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세상

1. 지난 번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100회 기념 특집 토크쑈 보러 갔다가, 2부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에 조금 당황했다.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했기 때문이다.

“백지연 선배님을 존경해서 보러왔습니다. 그래서 백지연’‘에게 질문 드리겠습니다…”

다른 한 학생도 안철수 교수님을 존경해서 보러왔다면서, 안철수씨에게 질문 드리겠다고 말하고… TV에 나가는 거니 공적인 자리로 생각해서 그런 모양인데,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녹화라고 해도, 잘못하면 큰 실례가 될 수 있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의 대화- 촬영에 나가서 ‘이명박씨에게 질문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생각해봐라.

물론, 요즘에 봤던 어떤 것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

2. 응급실에서 봤던 일. 새벽에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다. 술에 취해 인도에서 차도로 넘어졌는데, 넘어진 사람 위를 주차하려는 차량이 한번 밟고 지나가고, 느낌이 이상해서 확인한다고 차 빼다가 한번 더 밟아버린 사고였다. 당연히 환자는 부러진 뼈가 내장을 여기저기 찌르는 바람에 온몸을 뒤틀며 통증을 호소하고, 그 때문에 의료진은 처치에 굉장히 애를 먹고 있던 상태.

한 학생이 들어오라니 빨리 안살려내고 뭐하냐고 난리를 핀다. 분위기만 보면 당장 간호사들에게 주먹이라도 들이밀 태세. 처음엔 환자 가족인가-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운전자 친구다. 그리고 그렇게 난리난리치면서 내뱉는 말이 가관이었다.

“빨리 살려내! 이러다 이 사람 죽어서 내 친구 살인자 되면 니네들이 책임질거야?”

…속으로 XXX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3. 며칠 전 새벽에 있었던 일. 집 근처에 서부간선도로로 진입하는 사거리가 있다. 말이 좋아 사거리지, 집에서 그 사거리로 가는 2차선은 직진 차량보다는 우회전 차량이 훨씬 많은 길이다. 그런데 새벽에, 왠 차량 두 대가 사거리 진입하는 부근에서 우회전 차선을 막으며 정차를 하고 있는 바람에 일대에 잠시 차량 정체가 생겼다. (직진 차선에서 우회전을 받아야 하는 상황)

한 운전자가 화가 났는지, 그 차 옆에다 차량을 대고 뭐라 뭐라 했나 보다. 주차한 차량 유리창이 내려오는데, 왠 스무살 갓 넘은 애가 타고 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

“우리도 여기 주차하면 안된다는 거 아는데, 사정이 있으니까 주차해 있는 거거든요?”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4. 이건 예전 집 앞에서 본 이야기. 역시 밤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는데, 집앞 도로 분위기가 이상하다. 뭔가 공사를 한다고 땅을 파헤쳐 놨는데, 다들 공사는 안하고 웅성웅성하는 분위기. 호기심이 동해 가까이 가서 물어보니, 수도관 공사 한다고 도로 파고 공사하고 있는데, 왠 차량 한 대가 그 공사장 덮친 거다. 그로 인해 공사하시던 인부 한 분이 그 자리에서 사망.

도로를 꽤 깊게 팠기에 근처에 1M 정도 높이의 흙더미가 쌓여있는 상황이었고, 그 흙더미 위를 날아 -_-; 구덩이 안으로 차가 덮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피할 길도 없었던 것 같다. 차량 앞유리도 박살나 있었는데, 다행히 차량 운전자와 여자 친구는 무사했는지 인도로 나와서 무릎에 고개를 묻고 앉아있었다. 남자는 뭔가 엉엉 우는 분위기고, 여자애는 어떻게든 남자애 달래주려고 애쓰고 있는데, 남자애가 한다는 한마디-

“이거 우리 엄마가 알면 어떻게 해!”

…그게 자기가 죽인 사람이, 저쪽에 상반신만 잠바로 덮힌채 누워있는데, 할 소리였을까.

가끔 세상이, 아이들에게, 정말 배워야 할 것들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예의랄까, 어떤 방법이랄까. 혼자 아닌 여럿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이기에, 당연히 가져야 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 어떨 땐 정말 학교 선배들에게, 동네 형들에게 혼나가며 배우기도 했던,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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