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날을 연인절이라 부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확히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이브다. 크리스마스 이브, 발렌타인 데이, 일명 빼빼로 데이를 인터넷에선 연인절이라 부른다. 원래 중국에서 칠월칠석날에 연인들끼리 선물을 주고 받으라는 의미로, 상업적인 목적에서 불리던 이름이었는데, 한국에선 연인들끼리 놀기 좋은 날을 통틀어 연인절이라고 부른다.
사실 별다를게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애인이 없는 사람들이 묘하게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평소에 이성을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특히 심한데, 오죽하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술 먹고 24시간 동안 뻗으면 이 날이 지나간다, 수면제 먹고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난 다음에 깨어나면 된다-라는 연인절을 견디는 비법들이 매년 게시판에서 농담처럼 화제가 될 정도다.
요즘 연애를 하지 않는 청춘남녀들이 그렇게 많은가?
정확한 통계치가 나와 있지 않아서 딱 잘라 얘기하기는 어렵다. 사실 통계를 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연애하기가 조금 어려워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얼마전 유행했던 초식남이란 단어를 들 수 있겠다. 초식남은 간단히 자신의 취미 생활에만 신경을 쓰고 결혼에는 관심없는 남자를 말한다.
최근 이런 유형의 남성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 코리아에서 지난 7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초식남이 등장하는 이유중 1위가 “불황으로 인한 어려운 경제력과 이로 인한 자신감 위축”이 꼽힌다고 한다.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 싶지만, 작년 일본에서는 이 문제가 사회적 테마로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70%에 가까운 사람들이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아예 연애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도 24%에 달했다. 한국은 이 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연애를 하지 않거나 결혼을 늦게 하면, 뭔가 문제점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사회적 시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게임 캐릭터와 결혼식을 올린 사람도 있다던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물론 진짜 결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11월달에 한 대학생이 게임 캐릭터와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생중계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주례를 맡은 성직자와 40명의 하객도 있었고, 무려 3000명의 온라인 하객까지 모셨다고 한다. 그동안 온라인 게임 속 가상 결혼식은 많이 봤지만, 가상의 캐릭터와 진짜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마 처음일 것 같다.
결혼식은 처음이지만,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 흔히 말하는 폐인들에게 이런 방법은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게임 캐릭터의 사진을 들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찾아가 축하 노래를 부르고 축하 케익을 자른 일이 있긴 있었다. 어떤 폐인들은 살아있는 사람보다 게임 속 캐릭터가 더 좋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기도 한다.
재미있긴 한데 왠지 웃을 수만은 없는 일로 들린다. 아무리 그래도 온기가 있는 실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먼저 하나는 인정해야 한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 없는, 어떤 사회적인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TV만 보면 연애에 대한 이야기는 쏟아진다. 올해 화제가 되었던 가상 결혼 리얼리티쑈도 그렇고, 서점에도 연애 잘하는 법에 대한 책이 쌓여있다. 심지어 연애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는 힘든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만 간다. 그리고 그 대신, 인터넷 상의 인간 관계와 가상의 캐릭터에게 애정을 쏟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연애를 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장례식이 벌어지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지금도 이번 크리스마스를 온라인 상에서 하루종일 게임을 즐기며 보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일본의 한 전문가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하나는 앞서 말했듯 지금의 2~30대는 인터넷에서 얉고 넓게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현실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다른 하나는 연애보다 일을 더 중요시할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 때문이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그만큼 오르지 못한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가 힘드니 연애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고, 싸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인터넷 공간과 가상 캐릭터와의 관계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가 한 연구소 강연회에서 성생활을 많이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 말이 정말 성생활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사람과 만나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어떤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의미로 강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 말에 꽤 동의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건 실제로 있는 주장인데, 청춘남녀들이 연애와 결혼을 하는 것을 기피하게 된 배경에 중매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 결혼을 하게 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다시 말해 현실은 연애나 결혼을 하기가 어려워졌는데, 세상은 여전히 연애 결혼을 하라고 말하고 있으니 연애도 결혼도 잘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주장도 이해가 가는 것이, 사실 말이 쉽지 연애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잘 찾는 사람에겐 연애 결혼이 더 쉽지만, 상대를 잘 찾지 못하는 사람에겐 상대를 찾는 일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옛말은 중매 결혼을 하던 시절에나 통할 수 있었던 말이다. 지금은 서로 상대방에게 많은 조건을 내걸고, 그 조건을 만족 시키지 못하면 그냥 혼자 사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데 그 조건이 그리 쉬운 조건이 아니다.
쉬운 조건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조건을 말하는가?
얼마 전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원하는 평범한 결혼 상대라는 남자의 조건은 대졸 학력에 키 175~180cm, 전세 거주, 연봉 4천만원~5천만원을 받는 사람이었고, 남성이 원하는 평범한 결혼 상대라는 여자의 조건은 대졸 학력에 키 160~165cm, 전세 거주, 연봉 2천만원~3천만원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실제 결혼적령기의 남성 연봉이 평균 3천만원 정도고 여성 연봉이 2천 100만원 정도란 것을 생각하면, 미혼남녀들이 생각하는 평균치라는 것이 실제 평균치를 상당히 웃도는 편이다. 그리고 그 정도를 원하는 이유는, 그 정도의 조건은 맞아야 결혼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청춘남녀가 결혼해서 무난하게 가정을 꾸리기엔 집값도, 애들 교육비도 모두 너무 비싸게 여겨진다.
그러니 당연히 그 정도 조건을 갖춘 상대방을 못 만날 바엔 차라리 혼자 살겠다는 마인드가 만들어지고, 상대의 과도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사람들의 경우 인터넷이나 온라인 게임에서 인간 관계를 대리만족하는 쪽을 택하는 편이다. 실제로 일본에선 연애나 결혼을 잘하고 못하고가 연봉의 많고 적음이나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의 차이에 좌우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통계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연애나 결혼을 잘하지 못하는데 성생활이 원만할 리가 없고, 이러니 우석훈 박사의 주장이 뜬금없이 들리지만은 않는 것이다.
일찍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는 사람들이 혼자라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이유도 알 것만 같다.
내년에는 부디, 다들 좋은 짝을 만나서 웃으며 크리스마스를 맞게 된다면 좋겠다. 굳이 연인절이니 뭐니 들먹이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것 아닐까. 팔팔한 청춘남녀들이, 어떤 조건 때문에 연애를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부디 이들이 어떤 부담감 없이 연애할 수 있는 사회가 빨리 되기를 바란다.
* YTN 라디오 금요일 오후 8시 40분, 뉴스집중분석 – 클릭! 인터넷 이슈, 12월 25일 원고 입니다. 오늘 방송될 원고인데.. 꼭 이대로 방송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15금-으로 여겨지는 단어들도 좀 많이 들어있고 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