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의 전쟁, 전가의 보도 청소년 보호

정부가 학원폭력을 근절한다고 말하면서, 게임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내용은 셧다운제 보완을 위한 쿨링오프제(2시간 이후 접속 차단) 도입, 게임물 등급 분류 기준 강화. 게임물에 대한 합동 조사.

…그리고, 청소년 게임중독 치료, 소외계층 등을 돕기 위한 민간자금 출연을 확대하고 이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

대체 저기에 소외 계층이 왜 들어가있는지, 그들을 돕기 위해 자금을 출연하는 것을 의무화 하겠다는 것이 무슨 꼼수인지 궁금하지만, 일단 접어두고- 지금 상황은, 1996년~7년에 청소년 보호법이 입법되던 시기와 많이 비슷해서, 꽤 당황스럽다. 사회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일종의 눈 돌리기. 그를 위한 희생양 찾기와 언제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청소년 보호’

▲ 서울 YMCA에 의해 불량 만화로 지목됐던 아기 공룡 둘리.
불량 만화가 된 사유는 어른에게 ‘싫어’라고 반말했다고.
희동이가 목욕후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고 음란하다는 판단도 받았다

그때는 만화가 학원 폭력의 배후로 지목 받았다

물론 이때도 계기가 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에 일진회 사건이란 것이 있었다. 일진회 사건? 경찰이 학교 폭력 써클애들 잡아넣었더니 얘들 이름이 일진회였고, 그 이름을 만화(로쿠데나이 블루스)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 그런데 그때부터, 학원 폭력의 주범이 만화로 몰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빵셔틀에서 셔틀이 스타크래프트에서 따왔다는 이유로 학원 폭력 문제의 배후가 게임이라는 주장은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니다.)

정말 그랬느냐고? 개뿔이. 80년대에는 전두환을 문어대가리라고 불렀다. 그럼 12.12 쿠데타의 배후가 바닷 생물인가? 왜 그랬는지는 IMF 가 닥치기 얼마전이었고, 삼풍 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등으로 인해 당시 민심이 흉흉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차라리 이해가 쉬울 것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딱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1995년에 아예 밤 10시가 넘으면 청소년 통행 금지를 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던 만큼, 바르고 건전한 세상을 바라는 꼰대들은 기회만 닿으면 언제라도 청소년을 감금하고(?) 싶어했던 것임은 분명하다.

▲ 성인용 버전을 따로 냈음에도 판매 금지, 작가를 구속시킨
천국의 신화

청소년 보호법, 만화 시장을 파토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무튼 이 때문에 97년 2월 24일 통과된 청소년 보호법이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장국영이 출연한 왕가위의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아예 상영을 금지 당했다(링크). 전국 곳곳에선 만화에 대한 단속이 이뤄졌고, 무려 1700종 500만권을 유해하다고 판정해버렸다. 성인 만화 잡지 ‘트웬티 세븐’과 ‘미스터 블루’가 바로 폐간되었다. 경찰은 전국에서 서점, 만화방, 도서대여점등을 단속해 이유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만화를 수거해 버렸다.

…그뿐인가? 담배피는지 아닌지 조사한다고 무차별적으로 청소년을 검문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만화 시장이 무너졌다. 이후 스캔본 및 도서 대여점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건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된 다음이고, 이 당시 만화를 살만한 곳이 갑자기 사라졌다. 동네 문방구에서도 구입할 수 있었던 슬램덩크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서점에서, 지하철 가판대에서 만화가 사라졌다. 만화를 팔 곳이 없으니 다시 만화가가 작품을 연재할 곳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 무엇보다, 만화를 보는 것이 나쁜 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여러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 상황이 엄혹했던 것은 사실이다.

청소년 보호란 이유로 게임을 다시 때려잡을 것인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당시 정부는 게임 시장을 한번 때려잡은 적이 있다. 1996년경이었던가. 당시 닌텐도 게임기 때문에 광발작을 일으킨 아이가 생겼다는 이슈가 발생했고, 이 때문에 여론이 안좋아지자 그때까지 ‘완구’로 분류되어 비교적 자유롭게 수입되던 게임기, 게임팩들을 ‘영상물’로 분류해 심의를 받지 못하면 아예 유통이 되지 못하도록 막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 관련 콘텐츠는 아예 수입할 수 없었던 시절. … 결국 당시 존재했던 수많은 게임샵들은 순식간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지금, 정부는 다시 한번, 세간의 이목을 돌리기 위해 게임업계를 때려잡으려고 한다. 그래서 잘 될까? 글쎄- 게임을 규제해서 학교 폭력 문제가 해결된다면, 오케이, 얼마든지 찬성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까?

학교폭력과의 전쟁 선포, 학교 담당 검사제, 유해 매체물 규제, 청소년 통금제, 보호자 특별 교육, 폭력학생 사회봉사제, 청소년 보호법,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 굉장히 익숙하지만, 이미 저 때, 십몇년 전에 다 나왔던 방안들이다. 진짜다. 윗 문장은 98년 검찰 직원이 투고한 글에 있는 문구를 그대로 카피했으니까(웃음). 결국 정부는 과장해서 백만년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효과 있었나? 효과가 있었다면 지금 이런 사건들이 터지진 않았겠지…

오케이. 백만번 양보해서 게임에 문제가 있을수도 있다. 사행성 게임의 경우 조폭들이 연계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게임에 빠져 현실을 소홀히 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것도 맞다. 그건 어른들도 그런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이런 식으로 해서 과연 해결될까? 이동연 선생님 말마따나 교육제도의 실패를 왜 게임에 전가하나?

…게임이 그렇게 문제라면, 차라리 학교별 게임 대항전을 실시해라. 그래서 게임을 즐기는 것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라. 그래야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이 보일 거고,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는 지를 알게될거다. 아이들과 일주일에 10분이라도 게임을 같이해라. 최근 문제가 발생한 아이들이 하나 같이, 집이 비어 있어서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 괴롭혔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는 왜 주목하지 않을까?

전쟁을 선포할 것은 게임이 아니다.
몇몇 아이들을 게임에만 빠져들게 만들었던, 그렇게 아이들을 방치했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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