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부족 같은, 그런 당연한 것들은 일단 빼고 말하겠습니다.
당신의 전자책은 어느 앱에 있을까?
가장 저를 미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다양한 -_-; 전자책 앱들(+ 그에 버금가는 전자책 판매상)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은 지금 제가 사용하고 있는 전자책앱들입니다.
당장 제가 쓰고 있는 앱들만 해도 이 정도입니다. 국내 서점만 살펴보면, LG 리더스, 리디북스, 교보이북, 크레마(온라인 서점 통합 이북 리더), 인터파크 이북, 네이버 북스, 알라딘… 여기에 북큐브나 텍스토어, 메키아, U+전자책 등까지 포함되면 대충 10여종이 넘어가는 셈입니다.
뭐 이렇게 잔뜩 깔아놓고 있냐구요? 그럴 수밖에 없네요. 그동안 주섬주섬, 이벤트 있으면 이벤트 따라서 이북을 챙겨사다보니, 제가 산 이북들이 이 앱들에 골고루(?) 흩어져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제조사나 통신사 앱들은 기존의 일반 앱들과 제휴 맺어 만들어 놓은 것이 대부분이라, 심하면 같은 책이 여기저기 중복 등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 그래서 발생한 문제. 어느 책이 어느 앱에 있는지 몰라요…o_o
결국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사놓고 안읽었던 책을 찾아서 읽으려고 하면, 저 앱들을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떤 책을 사뒀는 지를 일일이 확인해야만 합니다. 따지자면 여기저기서 책을 구입한 제 잘못일 겁니다. 하지만 종이책의 경우, 제가 교보에서 책을 사건 알라딘에서 책을 사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각 전자책 서점마다 파는 책들이 미묘하게 달라서, 한군데서 몰아 구입하는 것도 불가능.
다른 서점 다 망하고, 전자책 서점이 하나만 남아야 해결될 문제일까요?
전자책의 적당한 가격은 얼마인가?
또 하나 불편한 점은, 바로 전자책의 가격입니다. 전자책 가격 기준이 어떻게 매겨지는지, 도통 알길이 없습니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 혁명’은 일반책이 16,000원(할인가 14,400), 전자책이 반값인 8,000원입니다. 반면 노무현 평전은 종이책이 23,000원(할인가 20,700)인데 전자책은 12,000원(할인가 6,000원)입니다. … 대체 기준이 있긴 한가요?
이런 기준도 없고, 여기에 각종 프로모션이 겹치니, 결국 조금이라도 싼값…에 살 수 있는 곳에서 전자책을 사게 됩니다. 무슨 다나와에서 컴퓨터 부품 가격 비교하는 느낌이에요. 가격이야 공급하는 사람 마음이라지만, 똑같은 신간이 어떤 책은 전자책일 경우 50% 가격, 어떤 책은 종이책값 70%(예:헝거게임, 종이책도 30% 할인해서 종이책값과 전자책값이 같아요)에 가격이 매겨지니,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어서 피곤합니다.
막상 전자책에 관심 있는 분들의 커뮤니티를 보면, 콘텐츠의 정당한 가격이 얼마인가 등등을 가지고 논의를 주구장창하고 있는데요, 그 전에 이렇게 소비자가 느끼는 피로감이나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앱의 파편화도 그렇고, 가격 구조가 자리 잡히지 못한 것도 그렇고-
왜 한국 전자책 시장은, 독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걸까요?
