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실의 시대

1. 4월 18일, 카페 네스카페 홈페이지 이벤트 당첨되어 관람. 오랫만에 서울 극장. 바람의 전설 이후 정말 오랫만에 들린 듯. 관객들은 왠지 다들 소설을 읽고 온 사람들인 듯한 분위기. … 하긴, 소설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면 지루했을 지도 모르겠다.

2. 영화 타이틀이 한글 ‘상실의 시대’로 전면 교체되어 있어서 조금 웃었음. 그 옆에 수줍게 붙어 있는 일본어 ‘노르웨이의 숲’. 하기야 소설을 읽든 읽지 않았던, 90년대를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은 대부분 들어봤을 테니까.

3. 영화는 그냥 깔끔하게 양다리 남자의 사랑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이야기를 가져와, 현실을 탈색하고, 사랑 이야기만 뽑아서 트란 안 감독의 감성으로 다듬어 놓은 느낌. 상실의 시대가 하루키 작품 중에선 그나마 현실적인 분위기가 짙은 작품이란 것을 생각하면, 꽤 아쉬움. 1960년대 후반의 일본 모습도 좀 재현해 주길 바랬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영화에는 전체적으로 ‘도시’라는 풍경이 삭제되어 있다. 호텔씬은 왜 또 그리 낭만적으로 그려놨는지. 맞다. 영화는 자연-을 훨씬 더 많이 화면에 잡는다. 원래 주인공들이 살아갔을 도시는, 어떤 작은 공간, 방, 어쨌든 네모난 공간으로 굉장히 좁혀져서 보인다. 그나마 가장 넓은 공간이 학생 카페-정도일까.

4. 하루키 팬매거진에 가까운 『하루키를 좋아하세요?』란 책에선, 상실의 시대가 굉장히 야한 책이라고 했다. 예전에 소설 읽을 때는 별로 그런 느낌 못받았는데, 영화에서 로맨스(?)를 나누는 부분만 모아놓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겠구나-하는 생각. 소설에서 건조하게 묘사되는 섹스가, 여기선 몸을 가진 배우들이 … 어쨌든 (대충) 보여주니까.

또 책에선 상실의 시대를 읽고, 와타나베(남자 주인공)처럼 하고 다니면 여자에게 인기 있을 줄 알고, 열심히 와나타베 워나비로 살았지만 늙을 때까지 동정-이었다는 남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 와타나베가 인기 있는 이유는 ‘그냥 남자의 로망’ 정도로만 생각해 왔었는데, 영화를 보면 대충 이해하게 된다. 잘생겼다.

…근데 레이코 여사는 대체 왜 매력적(?)인 사람이 연기한 건지 지금도 모르겠음.

5. 나오코와 미도리는 이해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캐릭터. 소설의 나오코 이미지가 좀 흐릿하고, 미도리가 반짝반짝 튄다면, 영화에선 나오코 쪽에 훨씬 더 촛점이 맞춰져 있다. 분명히 감독은 이 소설을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사랑 이야기-로 이해하고 영화를 만든 것이 틀림없다.

소설속 미도리가 고양이라면 영화속 미도리는 강아지. 물론 예쁘긴 하다. 어른 흉내내는 애 같아서 좀 그렇긴 하지만. … 아, 그러고보니.. 이 영화, 19살 와타나베가 20살 되는 이야기였지…

6. 오랫만에 현실적인 몸매의 남녀 주인공을 보니 왠지 느낌이 색달랐다….;; 언제부터 남자 주인공이 웃 옷을 벗으면, 당연히 식스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나가사와(?) 선배는 왠지 있을 것도 같았지만. 그나저나, 나오코-와타나베 라인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가사와 커플 이야기는 덤, 미도리와는 바람 피우는 이야기가 된 것 같아서 조금.

분명히 내겐 와타나베-미도리의 이야기로 기억이 남아있었는데.
(나오코는 과거의 망령.. 같은 느낌)

7. 어쨌거나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그냥저냥 볼만한 작품. 트란 안 홍 감독의 작품이 그렇듯,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된다. 특히 엔딩은 더더욱. 솔직히 엔딩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유감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고, 그 장면 자체가 소설을 상징하는 장면과도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나저나 와타나베, 대체 영화 속에서 몇번이나 하고, 또 하려고 하는 건지… 가만히 세어보니, 장난 아니다 -_-; 소설에선 가장 감정이입이 잘 되었으면서도, 영화에선 대체 제가 왜 저러는 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캐릭터. 이때 하는 말 다르고 저때 하는 말 다르니, 이 여자에게 하는 말 다르고 저 여자에게 하는 말 다르니 … 음, 타고난 난봉꾼이랄까(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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