤 글이 광고인지 아닌지, 정말 경험인지 포장한 것인지, 정부의 수많은 광고를 비판적인 눈으로 쳐다보며, 스스로 팩트를 확인하는 습관까지 들여야만 합니다. 안 그럼 역시, 한순간에 바보되는 것 순간입니다.
한국인으로 살아남으려면, 법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사실 법을 공부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오히려 법을 잘 알면 알수록 속이 터질지도 모르겠네요. 누군가가 가스총을 쓰는 것은 되고, 누군가가 촛불을 드는 것은 왜 안돼는지, 누구는 인도에 서 있었단 이유 만으로 잡혀가는데, 누구는 가스통 들고 돌진해도 괜찮고… 지금처럼 공평성, 다시 말해 법과 원칙이 무너져가는 시대에선… 법을 공부하면 할 수록 더 속이 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청앞 축제 무대에 올라갔단 이유로 서울시가 수억원을 물라고 하고, 자신에게 악플을 달았다는 이유로 변희재와 진재영이 고소를 하는 마당에, 아이가 춤추는 동영상 하나 올렸다고 네이버에서 블럭을 당하는 마당에, 법을 모르면 바로 ‘봉’이 되고 말아버립니다.
지금 법의 영역은 정치와 비지니스가 판치는 세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길은, 몇년이든 버티고, 끈질기게 공부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한국인으로 살아남으려면, 경제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현 정부의 감세 정책이 왜 문제가 있는지,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대운하 사업을 통한 경제 살리기, 인턴 증가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왜 기만적인지, 쌍용자동차와 비정규법, 최저임금제는 어떻게 봐야하는지, 국민연금에 대한 감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고, 어디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
결국 경제학을 공부해야만 합니다. 정말 그 수학적인 단어들이 난무하는 세계에 들어가야만, 지금 누군가가 하는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정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게 좋은 세상이라고 했던, 옛 사람의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제대로 이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알아야 할 것이 너무, 공부해야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기, 참 피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