누구도 당신의 전자책을 지켜주지 않는다
또 하나, 예전에 북토피아 사태와, 그 이전의 에버북-_-; 사태에 직접 겪은 당사자로서 얘기해 보자면… 자꾸 책을 ‘사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웃기지만, 전자책 파는 곳이 망하면, 그 누구도 당신의 전자책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음원이야 다운로드 받아놓으면 된다지만, 전자책은 다운로드 받아도 DRM 문제 때문에 계속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종이책은 일단 내가 사는 순간부터, 내가 그것을 불에 태우든 열심히 읽든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든,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 책 종이 덩어리에 대한 통제권은 내 손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자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저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이고, 그 권리에 대한 통제권한조차 서점에게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이 책들을 내게 보여줄 서비스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지난 10여년간 비슷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는데도, 전자책을 만든다는 사람들중에 그에 대해 신경쓰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게임이랑 똑같아요. 우리가 게임을 하며 아무리 레벨업을 하고 아이템을 모은다고 해도, 회사가 망하면 게임은 서비스 중지되고 사라집니다. 전자책의 운명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전자책은 ‘파는 것’이 아니라, ‘장기 임대’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어떤 이들이 퍼트리는 ‘온라인 책장’ 같은 환상에 사로 잡히지 마시길. 전자책엔 그런 것 없습니다. 지금 파는 회사들은 큰회사니 망할 걱정 없지 않냐구요? 에버북은 무려 삼성이 투자한 회사였습니다. 북토피아는 지난 10년간 국내 최대의 전자책 업체였습니다.
까놓고 말합시다. 말이 좋아 전자책이지 그냥 ‘텍스트 콘텐츠’를 돈 받고 파는 거잖아요- 그럼 그에 합당한 가격과 유통망, 이용자들의 권리 보호에 조금 신경을 써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니면 아예 임대(?) 사업을 하던지요.
아직도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앱과 서비스
결국 읽고 버릴… 또는 한번 읽고 꽂아두는 그런 책들이나, 현재 한국 전자책 시장에는 어울리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 전자책조차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까 옵뷰의 퀵메모 기능 이야기했죠? 그게 있어서 전자책 읽기가 늘어난 이유는, 그만큼 다른 앱들이 불편하고, 기본적인 기능조차 쉽게 쓸 수 있도록 지원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아마존과 비교하진 않겠습니다. 비교한다고 한들 그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해줄 것 같진 않으니까요(점점 시니컬해져 갑니다). 하지만 중간에 데이터 파일이 망가진다거나, 앱이 너무 무거워서 튕긴다거나, 대용량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외장 메모리에 설치되지도 않는다거나, 기기를 바꾸면 책을 읽을 수 없다거나, 간단한 밑줄 긋기나 북마크 기능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전자책 서비스를 너무 많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실은, 대부분의 앱들이 한두가지 이상 다 걸립니다.)
그냥 글자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전자책 서비스들. 사용자의 ‘읽기 경험’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채, 그저 외국에서 서비스 되는 앱들을 따라하기 급급한 전자책 앱들. 거기에 어떤 서비스는 무려 ‘다운로드 수 제한’ 같은 꼼수까지 부립니다. 기기 댓수 제한도 아니고, 몇번 다운로드 하면 땡. 이러다 10년뒤에 다시 책을 찾아보고 싶을때, 볼 수나 있을까 걱정됩니다.
일부 미리 보기조차 체험판 형식으로 따로 제공하는 것에는 질렸습니다. 덕분에 구매 목록만 지저분해지고 있어요. 앞으로 좋아질거라구요? 예, 몇몇 앱들은 조금씩 좋아지긴 하더군요.
… 그런데 왜, 제가 전자책 회사들의 베타 테스터가 되어야 합니까?
애플은 악당이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애플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국 전자책 시장에서는, 애플은 악당입니다. 출판사들에게 전자책 업체들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요구 사항을 무조건 관철시키고 하려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때문에 애플 기기들에서, 한국 사용자들은 제대로 전자책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사실 알고보면 아마존 견제하기 위해 나온 정책을!!).
그러니까, 애플 기기(아이폰, 아이패드)에서 전자책을 읽으려면, 안드로이드폰이나 PC에서 따로 전자책을 ‘미리’ 구입해 둬야 합니다. 애플의 정책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 전자책 서점에선 상점 기능을 아예 빼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