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난 김에, 한 귀퉁이만 다시 한번, 옮겨봅니다.
무풍 지대인줄 알았던 우리 대학에도 좋은 선배들과 친구들은 있게 마련이어서, 자연스레 모였습니다. ‘아, 대학은 자유와 진리의 광장이며…’ 따위로 시작되는 영탄조의 유인물 몇 장을 교내에 뿌린 것만으로도, 굴비 두름처럼 꿰어져 줄줄이 교도소로 가야하는 것이 당연한 듯 감수되던 ‘비합’의 시대였습니다. 교내 집회나 시위가 10분을 넘기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결정적인 결단이 요구되었을 때, 나는 작고 어두운 내 방에 들어가 하루 종일 뒤척이며 나오지 않았습니다. ’20대 박사’로 상징되던 온 가족의 꿈이 아까워 고민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따금 내 방문을 열어 보시고는 아무 말 없이 닫으셨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후 아침 밥상머리에서, 사춘기의 한 가운데쯤에 들어서 있던 여동생에게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빠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의 내용을 나는 잘 모른다. 너도 역시 그 내용을 모를테지만, 올바르게 살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알아두어라. 세상을 바르게 산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만이라도 알아두어라. 그리고… 드러나는 것보다는 항상 근본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온 에미로서, 네 오빠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난 아무 말 않겠다.”
아, 그것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흐린 불 밑에 앉아 구멍 난 양말 속에 알전구를 넣어 짜집기를 하시면서 “사람은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내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고, 그 날 각인된 어머니의 양말 깁던 모습은 흐릿한 조명과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생생합니다.
…
그 날 이후 ‘뼈 빠지게 가르치고 논 밭 팔아서 대학이라고 보내 놓았더니, 배 고픈 줄 모르고 문제만 일으키는 철딱서니 없는 놈’의 무리에서 크게 벗어나 본 적은 없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저를 보시면 농담처럼 말씀하십니다.
“저 녀석이 74년도 11월에 처음으로 잡혀가서 뚜드려 맞기 시작한 이래 오늘까지 단 하루도 제 정신 차려 본 날이 없다니까…”
돌이켜 보면, 대학을 나선 후의 전망이 제대로 모색되지 않는 참으로 암담한 시기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재벌 회사의 금뱃지를 가슴팍에 달고 다니는 ‘자본의 하수인’이 되든지 ‘자본가를 때려부수는’ 망치를 들고 노동자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뿐이었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너무나 자명했습니다.
‘사무전문직 노동운동’은 환상으로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처럼, 사회에 나가 직장인으로 옳게 서서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었던 황량한 시대였습니다. 그래도, 승냥이처럼 재빠른 솜씨로 목덜미를 나꿔챈 다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날렵하게 배를 걷어차는, 고도로 훈련된 백골단은 최소한 그 시대에 없었습니다.
…
오늘도 결의를 다지면서 머리띠를 묶어매야 하는 노동자들과, 번화한 거리 뒷골목에서 단속반과 숨바꼭질을 벌여야 하는 노점상들과, 포크레인 삽날에 무너져 내리는 삶의 터전을 지켜 보아야 하는 철거민들과, 썩어 문드러진 논밭을 바라보며 이를 가는 농민들과, 참교육을 외치며 사랑하는 제자들 곁을 떠나야 했던 1,600여명의 전교조 교사들… 이들 모두 진솔한 ‘우리’입니다. 그들과 친구가 되어야 제대로 된 대학생입니다.
최소한… 그런 생각으로 한국의 대학에 젊음을 바쳤던 사람들이 7·80년대에 수십만 명이나 있었다는 사실만이라도 기억해 주십시오.
– 하종강, 70년대학번이 새내기들에게…중에서
지구위 어떤 곳에 가도, 20대에게 만만한 세상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나 하나만-‘ 하는 자세로 사는 사람들, 잘 되는 것 별로, 본 적 없습니다. 인간은 서로에 대한 연민을 통해 기대고, 의지하고, 위로받고, 살아갑니다.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거짓 공포에 기죽지 마세요.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어떤 미디어에서 이래야만 된다고 협박하는, 그런 것과는 다르니까요.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은 당신이 걸어왔던 길이지, 당신의 배경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이란 것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꼭,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