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IT 기업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얼마전 성우 모바일에서 오신 분을 만났습니다. 무슨 일인가-했더니, 태블릿PC를 만들었는데 이 제품을 홍보할 방법이 막막하다고 하십니다. 제품은 10.1인치 태블릿PC인 SM-300. 사양은 갤럭시탭과 거의 동일하지만 가격은 반값인, 전형적인(?) 중소 IT 기업의 제품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한국 중소 IT 기업이 처한 현실이 막막하게만 느껴집니다. 위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발빠른 흐름에 치이고, 아래에는 중국산 저가 제품에 치입니다. 사실, 확실히 요즘 한국 IT 중소기업들의 상황이 좋지는 않습니다. 한때 PMP와 MP3를 중심으로 걸출한 기술력을 보여주며, 한국 IT 제품 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중소 기업들의 꼴이 말이 아닙니다.

▲ 성우 모바일의 태블릿PC, SM-300

지금 예전 중소 IT 기업중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아이리버와 코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아이리버는 요즘 스마트 기기 악세사리 사업, 전자책 기기 사업으로 돌아선 느낌이고, 코원은 신제품을 내놓고는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둘 다 영업손실을 입고 있는 것은 물론이구요. PMP 업계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아이스테이션은 몇달전 상장 폐지, 아이스테이션의 PMP 재고가 대규모로 경매에 붙여진바 있습니다

윈도우 태블릿을 내놓는다고 해서 주목받았던 오코스모스는 소비자들에게 이미 신뢰를 잃었고, KT에서 아이덴티티탭을 내놨던 엔스퍼트는 지난 6월 상장 폐지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KT의 자회사였던 KT테크마저 청산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이 와중에 태블릿PC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다고 하는 성우 모바일이 신기하게 여겨질 지경입니다.

▲ 지난 7월 출시된 코원의 X9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사실 이렇게 중소IT기업들이 고전하는 것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장의 흐름이 대단히 빠르다는 것. 스마트 기기 시장은 초기 단계인지라 트렌드를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트렌드가 바뀌고 맙니다. 다른 하나는 혁신이 급격히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애플에서 아이패드를 들고나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줄 누가 알았으며, 순식간에 모바일 CPU가 쿼드코어로 넘어가고, 스마트폰이 엄청나게 얇아지고, 스마트 기기 해상도가 이렇게 높아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마지막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OS를 채택해 만든 기기들 가운데 소비자들에게 ‘좋다’라고 평가 받은 것은 열손가락안에 꼽힙니다. 대부분은 ‘그럭저럭 쓸만하다’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iOS를 채택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지금 스마트기기 시장은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몇몇 대기업과 그 대기업을 쫓아가는 중국(응?) 저가 제품들이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블릿PC를 들고오셨으니… 물건이 나쁘냐고요? 아뇨. 조만간 리뷰가 올라가겠지만- 이만한 가격에 이만한 태블릿이면 충분히 쓸만합니다.

▲ 또다른 중소 IT 기업 포엠 디지털에서 개발한 태블릿PC
아이뮤즈TX97

하지만 저는 결국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출시할 때가 아니라고. 태블릿 시장 자체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사람들은 가격과 상관없이 일단 아이패드와 비교하고 볼 거라고. 넥서스7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라 일단 그쪽을 먼저 기다릴 거라고. 깜빡이처럼 제품을 특화시켜 판매하는 방법을 찾으셔야 할 것 같다고.

…그래요. 한국 중소 IT 기업들이 내놓는 제품들이 처한 현실이 이렇습니다. 제품을 내놔도 관심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제품에 지출할 비용이 적은 소비자일수록 오히려 제품에 더 많은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스마트 기기는 사후 지원이 중요한데, 이 사후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비가 많지 않습니다(개인적으로 가장 불안한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소 IT 기업이 사라져야 할까요? 어차피 좋은 제품은 대기업들이 만들테니까, 중소 기업들은 틈새 시장이나 찾고 그게 안되면 그냥 망해야 할까요? 그러길 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건 스포츠로 따지면 엘리트 체육이고, 엘리트 체육은 단기간에 급격한 성과를 낼 때나 효과가 있는 겁니다.

유소년 축구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K리그가 계속 활성화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2012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거둔 그런 성과를, 앞으로도 계속 기대할 수가 있을까요? 중소 기업이 그냥 죽어버리는 사회라면, 우리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수도 없이 잃어버리게 될 겁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안은, 중소 IT 기업이 설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아직 생각나지 않습니다.
과연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 개인적으론 이런 제품의 경우, 셋팅된 OS를 오픈소스화해서, 안되면 구매자들이 직접 업데이트해도 되게 만들어줘도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구글 OS 개발 프로세스를 잘 모른 상태에서 나온 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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