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5 발표, 애플이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요 몇 년간, 애플 이벤트를 보지않고 잤던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기다리다 잔 적은 있었어도, 아예 기대도 안하고 볼 생각도 없이 잤던 것은. 이유야 뻔하지요. 이미 알려진대로 아이폰5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대로, 아이폰5가 나왔습니다.

어떤 긴장이나 두근거림? 사실 팀 쿡이 CEO가 된 이후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일어나 아이폰5 관련 글들을 쭈욱 읽다가 든 생각은 그냥… 아이폰5s에는 쿼드코어가 들어가겠구나(응?)

하드웨어적 혁신은 없었던 아이폰5

사실 이 정도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것이, 보통 번호 바뀔때 큰 모양이 바뀌었다면, 뒤에 S가 붙을때 하드웨어 사양이 강화됐었거든요. 그리고 이 맘때쯤이 되면, 예전 제품들은 OS 업그레이드와 동시에 뭔가 은근히 느려집니다. -_-; 2년 지났으니 새 것 사라는 것처럼. 아무튼 이건 딴소리구요..

하드웨어적으로 따지면, 아이폰5는 길어진 화면 외에는 그리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단자 모양도 바뀌고, 이어폰 단자도 하단에 위치하고, 더 얇고 가벼워졌지만- 그건 그냥 개량-정도에 속하는 일이고, 눈에 확띄는 것은 오로지 길어진 세로 길이 뿐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해상도 변화와, 다른 앱들이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겠죠.

…은근히 묘한 것이 있다면, 이렇게 변화된 해상도를 보여줄 써드파티 앱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 예전이라면 이렇게 스크린이 바뀌었으니 이런 앱도 이렇게! 저런 앱도 저렇게 좋아집니다! 라는 갖은 뻥(?)을 던졌을텐데… 게임을 제외하면, 묘하게 써드파티 앱들이 뒤로 밀려난 감이 있네요. 뻥 좀 쳐줘야 애플 키노트를 보는 맛이 있는건데…

애플이 말한 것, 말하지 않은 것

물론 이런 변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환영은 합니다. 사실 과거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에는 이제 한계에 부딪혔죠. 그래서 아래 동영상에서도, 조니 아이브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기기가 아이폰”이라고 하면서, “더 좋은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애플의 재주가 대단한 것이, 별 변화가 없는 아이폰5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영상을 보고나면 마치 아이폰이 명품같은 느낌을 갖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을 이 정도로 정밀하게 만든다는 것, 칭찬받을만하긴 하죠.

대신 이렇게 변화된 것들을 얘기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길어진 화면으로 인해 발생하게될 조작감 문제말입니다. 기존의 사이즈는 한손가락을 조작하기 가장 좋은 사이즈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앱들도 화면 위/아래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UI가 만들어져 있구요. 그런데 길어진 아이폰에선 그게 안됩니다. 아이폰이 드디어, 엄지손가락 하나로 콘트롤할 수 있는 영역보다 더 커져버렸습니다. 당분간 앱 제조사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조금 머리를 써야만 할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아이폰5를 이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장 아래 아이폰4 소개 동영상과 비교해도 이런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아래 아이폰4 소개 영상이 이런 하드웨어를 이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영상이라면, 위의 아이폰5 소개 영상은 하드웨어, 하드웨어, 하드웨어! 에 가깝습니다.

예전 아이폰4 영상은 아이폰4가 가진 이렇게 멋진 기능을 이용해서 당신은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어요-라면, 아이폰5 소개 영상은 이렇게 우린 멋져요-에서 머문다는 거죠.

애플은 마에스트로의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런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팀 쿡은 팀 쿡이지 잡스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잡스 이후 남은 사람들은, 그들이 잘할 수 있는 방법 그대로, 디자인과 그 디자인을 입힌 하드웨어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이를 보고 있으면, 예전에 어떤 분야의 장인들, 마에스트로같은 모습이 느껴집니다. 마치 이 하나에 내 모든 것을 걸겠어!라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혼신의 힘으로 하나의 하드웨어를 갈고닦아다는 느낌.

그런데 이 멋진 기기를 이용해서 내가 뭘 좀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은 잘 들지 않습니다. 그동안 아이폰을 계속 사용해왔던 유저로서, 그저 끌리는 것은 카메라일 뿐. 아이폰5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뛰어난 제품으로 내가 무엇을 해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기교만 뛰어난 음악가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결국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은, 어떤 혁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제품의 뛰어남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지금 아이폰5에게 없는 것은, 인간적인 감동이에요. 나 잘났어요-가 아니라, 이런 것 어때요? 재밌어 보이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재주. 저걸 당장 써보고 싶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것.

…물론 바뀐 카메라 기능은 참 마음에 듭니다만… 저 카메라 기능만 탐이 날거라면, 차라리 아이팟 터치를 써도 될 것 같거든요. 지금 애플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뭔가 가장 중요한 것, 애플을 애플답게 만들어줬던 것을 점점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멋진 하드웨어요? 좋죠. 아이폰이야 원래 좋은 제품이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했던 애플은, 그런 애플이 아닙니다.

정말, 스티브 잡스의 감수성이 그리워지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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